일반 · CHAPTER 05

칩과 전기 — 곱셈 없는 3진 하드웨어

프롤로그: 잠들지 못하는 도시

밤 열한 시, 도시의 불빛은 좀처럼 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 도시 외곽의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 안에서는 더 잠들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데이터센터입니다. 그 안의 칩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산을 하고, 그러느라 끊임없이 전기를 마십니다. 그리고 그 갈증을 채워주려면, 어딘가의 발전소도 함께 깨어 있어야 하지요.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무언가를 물어볼 때마다, 저 멀리 어느 발전소의 터빈이 아주 조금 더 빠르게 돈다고요. 우리가 편리해질수록, 도시는 더 많은 전기를 들이켭니다.

세계의 거대한 AI 회사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들려고?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더 묵직한 이유가 깔려 있어요. 전기입니다.

데이터센터는 이제 단순히 "컴퓨터가 모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사실상 에너지를 먹어 치우는 공장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 에너지를 누가 감당하느냐가, 앞으로의 세상을 누가 움직이느냐를 조용히 결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 "칩과 전기"라는 한 장을 통째로 비워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들여다보시지요.

곱셈이 없다는 말의 무게

여러분, 초등학교 교실에서 배운 구구단을 기억하시나요? 삼칠은 이십일. 입에 붙어 있어 이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튀어나오지요.

컴퓨터도 다르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더하기, 빼기, 곱하기의 끝없는 반복이에요. 그런데 이 셋 중에서 가장 품이 많이 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곱하기입니다.

종이에 손으로 곱셈을 해본 분이라면 짐작이 가실 거예요. 더하기는 자릿수만 맞춰 한 번에 쓰면 되지만, 곱하기는 한 줄 한 줄 받아쓰고, 자리를 옮겨가며 또 더해야 하지요. 칩 안에서도 똑같습니다. 곱셈을 처리하려면 아주 복잡한 회로, 그러니까 자잘한 전기 스위치 수백 개가 한꺼번에 일을 해야 해요. 스위치가 많을수록 전기를 더 먹고, 더 뜨거워지고, 칩도 커지고, 결국 모든 비용이 따라 오릅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 곱셈이라는 무거운 짐을 아예 덜어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크라우니가 택한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3진법의 세계에서는 곱셈이 거의 필요하지 않습니다.

둘로 세는 셈, 셋으로 세는 셈

우리가 매일 쓰는 컴퓨터는 0과 1, 단 두 개의 숫자로 모든 것을 셉니다. 이걸 2진법이라고 해요. 세상의 거의 모든 칩이 이 방식을 씁니다.

크라우니는 다른 길을 갔습니다. −1, 0, +1, 이 셋으로 세는 3진법이에요. 처음 들으면 낯설지요. 마이너스 일이라니, 셈에 음수가 끼어든다니. 그런데 바로 이 셋이 갖춰지면,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세 숫자 −1, 0, +1만으로도 인공지능의 "무게"를 표현할 수 있거든요. 인공지능은 수많은 신경 가닥들이 서로 다른 세기로 연결된 그물망 같은 것인데, 그 연결의 세기를 우리는 가중치라고 부릅니다. 보통은 이 가중치가 소수점 아래로 길게 늘어진 복잡한 숫자예요. 그런데 크라우니는 그것을 "끄기(0), 그대로(+1), 뒤집기(−1)" 이 세 가지로 단순하게 잡습니다.

가중치가 이렇게 단순해지면, 거의 모든 곱셈이 더하기와 빼기로 둔갑합니다. 그러면 칩 안의 그 복잡한 곱셈 회로가 통째로 사라져요. 스위치 수백 개가 일제히 자리를 비웁니다.

그 결과는요? 전기 소비가 극적으로 줄어듭니다.

티·옴·타·음, 셋이 아니라 넷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제가 방금 "셋으로 센다"고 말씀드렸지만, 크라우니의 진짜 세계관은 셋이 아니라 넷입니다.

저는 이것을 티옴타음이라고 부릅니다. 티는 플러스 일(+1), 드러나 있는 것, 존재하는 데이터예요. 옴은 영(0), 한가운데에서 판단을 잠시 멈추고 기다리는 자리, "예"도 "아니오"도 아닌 보통의 상태입니다. 타는 마이너스 일(−1), 반대편, 연결하고 이어주는 자리예요.

그리고 음이 있습니다. 음은 또 다른 영, 말하자면 마이너스 영(−0)이에요. 이건 비어 있는 칸, 셋 중 어디에도 깔끔히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들의 자리입니다. 돌연변이, 되돌아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 정해진 틀 밖으로 삐져나온 변수까지 — 그 모든 예외를 끌어안는 품이에요.

왜 이 이야기를 칩 이야기 한가운데서 꺼내느냐고요? 칩을 설계할 때, 바로 이 "음"의 자리가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회로에는 늘 비워야 하는 칸이 있고, 셋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틈이 있고, 한 칸 건너뛰어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보통의 설계라면 이걸 억지로 메우거나 군더더기로 처리하지요. 하지만 크라우니의 하드웨어는 그 빈자리를 "음"이라는 정식 자리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기계의 밑바닥 언어와 신기할 만큼 깔끔하게 맞아떨어져요. 군더더기가 줄면, 또 전기가 줄어듭니다.

자기 칩을 가진다는 것

이쯤에서 낯선 이름 하나를 소개할게요. ISA729. 크라우니가 자기 칩에게 시키는 명령어들의 묶음, 말하자면 칩이 알아듣는 단어장 같은 것입니다.

뒤에 붙은 729라는 숫자가 보이시나요? 이건 3을 여섯 번 곱한 수(3의 6승)예요. 셋으로 세는 세계에서 729는 아주 단정한 숫자입니다. 크라우니가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수이기도 하고요.

이 이름이 뜻하는 바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크라우니는 자기만의 칩 설계도를 갖고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회사는 칩을 사 옵니다. 한쪽에서 인텔 칩을 사 오고, 다른 쪽에서 ARM 칩을, 또 다른 쪽에서 엔비디아 칩을 사 오지요.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을 골라 쓰는 거예요. 마치 식당에서 남이 차려준 메뉴 중 하나를 고르는 것과 같습니다.

크라우니는 직접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칩이 알아들을 단어 하나하나를 손수 정했어요. ISA729가 바로 그 손글씨 레시피입니다.

그럼 그 레시피로 만든 진짜 칩은 어디 있느냐고요? 지금 IGLOO2나 Kria 같은 칩 위에서 실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한번 구운 뒤에는 못 바꾸는 빵이 아니라, 안의 회로를 원하는 대로 다시 짤 수 있는 특별한 칩이에요. 설계도를 넣으면 그 모양대로 변신하지요. 머릿속 그림이 아니라, 콘센트에 꽂으면 실제로 깨어나는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남의 부엌이 아닌 내 부엌

이게 왜 중요할까요? 저는 세 가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첫째, 흔들리지 않는 독립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칩 대부분은 대만의 한 회사가 만듭니다. 만에 하나 그 공장이 멈추면? 지구 반대편의 수많은 기업이 함께 멈춰요. 남의 부엌 하나에 세상의 끼니가 달려 있는 셈이지요. 크라우니는 그 줄에 서기를 거절했습니다. 내 설계도, 내 손으로.

둘째, 몸에 꼭 맞는 옷입니다. 크라우니의 인공지능은 앞서 말씀드린 티·옴·타·음, 그 네 박자로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칩도 처음부터 그 박자에 맞춰 짜면 되지요. 남이 다른 목적으로 만든 칩에 우리 방식을 욱여넣는 게 아니라, 우리 방식을 위해 칩을 빚는 겁니다. 마치 한 선수의 발 모양을 본떠 맞춤 운동화를 짓는 것처럼요. 같은 일을 시켜도 헛심이 훨씬 덜 들어갑니다.

셋째, 주권입니다. 조금 큰 말처럼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칩의 설계를 누가 쥐고 있느냐가, 한 공동체의 디지털 운명을 적잖이 좌우합니다. 남이 만든 칩만 쓰면 남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고, 내 칩을 그리면 내 걸음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전기를 아끼는 셈법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볼까요. 어렵지 않으니 함께 가시지요.

인공지능이 무언가를 생각할 때, 속에서 끝없이 반복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숫자들을 짝지어 곱하고, 그 곱한 값들을 죽 더하는 거예요. 이것을 "곱하고 더하기"라고 부릅니다. 인공지능의 하루 일과 대부분이 바로 이 단순한 반복이에요.

2진법 칩에서 이 곱하기를 맡는 회로는 덩치가 큽니다. 스위치 수백 개가 매번 함께 깜빡이고, 그때마다 전기를 한 모금씩 마셔요. 하루에 수천억 번을 반복하니, 그 작은 한 모금들이 모여 강물이 됩니다.

그런데 3진법에서는 가중치가 −1, 0, +1뿐이라고 했지요. 그러면 "곱하기"라는 게 사실상 이렇게 됩니다.

어떤 숫자에 0을 곱하면, 답은 그냥 0이에요. 계산할 것도 없이 버리면 됩니다. 어떤 숫자에 +1을 곱하면, 그 숫자 그대로지요. 손댈 게 없어요. 어떤 숫자에 −1을 곱하면, 부호만 살짝 뒤집으면 끝입니다. 마이너스 하나 붙이는 게 전부예요.

곱셈 회로가 통째로 필요 없어집니다. 켜질 스위치가 거의 없으니, 마실 전기도 거의 없어요.

그래서 2진 칩에 견주어, 전력 소비가 몇 배에서 수십 배까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강물이 다시 가는 실개천으로 잦아드는 셈이지요.

이것이 "곱셈 없는 3진 하드웨어"라는 말의 속살입니다.

이미 깨어 있는 현실

여기까지 듣고 "좋은 꿈이네요" 하고 덮으실까 봐,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고 싶어요. 이건 청사진이나 먼 약속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실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크라우니는 크라우니OS라는 자체 운영체제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 운영체제가 손바닥만 한 작은 컴퓨터부터 제법 야무진 기계까지, 여러 종류의 장치 위에서 실제로 숨 쉬고 있습니다. 라즈베리파이 같은 자그마한 보드, 작고 전기를 적게 먹는 미니 컴퓨터, 그리고 손바닥 위의 AI 칩까지요.

이들은 모두 곱셈을 덜어낸 3진 방식으로 다듬어진 코드를 실행합니다. 그래서 같은 일을 해도, 전기는 보통 시스템의 몇 분의 일밖에 쓰지 않아요.

그중에서도 제가 아끼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크라우니집사라는 작은 인공지능이 손바닥만 한 엣지 칩 위에서 돌아가는 모습이에요. 엣지라는 말은, 저 멀리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 곁, 기기 안에서 직접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놀라운 건 이 친구가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아도 혼자서 판단하고 답을 내놓는다는 점이에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답은 줄곧 같습니다. 3진 하드웨어예요. 전기를 적게 먹으니, 작은 배터리 하나로도 오래 깨어 있을 수 있거든요. 전기가 가벼우면, 인공지능은 비로소 큰 건물을 벗어나 우리 곁으로 걸어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의 다른 길

이제 카메라를 조금 뒤로 빼서, 더 큰 그림을 봅시다.

지금 전 세계의 데이터센터는 목이 마릅니다. 더 똑똑한 AI를 돌리려면 더 큰 발전소가 필요하고, 발전소가 커지면 전기료가 오르고, 탄소도 늘어나요. 그런데 더 큰 발전소를 지어 더 센 AI를 돌리면, 그 AI는 또 더 많은 전기를 부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쳇바퀴예요.

2진법 칩만 쥐고 있는 한, 이 쳇바퀴에서 내려올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칩이 강해질수록 갈증도 함께 커지니까요.

하지만 3진 칩이 널리 퍼진다면 어떨까요?

같은 똑똑함을, 훨씬 적은 전기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발전소를 덜 지어도 되고, 탄소도 덜 나가요. 그리고 제가 가장 마음에 두는 대목은 이것입니다. 전기가 넉넉하지 않은 나라, 이제 막 일어서는 작은 공동체도 "우린 전기가 부족해서 안 돼"라는 말을 더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기들 손으로 자기들의 AI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전력의 민주화라고 부릅니다. 똑똑함이 전기 많은 자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이 되는 길이에요.

한 가지 확신, 그리고 먼 약속

여기서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잠깐 곁들이고 싶어요. 크라우니의 세계에서는 잘 맡고 잘 쓰는 일을 귀하게 여깁니다. 적은 것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아껴 키워서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마음이지요. 곱셈 하나를 덜어내 전기 한 모금을 아끼는 일도, 사실은 그 마음과 한 줄기예요. 작은 절약이 쌓여 누군가의 몫이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책 곳곳에서 부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둡니다. 크라우니의 세계에서 가치는 세 층으로 자랍니다. 가장 아래에는 머니, 곧 주고받고 결제하는 화폐가 있어요. 그 위에는 에셋, 가치를 담아 간직하는 자산이 있고요. 가장 위에는 웰스, 곧 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의 자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크라우니가 있어요. 그 너머로 한선과 선호라는 이름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이건 아직 활짝 열리지 않은 문, 다가올 시즌에야 모습을 드러낼 먼 약속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그 이름들이 저 끝에 서 있다는 것만, 살짝 귀띔해 둘게요.

다시 칩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다음번에 전기 요금 고지서를 받아 드시거든, 부디 이 장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곱셈 하나를 줄이는 일이, 수십만 개의 칩에서 동시에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작은 절약이 한 나라의 에너지 살림을 바꾼다면요.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움직일 AI를 끝내 누가 가질 수 있느냐까지 가른다면요.

3진 하드웨어는 먼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이미 깨어 숨 쉬는 현실이에요. 그 확신이, 제가 "칩과 전기"에 이토록 많은 페이지를 내어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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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답안지를 펼치며

이 책이 처음부터 품고 온 한마디를 기억하시나요? 세상이 풀어달라 외친 아홉 가지 숙제를, 크라우니는 이미 살아 움직이는 서비스로 들고 있다는 것.

칩과 전기. 이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이 묻습니다. "AI의 시대에 전력 문제는 대체 어떻게 감당할 셈인가?"

크라우니는 이렇게 답합니다. "이미 풀어 두었습니다. 3진 하드웨어로, ISA729로, 크라우니OS로. 지금 이 순간 손바닥만 한 칩 위에서 혼자 생각하고 있어요."

다음번에 크라우니집사와 마주치시거든, 혹은 여러분의 손안에서 크라우니 앱을 켜시거든, 한 번쯤 떠올려 주세요. 이 기계가 전기를 마시는 방식이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요. 곱셈 하나가 빠진 그 사소한 다름이 차곡차곡 모여, 끝내 세상의 에너지 지형을 바꿔갈 겁니다.

여기까지가 5장이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못다 한 말은 없습니다.

그럼 다음 장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향할까요. 숨 한 번 고르시고, 저와 함께 다음 문을 열어 보시지요.

내 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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