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 CHAPTER 06

재난을 먼저 막는 AI — 국가 안전 인프라

그날, 알림이 오지 않는다면

어느 여름 오후를 상상해 보겠습니다.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한 시간 만에 한 달 치 비가 쏟아집니다. 지하 주차장으로 물이 차오르고, 뒷산은 흙을 머금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평소 같으면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을 텐데, 재난문자가 오지 않습니다. 동네 관청의 모니터링 화면도 까맣게 멈춰 있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이런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원인이 의외로 가깝기 때문입니다. 많은 나라의 재난 감시 시스템이, 알고 보면 외국 클라우드 기업 한두 곳에 기대어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 회사의 데이터센터가 장애를 일으키거나, 인터넷 경로가 끊기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접근이 막히면, 아무리 좋은 센서와 똑똑한 예측 알고리즘이 있어도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됩니다.

이건 제가 겁을 주려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슷한 일이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고,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한 가지 질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안전을, 우리가 직접 지킬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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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던진 숙제: "우리 재난은 우리가 막는다"

크라우니를 만들며 저는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건넨 아홉 가지 큰 숙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전력, 에너지, 재난 감시, 국가 보안 같은 나라의 뼈대를, 자국의 기술과 자국의 데이터센터로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한 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손에 우리 생명을 맡길 수는 없잖아요."

저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습니다. 이 한마디가 이 장을 펼치게 한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 두었는지 차근차근 보여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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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리 깔아 둔 길 — 네 가지

첫째, 우리말로 지은 AI

재난을 감시하는 프로그램을 짤 때 무엇으로 쓸까요? 흔히 떠올리는 건 외국에서 만든 언어나, 큰 클라우드 회사가 권하는 도구들입니다.

저희의 대답은 단순합니다. 우리말로 짓습니다.

크라우니에는 한선씨라는, 한국어로 프로그램을 짜는 언어가 있습니다. 한선씨로 쓴 재난 감시 코드는 단지 한글이라 읽기 편한 게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중간에 번역하는 단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영어로 된 코드를 우리 기술자가 머릿속에서 한 번 옮기고, 다시 손보고, 또 고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실수와 늦어짐이 사라집니다. 우리 기술자가 우리말로 쓴 명령을, 우리 컴퓨터가 곧바로 알아듣습니다.

국가의 안전 시스템에서 이게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응급 상황에서는 단 몇 분의 늦음이 사람의 생사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비가 산을 무너뜨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가 만든 운영체제와 칩

"그 코드가 돌아갈 컴퓨터는요?" 누군가 이렇게 되물을 수 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나라의 시스템은 외국 회사의 운영체제와 칩 위에서 돕니다. 그 회사가 어느 날 보안 업데이트를 멈추거나, 새 칩을 더는 팔지 않거나, 정치적으로 제재를 걸면 어떻게 될까요? 시스템 전체가 발밑부터 흔들립니다.

크라우니는 그 사슬을 끊었습니다.

저희의 운영체제 CrownyOS는 라즈베리파이, 엔비디아 제트슨, 평범한 리눅스 서버 위에서 스스로 돕니다. 컴퓨터가 알아듣는 가장 밑바닥 명령어 묶음까지 직접 설계했고, 그것을 ISA729라고 부릅니다. 729개의 기본 명령으로 이루어진 이 체계는 한 가지 남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일반 컴퓨터가 쓰는 0과 1의 2진법이 아니라, 세 가지 값을 쓰는 3진법을 바탕에 둔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전기를 덜 먹습니다.

이게 재난 인프라에서 어떤 뜻일까요? 외국 칩 없이도 도는 시스템이라는 뜻이고, 또 효율이 좋아서 시골 마을의 작은 서버 몇 대로도 넓은 지역을 지켜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거창한 데이터센터가 없어도 됩니다.

셋째, 우리가 운영하는 관문과 길

여러분의 스마트폰이 인터넷에 닿을 때, 신호는 보이지 않는 길을 지나갑니다. 관문(게이트웨이)을 통과하고, 주소를 사람 말에서 컴퓨터 숫자로 바꿔 주는 안내소(DNS)를 거칩니다. 이 길과 안내소마저도 대개는 외국 회사가 관리합니다.

여기서 탈이 나면 어떻게 될까요? 정부가 보낸 재난 경보가 정작 시민의 손에 닿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길이 막힌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는 이 길도 직접 깔았습니다. 외국 서비스를 빌리지 않는 우리 관문, 수십 개 도메인을 스스로 관리하는 우리 안내소. 이제 재난 정보는 외국 땅을 한 바퀴 돌지 않고, 국내에서만 곧장 흐릅니다.

넷째, 이미 살아 움직이는 것들

여기까지가 설계도였다면, 이제부터는 현장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약속이 아니라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KITValley입니다. 저희는 QUAKEON-7000이라는 지진 감시 서버를 만들었고, 이것과 맞물린 재난 예경보 통합 플랫폼을 여러 지역에 실제로 들여놓았습니다. 시연용 흉내가 아닙니다. 실제 자연재해 앞에서 작동했고, 시민의 안전을 지킨 기록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외부의 사정에 휘둘려 멈추지 않으려면, 외국 데이터센터를 거치지 않아야 합니다. QUAKEON-7000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었습니다.

더 큰 그림으로는 INT, 초통합 긴급경보 시스템이 있습니다. INT는 건물의 에너지 관리부터 발전소 감시, 재해 감지, 화재 경보, 보안 카메라까지를 한 화면에 모읍니다. 이 시스템은 셀이라고 부르는 작은 단위들이 그물처럼 엮인 구조라서, 중앙의 큰 서버 하나가 멈춰도 각 지역의 작은 노드들이 저마다 알아서 계속 작동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서울의 데이터센터에 불이 나도 대구의 재난 센서는 눈을 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 곳이 쓰러져도 전체가 함께 쓰러지지 않는 것, 저는 이것이 안전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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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으느냐, 흩뜨리느냐

여기서 잠깐, 큰 회사들이 만든 재난 시스템과 저희의 길을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차이는 결국 하나입니다. 모으느냐, 흩뜨리느냐.

거대한 중앙형 시스템에서는 모든 정보가 한곳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대개는 멀리 떨어진 외국 데이터센터입니다. 우리 정부가 그 정보를 보려면 그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인터넷이 끊기거나 바깥 사정이 나빠지면 정보의 흐름도 함께 멎습니다. 알고리즘을 급히 고쳐야 하는 응급 순간에도, 결정은 바다 건너 본사에서 내립니다.

저희가 택한 길은 그 반대입니다. 정보는 우리 안에 머뭅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단 하나의 중심이 없고, 대신 작은 지역 센터들이 서로 손을 잡습니다. 전기가 끊기면 배터리로, 인터넷이 끊기면 로컬 무전으로 신호를 잇습니다. 그리고 알고리즘을 손봐야 할 때는 우리 기술자가 직접, 몇 분 안에 고칩니다.

어느 쪽이 재난 앞에서 더 든든할까요? 저는 답을 드리기보다, 여러분 마음속에 같은 물음이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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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변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봅시다. 재난 시스템을 갖추는 데 돈이 가장 많이 드는 항목이 무엇일까요? 서버 비용, 네트워크 비용, 그리고 다달이 빠져나가는 외국 클라우드 사용료입니다. 이 비용 때문에,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지역은 안전 시스템을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크라우니의 방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3진 연산과 가벼운 자체 운영체제 덕분에, 작은 시골 도시도 값싼 라즈베리파이 몇 대로 지역 재난 시스템을 돌릴 수 있습니다. 외국 클라우드를 빌릴 필요가 없으니 매달 나가던 돈도 크게 줄어듭니다.

이게 제가 가슴 뛰는 대목입니다. 안전이 더 이상 부유한 나라만의 특권이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개발도상국도, 가난한 마을도, 자기 손으로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국의 기술과 저렴한 하드웨어, 그리고 함께 나누는 코드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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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할 때, 억지로 답하지 않는 지혜

여기 제가 특히 아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재난을 떠올려 보면, 거의 모든 순간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진이 올지 말지, 비가 얼마나 더 쏟아질지, 저 산이 정말 무너질지. 누구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보통의 시스템은 이런 순간에 둘 중 하나로만 답하려 합니다. "위험한가, 안전한가. 예, 아니오." 하지만 센서가 불완전하거나 신호가 약하거나 상황이 어정쩡할 때, 억지로 둘 중 하나를 고르면 어떻게 될까요? 헛경보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거나, 진짜 위험을 놓치게 됩니다.

크라우니가 쓰는 4상균형 논리, 곧 티·옴·타·음은 이 지점에서 다르게 대답합니다. 답이 두 개가 아니라 네 개이기 때문입니다.

  • 티는 "확실히 위험하다"입니다. 곧장 경보를 울립니다.
  • 타는 "확실히 안전하다"입니다. 마음 놓아도 됩니다.
  • 옴은 "아직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지켜보자"입니다. 다른 센서를 한 번 더 확인하며 판단을 미루는, 보통의 대기 상태입니다.
  • 음은 "설명이 안 되는 이상 신호다"입니다. 평소의 틀로는 도무지 담기지 않는, 뜻밖의 흔들림. 이럴 땐 사람을, 전문가를 부릅니다.

이 네 가지 갈래가 있으면, 재난의 그 미끄러운 불확실함을 훨씬 너그럽게 다룰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시스템, 저는 그것이 오히려 더 믿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다 안다고 우기는 사람보다, 모를 때 솔직히 물어보는 사람이 더 미덥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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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시스템이 정말 돌아갈까, 너무 복잡한 이야기 아닐까 싶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이 기술의 조각들을 지금도 직접 만져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 프로그래밍 언어 한선씨는 공개된 자료로 배울 수 있습니다. CrownyOS는 라즈베리파이 한 대만 있으면 직접 설치해 볼 수 있습니다. INT 같은 경보 시스템도 공개된 부분을 들여다보며 익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이 사는 도시에 이렇게 제안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기술로, 우리 안전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보자"고요. 비용은 외국 클라우드보다 훨씬 적게 들고, 보안은 오히려 더 단단합니다. 작은 제안 하나가 마을의 안전을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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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짊어지지 않는다"는 마음

마지막으로, 제가 왜 이 모든 걸 굳이 직접 만들었는지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외국의 좋은 기술을 가져다 쓰면 편했을 텐데, 왜 그 불편한 길을 갔을까요?

답은 결국 한 가지 마음에 있습니다. 남에게 생명을 맡기지 않겠다.

이건 잘난 척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가깝습니다. 제가 속을 알 수 없는 외국 회사의 코드와 서버에, 한 사람의 생명을 걸 권리가 제게는 없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기술로 우리가 지킬 테니, 대신 여러분이 우리를 지켜봐 주십시오. 투명해야 믿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하면 나라와 기술자가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시스템이 멈추면 그건 곧 우리 책임이 되니까요. 남 탓을 할 자리가 없어집니다. 저는 그 무게가 두렵지만, 동시에 그 무게가 우리를 정직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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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다리며

지금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INT와 QUAKEON-7000이 몇몇 지역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한반도 곳곳으로 퍼지고, 나아가 안전이 절실한 다른 나라들로 번져 가면 어떨까요?

그날이 오면, 재난이 닥쳤을 때 "외국 서버가 멈춰서 정보가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은 옛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에게 한 가지 물음이 남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서서, 이 손에 쥔 기술을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저는 그 답을, 다음 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찾아가려 합니다.

내 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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