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 CHAPTER 02

왜 지금, 왜 나에게

전환의 순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 묘한 일입니다. 예전엔 길이 명확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일터로 가고, 정년이 오면 멈추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리에게는 목표가 또렷했습니다. "한 가지를 잘하자." "사람들의 신뢰를 모으자." "가정을 지키자." "은퇴 후엔 편히 쉬자."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쉰을 넘고 예순에 접어들면,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의 질감이 달라집니다. 회사에 다니던 때는 내일이 있었습니다. 월급이 나오고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은퇴하고 몇 해가 지나면 묘한 공허함이 밀려옵니다. 남은 시간은 많은데, 그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지 흐릿해집니다. 자식들은 자라 독립했고, 회사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그 변화 속에서 "나"의 자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환의 고통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분은 그저 "나이 드는 일"이라고 쓸쓸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세상은 계속 움직이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대로 살기엔 어딘가 아깝지 않나." "한 번 더, 다르게 시작할 수 있을까."

앞 장에서 우리는 크라우니코드가 어떻게 켜짐과 꺼짐의 세계에 세 번째 신호를 더했는지를 보았습니다. 1과 0, 그 사이에 "모름"이라는 정직한 자리를 열었지요. 그것은 분명 기술의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쓰는 까닭은, 그 작은 기술의 변화가 우리의 삶 자체를 어떻게 다시 짜는지를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다시 짜는 일이 지금, 바로 여러분 같은 분들을 위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의 의미가 바뀐 시대

객관적인 사실 하나부터 짚어 봅시다. 여러분이 마흔 해, 쉰 해를 일해온 그 시대와 지금은 근본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한 가지 일을 정년까지 잘하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회사에 충성하고, 직급이 오르고, 정년에 퇴직금을 받고, 그 다음은 연금이나 자녀의 부양을 기대했습니다. 경제의 셈법이 간단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자라면 직원의 급여도 올랐고, 물가가 안정적이었으니 저축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살림은 몇 가지만 다루면 됐습니다. "버는 것", "모으는 것", "쓰는 것". 아니면 "예", "아니오" 정도의 이분법이면 족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한 회사에서 십 년, 이십 년을 다니던 사람이 이제는 한곳에 평생 머물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너무 빠르게 나타나고, 회사도 쉽게 생겼다 사라집니다. 한 가지 기술을 배우면 삼십 년을 먹고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 년만 지나도 그 기술이 너덜너덜해집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저축을 하면 은행이 넉넉한 이자를 주었지만, 지금은 금리가 제자리이거나 물가에 못 미칩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돈의 가치는 내려갑니다. 애써 모은 자산이 점점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지 않으십니까.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쉰을 넘고 예순에 이른 분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분이 그 질문 앞에서 멈춰 서고, 누군가는 자포자기하고, 또 누군가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기어이 해보려 애를 씁니다.

"왜 이제야"라고 느껴지는 까닭

저는 종종 이런 편지를 받습니다. 은퇴하신 분들이, 정년을 앞둔 분들이 보내오는 질문입니다.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쓸 수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까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이 이전 세대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는 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은퇴하면 "이제 쉬는 시간"이라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사회도 그렇게 기대했고, 본인들도 그렇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삼십 년, 사십 년을 더 살 수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서" 보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이제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과 삶을 둘로 나누는 것보다, 그것을 한데 엮어 짜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요.

저는 여러분이 바로 이 순간에 크라우니를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켜짐과 꺼짐만 있는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예"와 "아니오"로 나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경제도 그러했습니다. "버는 일"과 "쉬는 시간". "내 이익"과 "남의 이익". "내 자산"과 "남의 자산". 이렇게 양 끝으로만 갈린 세계에서는, 은퇴하면 당연히 한쪽 끝으로 뚝 떨어지게 됩니다. 역할을 잃으면 존재의 가치도 함께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일을 그만두니 내가 쓸모없어진 것 같고, 들어오던 돈이 끊기니 가진 자산마저 자산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세 번째 자리가 있다면 어떨까요.

8과 8과 8, 그리고 나

세 번째 자리가 있는 세계에서는 "예"와 "아니오" 사이에 "아직 결정하지 않음"이라는 정직한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앞 장에서 만난 신호의 언어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티(Ti)는 "한다"는 자리이고, 타(Ta)는 "하지 않는다"는 자리이며, 그 사이에 옴(Om)이라는 "잠시 기다림"의 자리가 있습니다. 신호등으로 치면 파랑과 빨강 사이의 노랑이지요. 이 세 자리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하루는 어떻게 다시 짜일 수 있을까요.

크라우니의 세계에서는 하루를 8시간, 8시간, 8시간으로 나눕니다. 이 세 토막을 저는 일과 배움과 쉼이라 부릅니다.

첫 번째 8시간은 일(티)입니다. 어떤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기술로, 당신의 경험으로, 당신의 가치를 세상에 내놓는 시간이지요. 회사를 다니는 것일 수도, 작은 가게를 꾸리는 것일 수도, 봉사를 하는 것일 수도, 손주를 돌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 손끝에서 나오는 가치"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 8시간은 배움(옴)입니다. 이것은 멍하니 보내는 시간과 다릅니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고, 그것을 이해하려 애쓰고, 세상을 보는 내 안경을 천천히 고쳐 끼우는 시간이지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새로운 솜씨를 익힐 수도 있고,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살아온 날들을 다시 정리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옴이 "잠시 기다림"의 자리였듯, 배움은 다음 걸음을 위해 숨을 고르는 자리입니다.

세 번째 8시간은 쉼(타)입니다. 그런데 크라우니의 쉼은 그저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잘 쉰다는 것은 곧 잘 나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것, 당신이 배운 것, 당신의 따뜻한 시간을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일이지요. 가족과 마주 앉는 시간,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시간, 공동체 안에서 내 자리를 찾는 시간. 이렇게 일과 배움과 쉼 사이를 오가다 보면, 당신은 더 이상 "은퇴한 노인"이 아니라 "계속 흐르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됩니다.

지금 당신이 쉰다섯이라고 해봅시다. 앞으로 서른다섯 해를 더 산다고 치면, 그 세월을 8과 8과 8로 나누면 어떻게 될까요. 일에 쓸 시간이 약 십만 시간, 배움에 쓸 시간이 약 십만 시간, 쉼과 나눔에 쓸 시간이 약 십만 시간입니다. 이제 그것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한가한 시간"이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순환하는 "살아 있는 시간"이 됩니다.

화폐가 바뀌면 삶도 바뀝니다

이제 조금 더 손에 잡히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여러분이 회사원으로 마흔 해를 일하면서, 아마 적지 않은 자산을 모으셨을 겁니다. 그 돈은 통장에 들어 있거나 집 한 채에 묶여 있을 테지요. 문제는 그것이 점점 "가벼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금리는 낮아지고, 물가는 오르고, 세금은 늘어납니다. 한 푼 없이 사는 것도 아닌데, 가진 자산이 자산처럼 든든하게 느껴지지 않는 역설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주식에 손을 대고, 어떤 분은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 돈을 넣어 보지만, 그마저도 나를 지켜주는 일 같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크라우니가 건네는 제안은 결이 다릅니다.

크라우니의 경제는 세 층으로 짜여 있습니다. 가장 아래는 주고받는 데 쓰는 화폐입니다. 이것을 크라우니원라 부르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달러처럼 결제와 교환에 쓰이는 보통의 돈이지요. 그 위에는 가치를 담아 두는 자산의 층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위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지는 부(富)의 층이 있습니다. 돈이 자산이 되고, 자산이 부로 거듭나는 사다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가운데 여러분이 가장 먼저 만나실 것은 자산의 층입니다. 당신이 경험과 기술로 8시간을 일하면, 그 대가가 포네라는 자산으로 지급됩니다. 포네는 대략 1달러 수준의 가치를 꾸준히 지키도록 설계된, 말하자면 "자산처럼 행동하는 화폐"입니다.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당신이 번 것이 시간이 지나도 쉬이 녹아내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집니다.

또 하나, 당신이 누군가를 도울 때, 또 누군가가 당신을 도울 때, 그 마음이 맘이라는 작은 단위로 쌓입니다. 한 번의 도움, 한 번의 가르침, 한 번의 다정한 조언. 좋아요를 누르고 하트를 보내듯, 작지만 정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쌓인 맘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뢰가 되어 당신 곁에 남습니다.

그리고 이 사다리의 가장 위, 부의 층에는 크라우니가 있습니다. 크라우니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단단해지도록 운용되는, 이 세계의 가장 근원적인 부입니다. 그 위로 한선과 선호라는 이름의 더 큰 부도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은 앞으로 천천히 열릴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다음 시즌, 그 다음 시즌에 걸쳐 차례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할 것은 단 하나입니다. 화폐에서 자산으로, 자산에서 부로 이어지는 이 사다리 위에서, 당신의 은퇴는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홉 명, 함께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경제에는 "저마다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셈법이 있었습니다. 내가 더 많이 가질수록 남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든다는 논리지요. 파이의 크기가 정해져 있으니, 내 몫이 커지면 누군가의 몫은 작아진다는 생각.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나와 남"을 갈라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크라우니의 세계관에서는 이 셈법이 "아홉 명"을 중심으로 다시 짜입니다. 당신 하나, 그리고 당신 곁의 여덟 명.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이웃일 수도, 멀리 떨어져 화면 너머로 만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아홉 명 안에서는 당신의 일과 배움과 나눔이 모두 "우리의 흐름"이 됩니다. 당신이 배우면 나머지 여덟 사람도 그것을 배울 길이 열리고, 당신이 나누면 그들도 누군가를 돕는 법을 배웁니다.

이 작은 동그라미 안에서, 당신의 쉰다섯 해는 더 이상 "저물어 가는 시간"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되는 시간"이 됩니다. 남은 시간을 홀로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홉 사람이 함께 내일을 지어 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점검

〔오늘의 점검〕

  • 지금 느끼는 전환의 무력감이, 혹시 나의 부족이 아니라 "낡은 셈법의 한계" 때문은 아닐까요.
  •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 배우고 싶은 것 하나, 나누고 싶은 것 하나를 각각 떠올려 보세요.
  • 내 곁의 여덟 사람을 헤아려 보세요. 그들과 함께라면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실천 하나

이번 주에, 전환기의 당신이 "언젠가 배워 보고 싶었던 것" 하나를 종이에 적어 두세요. 크라우니와 관련이 있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악기일 수도, 새로운 손재주일 수도,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한 줄이 바로 당신의 "배움" 8시간이 시작되는 첫 자리입니다.

자, 그렇다면 일과 배움과 쉼으로 나뉜 그 8과 8과 8이 실제 하루 속에서 어떻게 돌고 도는지, 다음 장 "티옴타 하루, 8·8·8"에서 함께 그 하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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