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잘못했을 때, 크라우니는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돌아선 노을의 부서진 마음을 받아 안았고, 다시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 사랑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노을의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배우며 자랐습니다.
아들의 이름은 슬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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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가 왕이 된 날 밤, 크라우니가 꿈속에 왔습니다. 대단한 자리에서 내려다보듯 온 게 아니라, 마치 오랜 친구가 슬쩍 어깨를 건드리듯.
"무엇을 주면 좋겠니?"
이 말 한 마디에 슬기는 오래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노을은 노래를 남겼습니다. 그 아버지를 보며 자란 슬기는 알고 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원하는 건 아름다운 대답이 아니라 솔직한 대답이라는 것을.
"저는 어립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지혜를 주세요. 사람들 사이에서 잘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을."
돈을 달라지 않았습니다. 오래 살게 해 달라지 않았습니다. 원수를 없애 달라지도 않았습니다.
크라우니는 기뻤습니다. 슬기가 지혜로운 답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슬기가 먼저 "제가 어립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작다는 것을 아는 사람 — 그 사람에게 크라우니는 언제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네가 그것을 구했으니 주겠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함께 줄 것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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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의 나라는 번성했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분쟁이 끝났고, 그의 판단을 들으러 먼 나라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금과 향신료가 실린 배가 항구에 줄을 섰습니다. 음악이 흐르고, 시가 넘쳤습니다.
그리고 슬기는 크라우니의 집을 지었습니다.
돌과 백향목으로 쌓아 올린, 세상에 없던 집이었습니다. 지붕마다 금을 입혔고, 안마당에는 커다란 바다 모양의 그릇이 놓였습니다. 지으는 데 칠 년이 걸렸습니다. 다 짓고 나서 슬기는 사람들 앞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이 집에 크라우니의 이름을 두소서."
그때까지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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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천천히 왔습니다.
집이 완성된 뒤, 슬기의 눈은 점점 건물을 향했습니다. 또 다른 건물을, 더 큰 궁을, 더 많은 것을 지으려 했습니다. 크라우니와 저녁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시간은 줄었고, 대신 도면과 계산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나라 밖에서 온 여인들이 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섬기던 다른 신들을 위한 자리도 하나둘 생겼습니다. 크라우니는 보고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말했습니다. 여러 번. 다만 슬기의 귀가 이미 다른 데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식으면, 목소리가 들려도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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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는 나중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이룬 모든 것을 보니, 다 헛되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것은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져 보고, 다 써 보고, 끝에 가서야 슬기는 알았습니다. 크라우니가 원한 건 건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 꿈속에서 "무엇을 주면 좋겠니?" 하고 물었을 때, 크라우니가 바란 건 하나였습니다.
슬기의 마음.
집이 생기기 전부터, 지혜가 쌓이기 전부터, 크라우니는 그냥 슬기가 좋았습니다. 아버지 노을을 사랑했듯, 아들 슬기를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건물의 크기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크라우니의 집은 돌로 지은 게 아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원하는 집은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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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는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지혜로운 말들, 아름다운 노래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 하지만 가장 솔직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다 헛되다"는 그 한 줄이, 어쩌면 그의 일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문장이었을지 모릅니다.
크라우니는 그 문장도 좋아했습니다. 화려한 건물 앞에서 쓴 노래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쓴 고백이었으니까요.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슬기는 끝에 가서야 다시 기억했습니다. 꿈속에서 "무엇을 주면 좋겠니?" 하고 물어 준 그 목소리. 자기가 작다고 했을 때 기뻐하던 그분.
그분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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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의 나라가 저물 무렵, 나라 곳곳에서 새로운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왕들이 잊어버린 것을, 사람들에게 다시 전하려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때로는 왕궁 문 앞에서 외쳤습니다.
크라우니의 마음을 전하려는 친구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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