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 병원 복도에 가만히 서 있어 봅니다. 누군가는 초음파 사진을 들었다 놨다 하고, 약사는 약장 앞에서 손가락을 헤아립니다. 검사실 한쪽에서는 유리병에 담긴 피 한 방울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 모든 분주함이 사실은 하나를 향하고 있다는 걸,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딱 맞는 답"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옆 침대 환자에게 잘 듣던 약이 내게는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같은 병이라도 사람마다 몸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의료의 오랜 꿈은 늘 같았습니다.
"당신 몸 안의 단백질은 지금 어떤 모양인가요? 당신의 DNA는 어떤 미래를 품고 있나요? 그래서, 당신 한 사람에게는 어떤 약이 맞을까요?"
이 물음에 답하는 일을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라고 부릅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는 약이 아니라, 오직 당신만을 위한 약을 찾는 일이지요.
2026년 여름, 인공지능은 이 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단백질의 모양을 그려내는 AI, 생명의 설계도를 통째로 읽는 AI, 그리고 그들이 손수 설계하기 시작한 신약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허락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크라우니는 이 그림의 어디쯤에 서 있을까요. 함께 걸어 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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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수십만 종류의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단백질은 저마다 정확한 입체 모양을 갖춰야만 제 일을 해냅니다.
저는 이걸 열쇠와 자물쇠에 비유하곤 합니다. 열쇠 끝이 조금만 어긋나도, 아무리 힘주어 비틀어도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 몸속 단백질도 똑같아요. 모양이 어긋나면 병이 되고, 그 자물쇠에 꼭 맞는 열쇠를 찾아내면 약이 됩니다.
문제는 그 모양을 알아내기가 너무나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단백질 하나의 모양을 알아내려고 X선 결정학이며 전자현미경 앞에서 몇 달, 때로는 몇 년을 보냈습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시행착오였지요.
그러다 2020년,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제 그건 AI가 대신 맞혀드릴게요." 알파폴드(AlphaFold)라는 AI를 세상에 내놓은 것입니다.
처음엔 "설마 될까" 하던 의학계가 결과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AI가 그려낸 모양이 실제와 거의 맞아떨어졌거든요.
2026년, 이야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딥마인드에서 갈라져 나온 이소모르픽 랩(Isomorphic Labs)이 올해 2월, 약물 설계 엔진(IsoDDE)을 공개했습니다. 단백질의 모양만 그리는 게 아니라, 그 단백질에 어떤 약이 어떻게 들어맞는지까지 보여주는 AI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렇습니다. 약물과 단백질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맞히는 정확도가, 이전 세대 알파폴드 3에서는 23.3퍼센트였는데, 새 엔진에서는 50퍼센트로 올라섰습니다. 두 배가 넘지요. 이소모르픽은 이미 암·면역·심장 관련 약물 17개를 AI로 설계해 두었고, 올해 말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험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이의 입 안쪽에서 세포를 살짝 떼어낸다고 해봅시다. 그 작은 세포 안에는 30억 개의 DNA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생명의 설계도이지요.
그런데 사람마다 이 글자들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당뇨에 약한 쪽일까? 어떤 약이 내 몸에 잘 들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일이 유전체 분석(genomics)입니다.
2025년, 미국의 아크 인스티튜트(Arc Institute)가 에보 2(Evo 2)라는 AI를 내놓았습니다. 이 AI는 지구 위 12만 8천 종 생명체의 DNA를 통째로 공부했습니다. 글자 수로 따지면 9.3조 개. 박테리아부터 식물, 동물, 사람까지, 말하자면 생명이 진화해 온 과정 그 자체를 읽어낸 셈입니다.
그래서 에보 2는 당신의 DNA 한 구간을 들여다보면 이런 이야기를 건넵니다. "이 변이는 질병과 관련이 있어요" — 90퍼센트가 넘는 정확도로 말이지요. 실제로 유방암과 관련된 유전자(BRCA1)의 돌연변이를 찾아내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무거운 질문이 남습니다. "정말로, 사람한테 써도 되나요?"
2026년 지금, AI가 설계한 신약의 임상시험은 하나둘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떤 약도 정식 허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전 세계 의약 당국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중이지요.
흐름은 분명합니다. AI에서 출발한 신약이 임상에 들어간 건수가 2023년에는 67개였는데, 2026년 초에는 200개를 넘어섰습니다. 그중 열다섯에서 스무 개가 올해 안에 가장 중요한 마지막 시험 단계로 들어설 예정입니다.
이 가운데 단 하나라도 끝까지 성공한다면, 의료의 역사가 한 줄 다시 쓰입니다. 그날까지 의료계는 손톱을 깨물며 "정말 될까"를 되뇌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세 개의 수수께끼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크라우니는 무엇을 보태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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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라우니는 아직 신약을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단백질을 그리는 AI도, DNA를 읽는 AI도 세상의 다른 분들이 훌륭하게 해내고 있고요.
대신 저희는 한 가지 질문을 들고 의료 앞에 섭니다. "우리가 세상 모든 것을 네 상태로 바라본다면, 의료는 어떻게 나뉠까?"
크라우니 세계관에는 티·옴·타·음이라는 네 상태가 있습니다. 이걸 의료에 살며시 포개어 보겠습니다.
티(+1) — 드러난 사실. 당신의 단백질 구조, DNA 배열처럼 측정해서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입니다. 초음파 사진, 혈액 검사 수치. "지금 당신의 몸은 이렇습니다" 하고 말해주는 것들이지요.
옴(0) — 아직 모르는, 대기 중인 것. 이 약이 당신에게 들을 확률이 60퍼센트라는 말. 그 나머지 40퍼센트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판단을 멈추고 더 살펴봐야 하는 자리입니다. 의학에는 이 기다림의 자리가 늘 있습니다.
타(-1) — 원인과 결과의 사슬. 어떤 생활습관이 병을 부르는 과정, 약이 몸속에서 일으키는 연쇄반응. 무엇이 무엇을 일으키는지 그 연결의 고리를 따라가는 자리입니다.
음(-0) — 정규에서 벗어난 것, 그리고 당신이라는 단 한 사람. 셋(티·옴·타)에 깔끔히 담기지 않는 모든 것입니다. 돌연변이, 예외, 설명되지 않는 회복.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만의 면역 체계, 당신만의 마음과 회복력. 약이 아무리 좋아도 당신의 몸과 마음이 일어서려 하지 않으면, 의료는 끝내 실패합니다.
오늘의 의료는 이 네 칸을 따로따로 봅니다. 의사는 수치(티)를 읽고, 통계학자는 확률(옴)을 말하고, 약사는 약의 작용(타)을 설명하고, 간호사는 "회복하고 싶으세요?"라고 마음(음)을 묻습니다. 저마다 한 칸씩 맡고 있는 셈이지요.
크라우니가 꾸는 꿈은 이 네 칸을 동시에 붙잡는 의료입니다.
올여름 이소모르픽의 엔진은 약과 단백질의 입체 모양을 50퍼센트 정확도로 맞혔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박자 멈춰 서고 싶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약이 당신 몸에 들어가면 표적 단백질 하나만 만나는 게 아닙니다. 수십, 수백 개의 다른 단백질과도 부딪치지요(부작용). 당신의 간과 콩팥이 그 약을 얼마나 빨리 처리할지는 또 당신의 유전자에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이 약이 나를 낫게 하리라"는 당신의 믿음조차 회복 속도를 바꿉니다.
그래서 크라우니가 그리는 정밀 의료의 그림은 세 손이 맞잡는 모양입니다.
첫째 손은 단백질을 설계하는 AI — 이소모르픽과 에보 같은 친구들이 분자를 그려줍니다.
둘째 손은 당신의 DNA를 읽는 AI — 에보 2가 당신이 그 약에 어떻게 반응할지 미리 일러줍니다.
셋째 손이 크라우니의 몫입니다. 오직 당신 한 사람을 위한 의료 경로를, 네 칸을 모두 펼쳐 설계하는 일입니다.
"말은 좋은데, 손에 잡히는 게 있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크라우니에는 이미 이런 뼈대가 서 있습니다.
하나는 에임드(AIMED)입니다. 조직 안의 여러 문제를 티·옴·타·음 네 상태로 갈라 진단하는 규칙 엔진이지요. 지금은 회사 업무를 진단하는 데 쓰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네 칸으로 나눠 본다"는 그 논리는, 환자의 상태를 읽는 데도 그대로 옮겨 탈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셀코어입니다. 규칙으로 판단을 엮는 의사결정 시스템인데, "이 사람에게는 A보다 B가 맞을 확률"을 수백 개 규칙으로 짜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전자 변이를 네 상태의 작은 격자로 표현하는 인코딩 방식도 다듬어 두었습니다. 생명 정보를 다루는 분들이 반가워할 만한 언어이지요.
아직 의료 현장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집을 짓기 전에 기둥부터 세우는 법이니까요.
여기까지 와서 제가 가장 힘주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의료는 결국 기계가 하는 일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 해내는 일입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약을 설계해도, 당신의 면역 체계가 일어서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고, 침입한 균과 싸우고, 병든 세포를 조용히 치워내는 일 — 그건 당신 안의 초지능, 바로 당신의 몸이 하는 일입니다.
당신의 몸은 이미 수십억 년의 진화가 빚어낸 최고급 자가수리 시스템입니다. AI는 그 시스템을 깨우고, 곁에서 응원하고,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친구일 뿐이지요. 약은 거들 뿐, 낫는 것은 당신입니다.
그러니 크라우니의 가장 따뜻한 믿음을 한 문장으로 적어두겠습니다. AI는 약이고, 진짜 의사는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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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멀리, 2030년쯤을 함께 그려볼까요.
산골 마을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가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봅시다.
오늘날이라면 이렇습니다. 상담을 받으려면 서울 큰 병원까지 올라가셔야 하고, 유전자 검사는 수백만 원이 들고, 맞춤약은 형편 되는 일부에게만 닿습니다. 할머니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지요.
이제 크라우니가 꿈꾸는 풍경을 그려봅니다. 할머니의 흙집 선반에 작은 기기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크라우니집사 같은, 손바닥만 한 엣지 AI입니다). 혈액 한 방울로 유전자를 읽고(에보가 이미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 정보를 전 세계의 AI 신약 설계 데이터와 맞춰 봅니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말로 이렇게 건넵니다.
"할머니, 이 약이 할머니 몸에 가장 잘 맞을 것 같아요."
그 약은 가까운 파트너의 작은 공장에서 인쇄되듯 만들어집니다. 할머니는 끝내 서울에 갈 일이 없습니다.
이 풍경에는 크라우니가 오래 품어온 한 가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좋은 의료가 형편이나 거리 때문에 누군가를 비껴가서는 안 된다는 마음입니다. 가장 좋은 답이 가장 외딴 흙집에까지 닿는 것 — 저는 그것이 정밀 의료가 가야 할 자리라고 믿습니다.
큰 그림을 말씀드렸으니, 경계도 정직하게 그어두겠습니다.
지금 크라우니가 할 수 없는 일부터요. 아직 임상으로 증명된 것은 없습니다. 이건 크라우니만의 한계가 아니라 세상 모든 AI 의료가 함께 선 자리입니다. 약을 정식으로 허가하는 일은 정부와 의약 당국의 몫이고,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은 끝내 사람 손길의 몫입니다. 저희가 넘봐서는 안 되는 자리들이지요.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단백질을 설계하는 좋은 친구들(이소모르픽, 에보)과 손을 잡는 일. 당신의 유전자를 읽어내는 일. 무엇보다, 당신이라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의료 경로를 네 칸으로 균형 있게 설계하는 일 말입니다. 그것도 큰 병원이 아니라 엣지 기기 위에서, 비용의 벽 없이, 당신의 언어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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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의료라는 말에는 '정밀'이라는 단단한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을 닫으며, 그 앞에 더 먼저 와야 할 단어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너'입니다.
병원이 아니라 당신의 집에서, 어려운 용어가 아니라 당신의 말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만의 의료 계획을 받는 것. 그것이 진짜 정밀 의료입니다.
2026년, 세상은 AI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할 수 있어?" 크라우니는 아직 선뜻 손을 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증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 솔직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AI들이 단백질의 모양을 그려낼 때, 크라우니는 당신 몸 안에 잠든 초지능을 깨우는 일을 하려 합니다. 그 일이 더 어렵고, 또 더 아름답다는 것도요.
당신과 AI가 함께 당신을 낫게 하는 날. 크라우니는 그 하루를 꿈꿉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그 꿈을 떠받칠 또 하나의 토대 —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가치를 흐르게 하는 이야기로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첫 번째 책은 선물이에요. 가입하면 100맘을 드리니까, 두 번째 책부터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요. 친구를 추천하면 50맘도 생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