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을 앞둔 어느 봄, 저는 새로 이사 온 아파트의 윗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흘 전 우리 집 문 앞에 조용히 놓여 있던 떡 한 접시, 그 따뜻한 인사에 답하고 싶었거든요.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저보다 한참 젊은, 눈매가 단정한 분이었습니다. 차를 내어 주는 손길이 다정했지요. 저는 부엌 식탁에 앉아 한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이야기 끝에 저는 물었습니다. "댁이 하시는 일이 뭐라고 하던데요. 크라우니라는 게."
그분은 잠깐 웃더니, 찻잔을 한 모금 비우고 이렇게 말을 열었습니다. "음,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저는 평생 한 대학에서 가르친 사람입니다. 정년을 지나 명예라는 이름표를 단 지도 여러 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늘 즐거웠지만, 요즘 세상의 말들은 부쩍 빨라져서 가끔은 따라가기가 벅찼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부엌에서 들은 이야기는, 빠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천천히, 제 마음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이 책은 그날 들은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시 여러분께 옮겨 드리는 사람이 바로 저, 김프린입니다. 부족하나마 제가 받은 것을 제 말로 풀어 보려 합니다. 어려운 학문을 가르치던 사람이 아니라, 이웃집 떡 한 접시에 마음이 움직인 한 노인의 목소리로요.
먼저 한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회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중요한 안건이 올라오고, 누군가 말합니다. "찬성하시는 분 손 들어 주세요." 곳곳에서 손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정보가 부족하고, 한 번 더 들어 봐야 할 것 같고, 마음이 영 정해지지 않습니다. 손을 들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습니다. 그 어정쩡한 가운데서 여러분의 손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보통 기권이라고 부릅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아직 모르겠습니다"라는 정직한 한마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기권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자리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는 자리이니까요.
그분이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첫 단추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교수님, 컴퓨터에는 이 세 번째 자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컴퓨터에 무슨 손이 있다고요. 그분은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쥐는 휴대전화도, 은행의 현금 기계도, 부엌 냉장고 속 손톱만 한 칩도, 실은 단 두 마디로만 말을 한다고요. 켜짐과 꺼짐. 1과 0. 방 안의 전등 스위치처럼, 올리거나 내리거나 둘 중 하나뿐이라고요. 지난 수십 년 세상의 거의 모든 계산이 이 두 마디의 조합으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서 컴퓨터는 눈부시게 자라났다고요.
"그런데요, 교수님." 그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습니다. "세상이 정말 예와 아니오로만 나뉘던가요. 손을 들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그 자리, 컴퓨터에는 그 자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무릎을 쳤습니다. 그 자리. 모름을 모름이라 말하는 자리. 그분은 바로 그 빈자리를 컴퓨터 안에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신호를 하나 더했습니다. 0과 1 사이에 한 칸을 더 놓은 것이지요. 이제 컴퓨터는 두 가지가 아니라 셋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1, 이를 티(Ti)라고 부릅니다. 참이고, 그렇습니다이고, 데이터가 있다,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0, 이를 옴(Om)이라고 부릅니다. 티와 타 사이에 선 가운데 자리, 곧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기다려 보세요"의 자리입니다. 컴퓨터가 처음으로 보류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셋째는 -1, 이를 타(Ta)라고 부릅니다. 아니오이고, 거짓이고, 무언가와 이어진다,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신호등을 떠올렸습니다. 만약 신호등에 빨강과 파랑만 있었다면 우리는 늘 성급하게 발을 내디뎌야 했을 겁니다. 가라, 멈춰라, 둘뿐이니까요. 거기에 노랑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잠시 기다리세요"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멈춤도 진행도 아닌, 숨을 고르는 자리. 파랑이 티라면 빨강은 타, 그리고 그 사이의 노랑이 바로 옴입니다. 모름을 모름이라고, 보류를 보류라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
그런데 그분은 여기에 신호 하나를 더 붙였다고 했습니다.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를 깔끔하게 끊어 주는 쉼표 같은 자리, 이를 음(Em)이라 부르고 부호로는 -0으로 적습니다. 음은 셋에 다 담기지 않는 것들의 자리입니다. 비워진 자리, 한 칸 띄우는 자리, 셋으로는 도무지 맞아떨어지지 않는 예외들이 머무는 곳이지요. 저처럼 셈에 어두운 사람도 이렇게 새겼습니다. 티는 있음, 타는 없음, 옴은 그 사이의 기다림, 음은 그 모두의 바깥. 이 넷이 모여 균형을 이룹니다.
그래서 이름이 티옴타음(TiOmTaEm)입니다. 셋이 값을 담아 말하고, 하나가 그 사이를 끊어 줍니다. 그분은 이것을 4상 균형 3진이라 불렀습니다. 부르는 이름은 3진인데 자리가 넷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가만히 듣다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렇게까지 하셨어요? 신호 하나 더 늘리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요?"
그분의 대답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모름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정직함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만든다고 저는 믿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이 어그러지는 까닭은 모름을 아는 척하기 때문이라고요.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하다 말하고, 잘 모르는 것을 안다고 우기다 보면 그 거짓이 쌓여 신뢰가 무너진다고요. 그래서 컴퓨터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답이 없으면 없다고, 아직이면 아직이라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게요. 그렇게 정직한 신호가 한 층 한 층 쌓이면, 그 위에 비로소 믿을 만한 무언가가 자라난다고요.
저는 한 가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 티옴타음이라는 걸, 우리가 매번 손으로 입력해야 하나요? 그건 저 같은 사람한테는 영 어려울 텐데요."
그분이 웃었습니다. "아니요, 교수님. 바로 그 점이 제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세상의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거의 다 영어라고 했습니다. "if"니 "function"이니 "for"니, 모두 영어의 낱말들이라고요. 우리나라 사람이 컴퓨터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영어부터 익혀야 했고, 생각은 한국어로 하면서 기계에게는 영어로 말해야 하는 그 이상한 일을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고요.
"저는 그걸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분이 만든 언어의 이름은 한선씨입니다. 이 언어는 한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더해", "빼", "곱해", "나눠", "만약", "아니면", "동안", "함수", "반환". 이 모든 말이 진짜 한글이고, 영어로 옮길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식탁 위 냅킨에 짧게 적어 보여 주었습니다.
변수 나이 = 35
만약 (나이 > 18) { 출력값("어른입니다") }
저는 천천히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따로 배운 적 없는 제 눈에도 뜻이 보였습니다. "나이라는 것을 서른다섯으로 두고, 만약 나이가 열여덟보다 크면 '어른입니다'라고 내보내라." 한글이 그대로 명령이 되는 것이지요. 외국어 한마디 못 하는 가게에 들어가 "국밥 하나 주세요" 하면 김 오르는 국밥이 나오듯이요.
한선씨를 익히는 길은 두 갈래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고수준이라는, 사람이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기 편한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RPN이라는, "값을 먼저 쓰고 셈을 뒤에 두는" 정통의 길이지요. "3 7 더해"처럼 적는데, 우리가 말하는 "3 더하기 7"과는 순서가 다릅니다. 낯설지만, 이쪽이 기계가 실제로 일하는 순서와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평소엔 편한 고수준 길로 다니다가, 속이 단단해야 하는 핵심을 만들 때는 RPN으로 보닛을 여는 셈이지요. 두 길 모두 한국어라는 같은 땅 위에 나 있습니다.
생각이 한국어가 되고, 한국어가 그대로 코드가 되고, 코드가 컴퓨터의 일이 됩니다. 그 사이에 끊기는 데가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저녁 햇빛이 길게 걸려 있었지요. 그분은 찻잔을 내려놓고, 조금 망설이다 말했습니다.
"교수님, 저는 이 정직함이 컴퓨터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셋으로 세는 것, 모름을 모름이라 하는 것, 한국말로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어떻게 돈을 다루고, 어떻게 서로를 믿는지까지 바꿀 수 있다고요. 가령 하루를 셋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덟 시간은 일하고, 여덟 시간은 배우고 누리며, 여덟 시간은 쉬는. 일과 배움과 쉼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8과 8과 8로 균형을 잡는 살림 말입니다. 또 돈에도 층이 있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주고받는 화폐가 있고, 그 위에 가치를 담아 두는 자산이 있고, 다시 그 위에 오래 자라는 부가 있다고요. 화폐에서 자산으로, 자산에서 부로 올라가는 사다리. 그 사다리를 함께 오르고, 끝내 나누는 이야기까지 이 책에 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다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꼈습니다. 이 사람은 기계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건 참 큰 꿈이네요." 제가 말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분은 부끄러운 듯, 그러나 또렷이 답했습니다.
우리는 잠깐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창밖이 점점 붉어졌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크라우니라는 이름도 제겐 생소하고, 앞으로 어떻게 함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름 속에서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한 발씩 가는 것이겠지요. 정직하게, 함께, 천천히. 마치 옴이라는 그 노란 신호처럼, 서두르지 않고 숨을 고르며 말입니다.
그 부엌을 나서며 저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 보기로요. 그리고 들은 만큼 여러분께 옮겨 드리기로요. 그러니 이 책은, 어려운 기술서가 아닙니다. 떡 한 접시에서 시작된, 한 노인의 배움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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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단 한 가지만 해 보세요. 누군가 무언가를 물어 왔을 때, 정말로 모르는 것이라면 "모르겠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해 보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마디를 덧붙여 보세요. "그럼 우리 같이 알아볼까요?" 이 작은 정직함이, 신뢰의 첫걸음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가지 물음이 남습니다. 이 좋은 이야기를 왜 하필 지금, 그리고 왜 하필 나 같은 사람이 들어야 하는 걸까요. 다음 장에서 저는 바로 그 질문을 들고 다시 그 부엌으로 돌아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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