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나는 친구들한테서 신기한 걸 배웠어. 53분만 푹 집중하고 잠깐 쉬면, 하루가 마법처럼 길어진다는 거 말이야. 그래서 그날 나는 53분짜리 집중을 두 번이나 해냈고, 어깨가 으쓱했지. 그런데 친구들이 그러는 거야. "집중하는 법을 배웠으니, 이제 그 집중을 어디다 쓸지 찾아볼 차례야."
어디다 쓰냐고? 그게 무슨 말일까. 나는 그 질문을 가방에 넣고 다음 날 운동장으로 갔어.
"어? 너희 셋 다 나타났네?"
운동장 구석에서 티, 옴, 타를 한꺼번에 보고 나는 깜짝 놀랐어. 어제까진 한 명씩 번갈아 왔는데, 오늘은 셋이 나란히 서 있었거든. 그런데 그 옆에 친구가 한 명 더 있었어. 이 친구는 좀 이상했어. 연기처럼 자꾸 모양이 바뀌었거든.
"안녕, 난 음이야." 그 친구가 흐릿하게 웃었어. "어제는 안 나타났지? 음은 늘 좀 늦거든. 가끔은 아예 안 오기도 하고."
음은 운동화도 잘 안 보였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또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신기했어.
"넷이 다 모였으니 오늘은 큰 미션을 줄게." 티가 손뼉을 쳤어. "네가 좋아할 만한 책 한 권을 찾는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어. 책이면 도서관에 가면 되잖아. 왜 친구들이랑?
"이건 평범한 책이 아니야." 옴이 차분하게 말했어. "우리 크라우니 세상의 모든 자리를 담은 책이거든. 그 책은 6,561개의 방에 숨겨져 있어."
타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어. "6,561개라니… 진짜 많네."
"진짜야. 근데 왜 하필 그 숫자일까? 한번 상상해 봐." 티가 나를 보고 눈을 찡긋했어.
〔그림: 운동장 구석에 티·옴·타·음 네 친구가 서 있고, 배경에 초록 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셋씩 갈라내며 자라는 모습. 음은 윤곽이 살짝 흐릿하게.〕
나는 운동장 저쪽 나무를 가리켰어. 왠지 저 나무 얘기 같았거든.
"딩동, 정답!" 티가 또 손뼉을 쳤어. "저 나무 좀 봐. 줄기가 셋으로 갈라지지? 그 셋이 또 각각 셋으로 갈라지고."
다시 보니 정말이었어. 가지가 늘 셋씩, 셋씩 쪼개지고 있었어.
"그걸 여덟 번 반복하면 끝가지가 몇 개가 될까?" 타가 물었어.
"3 곱하기 3을 여덟 번. 그게 6,561이야." 음이 또렷하게 말했어. 평소엔 흐릿하던 음도, 계산할 때만큼은 선명해졌어.
나는 손가락을 접어 가며 따라가 봤어. 3, 9, 27, 81… 이렇게 여덟 번. 정말 6,561이 나왔어. 신기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렸어.
"우리 세상도 이렇게 자랐어." 옴이 말했어. "한 사람에서 시작해 셋, 그 셋에서 또 셋, 여덟 번을 뻗으니까 정확히 6,561명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 거야. 그게 6,561개의 방이고, 그 방 하나하나의 주인을 우리는 선구자라고 불러."
선구자? 처음 듣는 말이라 나는 손을 들었어.
"선구자는 아무도 안 가 본 길을 앞서 걷는 친구야." 티가 설명했어. "지도에 없는 길에 처음 발자국을 내딛는 사람. 너도 그중 한 명이 될 수 있어."
〔그림: 작은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며 가지가 셋씩 여덟 번 갈라져, 마지막에 6,561개의 잎이 반짝이는 모습.〕
그다음이 더 신기했어. 친구들이 운동장 모래를 손가락으로 쓱쓱 긋더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거야.
"6,561개 방이 뭔지 알려면, 먼저 우리 세상이 세 기둥으로 서 있다는 걸 알아야 해." 옴이 말했어.
〔그림: 운동장 모래에 기둥 세 개가 그려진다. 초록색 "만드는" 기둥, 노란색 "사는" 기둥, 파란색 "지키는" 기둥.〕
"첫 번째 기둥은 만드는 자리야." 옴이 초록 기둥을 짚었어. "스마트폰을 만드는 엔지니어, 로봇을 그리는 과학자, 다리를 짓는 건설가. 새로운 걸 만드는 모든 사람이 여기 들어가."
"두 번째는 사는 자리야." 노란 기둥. "나, 너, 엄마, 아빠… 음악을 들을 때도, 친구랑 웃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우리가 하루하루 누리는 기쁨과 사랑과 배움이 다 여기야."
"세 번째는 지키는 자리." 파란 기둥. "경찰관, 소방관, 군인 아저씨들. 법을 만들고 나라를 지키고, 밤에 네가 푹 잘 수 있게 지켜 주는 사람들이야."
나는 잠깐 생각했어. 우리 엄마는 어느 자리지? 내 친구는?
"헷갈리면 이 질문 하나만 떠올려." 티가 말했어. "'이 일로 제일 큰 도움을 받는 게 누구지?' 한 사람이면 사는 자리, 회사나 공장이면 만드는 자리, 나라 전체면 지키는 자리."
타가 검지를 톡 튕겼어. "결국 다 관점이야. 같은 밥도 혼자 먹으면 '사는' 거고, 수백 명 급식을 만들면 '만드는' 거니까."
〔그림: 모래 위 세 기둥이 점점 작게 여러 번 반복되며, 마침내 6,561개의 작은 기둥으로 변해 가는 과정.〕
"자, 이제 6,561이 보이지?" 옴이 물었어.
신기하게도 보였어. 6,561은 그냥 큰 숫자가 아니라, 세상의 중요한 자리를 빠짐없이 담으려고 딱 맞춘 수였어.
"도서관을 떠올려 봐." 음이 말했어. 이번엔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어. "책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으면 한 권 찾기도 힘들지? 그런데 사서 선생님이 '문학은 이 복도, 과학은 저 복도'라고 정리해 두면 금세 찾아내잖아."
"우리 세상도 그래." 옴이 이었어. "6,561칸으로 정리해 두니까, 너 같은 친구가 '나는 어디쯤일까?' 하고 물을 때 자리를 콕 짚어 줄 수 있는 거야."
나는 두근거렸어. 그럼 나는 어느 방일까?
"그건 천천히 찾아가면 돼." 티가 웃었어. "지금은 이것만 기억해. 너를 위한 빈 방이 분명히 있다는 거."
그런데 친구들이 또 낯선 숫자를 꺼냈어.
"153이라고 했나?" 타가 모르는 척 물었어. 분명 이미 알고 있으면서.
"응. 우리 세상엔 153개의 나라와 153개의 회사가 같은 약속에 손을 보탰어." 옴이 말했어. "6,561명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확한 자리를 주자는 약속이야."
〔그림: 운동장 하늘에 풍선 두 다발이 둥실 떠 있고, 한 다발마다 153개씩 묶여 있는 모습.〕
"그리고 우리는 2038년 9월 30일에 다 같이 모이기로 했어." 음이 말했어. "지금 너는 초4지만, 그날이면 어른이 되어 꿈을 멋지게 키우고 있을 거야. 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나는 속으로 세어 봤어. 그때면 나도 다 큰 어른이겠네. 그때도 내 자리가 있을까?
"있고말고. 자리는 언제까지나 너를 기다려." 티가 확신에 차서 말했어.
"이 모든 약속을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알아?" 타가 물었어.
나는 고개를 저었어.
"verse.crowny.org/6561이라는 한곳이 있어." 옴이 말했어. "우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지도가 거기 담겨 있어. 모두가 함께 펼쳐 보는 약속의 책이지. 해적이 보물지도를 소중히 간직하듯이 말이야."
"새로운 걸 만들기로 마음먹은 친구는 여기를 먼저 펼쳐야 해. '내 아이디어는 어느 방에 들어가지?' 하고 물어보는 거야. 6,561칸을 억지로 다 채우려는 욕심이 아니라,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 주는 지혜가 중요하거든."
그때 음이 흐릿해지며 끼어들었어. "그런데… 나는 가끔 빠져. 모양도 자꾸 변하고. 나 같은 자리도 정말 있을까?"
나는 음이 조금 안쓰러웠어. 셋은 또렷한데 음만 흐릿했으니까.
"있어, 분명히." 옴이 부드럽게 말했어. "티·옴·타 셋에 딱 안 맞는 친구도, 음처럼 이상하고 특별한 친구도, 다 들어갈 방이 있어. 셋으로 못 담는 자리를 음이 채우는 거야. 너만의 빛깔이 있으면, 거기 너의 방이 있어."
음이 조금 또렷해졌어. 운동화도 한쪽이 살짝 보였어.
〔그림: 책처럼 펼쳐진 지도. 미로 같은 방 6,561개가 빼곡하고, 방마다 작은 별이 하나씩 떠 있다. 셋으로 안 떨어지는 구석방 하나엔 별 대신 흐릿한 달이 떠 있다.〕
우리는 운동장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았어. 그러면서 동네에서 만난 어른들을 하나씩 떠올려 봤어.
편의점 아저씨는 어느 자리일까? 만드는 자리? 사는 자리? 지키는 자리?
생각할수록 어려웠어. 편의점도 정리하고 지켜야 하니까 지키는 일도 하고, 물건을 들여오니까 만드는 일과도 닿아 있고, 밤늦게 라면을 사러 온 손님의 하루를 도우니까 사는 일도 돕고 있었어.
"복잡해…." 내가 중얼거렸어.
"그럼 딱 맞은 거야." 타가 빙긋 웃었어. "현실은 원래 복잡해. 그래서 핵심을 하나만 물어봐. '이 사람이 없으면 가장 손해 보는 게 뭐지?' 거기가 그 사람의 진짜 자리야."
나는 또 생각했어. 편의점 아저씨가 없으면? 밤에 라면이 먹고 싶어도 못 먹지. 깜빡한 우유도 못 사고. 결국 우리 동네 사람들의 하루가 불편해지는 거야. 그럼… 사는 자리에 제일 가깝겠다.
"봤지? 그래서 재미있는 거야." 타가 고개를 끄덕였어. "한 사람이 세 기둥을 다 받치고 있어. 그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찾는 게, 그 사람의 진짜 방을 찾는 거야."
〔그림: 나와 네 친구가 운동장을 돌며 경찰관·의사·농부·음악가·선생님·운동선수를 만나는 모습. 각자 머리 위에 "만드는" "사는" "지키는" 글자가 살랑살랑 떠 있다.〕
저녁이 되자 친구들이 사라질 채비를 했어. 떠나기 전에 티가 한마디를 더 보탰어.
"너의 방은 지금도 6,561개 중 어딘가에 비어 있어. 네 꿈이 뭐든, 네가 잘하는 게 뭐든, 거기 분명 너를 위한 방이 있어. 그 문을 여는 건 너의 몫이야."
음이 흐릿해지면서 속삭였어. "다음엔… 이 6,561개 방을 무엇으로 지었는지 알려 줄게.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쌓고, 그걸 모아 더 큰 덩어리를 만드는… 꼭 레고 같은 재료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보물지도도 찾았으니, 이제 그 방을 지은 재료가 궁금해졌거든. 작은 조각으로 큰 세상을 짓는다니, 그게 도대체 뭘까.
혹시 너도 나처럼 궁금하니? 그럼 다음 장을 같이 펼쳐 보자. 레고처럼 작은 조각이 어떻게 6,561개의 방이 되는지, 그 비밀을 함께 들여다보자.
해볼까? 동네에서 만난 어른 한 명을 떠올려서, 세 기둥 중 어디에 가장 가까운지 한번 맞혀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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