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를 잘 맡아 썼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잘 쓴 다음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지요. "나는 어쩌다 그렇게 쓰게 되었을까." 돈을 어떻게 다루는지,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 비치고, 그 신앙을 따라가 보면 그가 몸담은 공동체의 문화가 보입니다. 저는 이 장에서 여러분과, 그 신앙과 문화가 어떻게 한 뿌리에서 자라나 우리 일상에 조용히 열매를 맺는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 그리고 김치 한 보시기를 앞에 두고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셋 중 하나만 빠져도 어쩐지 한 끼 같지가 않더군요. 가만히 보니 우리 삶에는 이렇게 '셋'이 참 많습니다. 밥과 국과 반찬이 모여야 비로소 한 끼 밥상이 되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이어져야 한 사람의 인생이 됩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문명에서 셋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움직일 때 일이 이루어지고, 동서와 고금을 가리지 않고 셋은 완전함과 균형, 신비의 부호로 여겨졌지요. 제가 만든 크라우니의 핵심인 4상 균형 3진도 바로 이 오래된 직관 위에 세웠습니다. 텃밭에 씨앗 하나를 묻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하늘의 볕과 땅의 양분, 그리고 사람의 정성이 함께 들어가야 싹이 틉니다. 하늘 것만으로도, 땅 것만으로도, 사람의 손길만으로도 안 됩니다. 그 셋이 손을 맞잡는 순간, 비로소 새 생명이 흙을 밀고 올라옵니다.
우리 전통의 빛깔에도 셋이 숨어 있습니다. 청색과 홍색과 황색, 이 세 색이 어우러져 한국만의 고운 멋을 빚어냅니다. 홍어와 돼지고기와 묵은지가 한자리에 모여야 비로소 제맛을 내는 '삼합'처럼, 셋은 우리 곳곳에서 조용히 균형과 완성을 일러 줍니다. 그것처럼 신앙과 문화도 따로 노는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밥상을 이루는 셋의 한 자리입니다. 개인의 안쪽 깊이와 공동체의 너비, 그리고 그 둘을 잇는 작은 선택들. 이 셋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빚어냅니다.
크라우니의 세계관은 네 상(相)이 균형을 이루며 한 사회를 살아 숨 쉬게 합니다. 티는 기업과 기술과 과학으로 드러나는 자리(+1), 타는 정부와 국방과 정책으로 맞서며 잇는 자리(−1)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옴이 있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보통의 자리, 곧 기다림과 중심을 지킵니다. 마지막으로 음은 그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것들, 예외와 여백과 빈자리를 품습니다. 이 네 상을 저는 티·옴·타·음이라 부릅니다.
그 가운데 신앙과 문화는 음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나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필 음의 자리일까요. 신앙과 문화란 본디 셋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것들, 숫자로 다 셀 수 없는 마음과 정성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개인의 안쪽 깊이를 다룬다면, 문화는 공동체의 너비를 품습니다. 깊이와 너비, 결국 둘은 한 그루 나무의 뿌리와 가지입니다.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려야 가지에서 열매가 맺히지요. 한 사람이 신앙 속에서 얻은 양분은, 그가 문화 속에서 나누는 말과 행동으로 익어 갑니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웃음이 되고,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그 동네의 분위기가 되는 식입니다. 이렇게 신앙과 문화는 한 뿌리에서 자라난 두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이 뿌리에 물을 줄 수 있을까요.
신앙의 시작은 종종 작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됩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하는 질문들 말입니다. 앞 장에서 함께 나눈 달란트도 결국 "이 선물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마음의 문제였지요. 내가 가진 것이 본디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이라는 깨달음, 이것이 신앙의 밑바탕이 됩니다.
그 깨달음을 키워 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소박합니다. 한국 교회의 오랜 전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경 필사'였습니다. 글 한 자 한 자를 손으로 옮겨 적을 때, 그 말씀이 손가락 끝에서 가슴까지 천천히 닿는 경험이 있습니다. 그저 눈으로 읽는 것과 손으로 옮기는 것은 사뭇 다릅니다. 마치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길을 걷듯, 우리도 손으로 말씀을 더듬으며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이런 깊이 있는 신앙 경험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 마침내 한 공동체의 문화를 빚어냅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그 얼굴에 평온을 가져오면, 그것을 곁에서 본 이웃은 자연스레 그 얼굴을 따라갑니다. 정책과 제도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마음이 마음을 부르는 일이 거기서 일어납니다.
신앙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는 어떤 곳일까요. 무언가를 정할 때 세 갈래의 목소리가 고르게 들리는 곳입니다. 한국 교회의 장로회 문화도 그렇지 않습니까. 목사님의 영적 리더십, 장로님의 현실적 판단, 권사님의 섬기는 마음. 이 셋이 함께 모여 한 교회의 앞날을 헤아립니다. 어느 한 분의 의견이 절대적이지 않을 때, 결정은 훨씬 너그럽고 지혜로워집니다.
이것은 교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할머니의 삶의 지혜와 부모의 현실적 판단, 그리고 자녀의 새로운 시각이 서로를 존중하며 집안일을 함께 헤아릴 때, 그 가정 또한 신앙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이 됩니다. 우리 전통에서는 이를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일을 정한다"고 했지요. 한 사람의 확신보다 두 사람의 합의가 든든하고, 둘의 합의보다 셋이 마음을 모은 합의가 훨씬 단단하다는 뜻입니다.
신앙과 문화가 살아 있는 공동체의 비결은, 실은 뜻밖에도 단순하더군요. '지도자가 화내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따뜻함이 곧 청년들의 발걸음을 불러들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권위와 관계와 돌봄, 이 세 축이 균형을 이룰 때 공동체는 한결 건강하게 자랍니다. 엄한 말씀도 필요하고 질서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따뜻한 마음의 관계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그곳에서 생명이 자라고 사랑이 흐릅니다.
〔오늘의 점검〕
신앙과 문화를 무슨 거창한 것으로 여기는 건 우리의 작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사실, 우리가 매일 내리는 자그마한 선택들이 모인 것입니다.
친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당신이 가만히 건네는 한 통의 메시지. 그것이 문화입니다. 회사에서 누군가 실수했을 때, 책망 대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손을 내미는 일. 그것이 신앙의 실천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이웃에게 인사를 먼저 건네는 것, 지난 모임에서 다친 데는 없는지 물어주는 것.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한 마을의 분위기를 만듭니다.
돈을 잘 쓰는 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크라우니에는 마음을 나누는 작은 수단이 있습니다. '맘(MOM)'은 마치 "좋아요"나 작은 하트처럼, 고마운 마음을 가볍게 전하는 정서의 단위입니다. 그보다 조금 더 든든하게 누군가를 거들고 싶을 때는 '포네(FONE)'로 마음을 자산처럼 단단히 실어 보낼 수 있지요. 내가 벌어들인 것의 한 자락을 나누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남을 위해 먼저 쓰는 일. 맘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포네로 누군가의 짐을 거들고, 내 시간을 다른 이의 기쁨을 위해 쓸 때.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금씩 더 따뜻하게 데웁니다.
이 권을 걸어오며 우리가 함께 본 부의 사다리를 떠올려 보십시오. 날마다 주고받는 크라우니원는 교환을 위한 화폐였고, 맘과 포네는 마음과 가치를 담아 두는 자산이었으며, 그 위에 크라우니라는 부가 천천히 영글어 갔습니다. 언젠가 그 너머로 한선과 선호라는 더 너른 부의 들판이 열릴 날도 올 것입니다. 다만 그 들판은 앞으로 차차 펼쳐질 내일의 이야기이니, 오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입니다. 그 모든 사다리의 맨 위 칸조차도, 끝내는 돈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돌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 권을 함께 걸어오면서, 우리는 인생을 다시 세우는 방법들을 하나씩 나누어 왔습니다. 8과 8과 8의 균형으로 하루를 정직하게 살고, 아홉 명의 동료와 더불어 일을 일구고, 맡겨진 달란트를 잘 써서 그렇게 얻은 것을 다시 나누는 일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의 한복판에는 언제나 '셋'이 있었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깊이요, 문화는 공동체의 너비입니다. 그 둘을 잇는 것은 바로 당신의 선택입니다. 당신이 오늘 누군가에게 건네는 한마디, 나누는 한 웃음, 내미는 한 번의 손길. 그것이 신앙이고, 그것이 문화를 짓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밥상을 차릴 때 잠깐만 미소 지어 주십시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반찬 한 가지. 이 셋이 제자리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밥을 먹는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과 문화와 당신의 선택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이 옆 사람의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이 또 다른 선택을 낳는 세상. 그 세상을 함께 차려 가시기를, 김프린이 따뜻한 마음으로 청합니다.
〔오늘의 한 가지 실천〕 오늘 하루, 마음에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짧은 안부 한마디를 먼저 건네 보십시오. "잘 지내시지요? 문득 생각났습니다." 이 한 문장이 당신에게서 시작되는 가장 작은 문화의 씨앗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그 마음을 나누는 두 가지 수단, 맘과 포네로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지 더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신앙과 문화가 일상의 작은 거래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함께 보시지요.
첫 번째 책은 선물이에요. 가입하면 100맘을 드리니까, 두 번째 책부터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요. 친구를 추천하면 50맘도 생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