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 CHAPTER 05

결정이 들어가는 게임 — 블랙잭과 홀덤

바카라 테이블 앞에서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칩을 플레이어에 미느냐 뱅커에 미느냐, 그게 전부다. 카드는 정해진 순서대로 까이고, 우리 손이 닿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카드 모서리를 손톱으로 천천히 긁어 깐다. 심장이 뛴다. 마치 그 숫자를 내가 만들어 내는 것처럼.

이것이 바카라의 가장 묘한 설계다. 통제감은 진짜인데, 통제는 가짜다. 손은 떨리도록 바쁜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0이다. 앞 장에서 봤듯, 자본을 100배 1000배 키워도 ROI는 −4.5~4.7%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만 원을 걸 때마다 평균 106원이 조용히 사라지는 −1.06%의 천장이, 무슨 짓을 해도 머리 위에 못 박혀 있었다.

그렇다면 손이 닿으면 숫자가 실제로 움직이는 게임은 어떨까.

서울 강남의 한 홀덤펍에서 만난 38세 정민호 씨 이야기다. 그는 7년을 바카라에 묶여 있었다. 잃은 돈은 대략 1억 2천만 원, 본인 진술이다. "패턴을 읽는다고 믿었어요. 용이 나온다, 핑퐁이 온다, 그런 거요." 그러다 친구가 A4 한 장짜리 블랙잭 베이직 전략표를 보여줬다. "16이고 딜러가 7 이상이면 히트, 11이면 더블. 외울 것도 없어, 표만 보면 돼." 그는 처음엔 코웃음을 쳤다. "그게 무슨 실력이야, 표 보는 게." 그런데 그 표 한 장이 7년 동안 못 본 숫자를 보여줬다.

블랙잭에는 바카라에 없던 게 있다. 선택이다. 합이 16일 때 멈출 수도, 한 장 더 받을 수도, 판돈을 키우고 한 장만 받을 수도 있다. 히트·스탠드·더블, 매 판 세 개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손잡이가 있다는 건 내 결정이 결과로 흘러 들어간다는 뜻이다. 블랙잭을 아무렇게나 치면 카지노 우위가 2% 안팎까지 벌어지지만, 베이직 전략표대로만 치면 0.5% 근처까지 깎인다. 표 한 장이 손해를 4분의 1로 줄인 것이다.

여기서 한 칸 더 올라가면 카드 카운팅이 있다. 이름은 무섭지만 원리는 초등학교 산수다. 작은 카드가 나오면 +1, 큰 카드가 나오면 −1, 머릿속에서 더하고 빼기만 하면 된다. 큰 카드가 많이 남은 덱에서 베팅을 키운다. 이렇게 하면 EV가 +0.73%까지 올라간다. 부호가 바뀐다.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바카라에선 평생 한 번도 못 본 부호다. 운게임의 천장은 0이었다. 잘 쳐봐야 손해가 0에 가까워질 뿐이었다. 결정이 들어가는 게임은 그 천장이 0을 뚫는다.

정민호 씨는 석 달간 거실 바닥에서 카드 한 벌로 카운팅을 연습했다. "신기한 게요, 바카라 칠 때랑 도파민은 똑같아요. 심장 뛰고 손에 땀나고. 그런데 이번엔 '내가 잘 골랐다'는 느낌이 얹혀요." 같은 자극, 다른 보상. 운의 스릴 위에 통제의 만족이 포개진 것이다.

다만 정직해야 한다. 카지노도 카운팅을 100년 전부터 안다. 그래서 카드가 절반쯤 빠지면 새 덱을 섞고, 온라인은 매 판마다 카드를 다시 섞는다. 연속 셔플이 걸리면 Hi-Lo의 +0.73%는 0으로 돌아간다. 셀 바닥이 사라지니까. 온라인 블랙잭은 화면만 블랙잭이고 속은 바카라다. 마카오 카지노 수익의 절대다수가 바카라 한 게임에서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카지노는 실력이 안 먹히는 게임을 메인에 깐다.

그래서 더 높은 칸이 있다. 텍사스 홀덤이다. 홀덤은 카드를 매 판 섞어도 상관없다. 거기서 읽는 것은 카드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받은 두 장을 보고 들어갈지 접을지, 그 핸드 선택 하나만 제대로 해도 EV가 +2.68%까지 올라간다. 카운팅의 세 배가 넘는다. 블랙잭은 딜러라는 기계와 싸워 우위가 작지만, 홀덤은 사람과 싸운다. 상대가 나보다 실수를 많이 하면 그 실수가 전부 내 수익이 된다.

홀덤에는 또 하나가 쌓인다. 어제가 오늘로 이어진다. 카드는 섞이면 기억이 지워지지만, 사람을 읽는 눈은 매 판 리셋되지 않는다. 100판보다 1000판을 친 사람이 더 잘 읽는다. 레벨업이 캐릭터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게임이다.

단, 그 +2.68%는 상대적이다. 테이블 모두가 잘하면 엣지는 서로 상쇄되어 0에 가까워지고, 판돈에서 떼어가는 레이크가 야금야금 깎는다. 결국 홀덤에서 내 천장은 상대방 실력에 묶여 있다. 내 수익이 남이 못하기를 바라는 데서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내 천장이 왜 상대방 손에 잡혀 있어야 하지?

정민호 씨는 지금 바카라를 안 친다. 끊겠다고 결심해서가 아니라 그냥 재미가 없어졌다. "손이 안 닿는 게임을 어떻게 다시 해요.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만 빠지는 거잖아요." 그는 블랙잭으로 옮겼고 지금은 홀덤 핸드 차트를 외운다. 잃는 속도가 7년 만에 처음으로 느려졌다.

결론을 내려 주지는 않겠다. 직접 보는 게 낫다. play.crowny.org에서 바카라와 블랙잭, 홀덤을 같은 자본으로 나란히 돌려 보자. 한쪽 그래프는 무슨 짓을 해도 내려가고, 다른 쪽은 손이 닿는 만큼 올라간다. 그리고 홀덤의 그 천장이 상대의 실수만큼만 높아진다면, 그 능력을 사람 한 명이 아니라 훨씬 큰 무대에 앉히면 천장은 어디까지 열릴까. 그 답은 다음 장에서 함께 들여다본다.

혹시 지금 가슴이 답답하거나 "그래도 한 판만 더" 하는 충동이 올라온다면, 그건 약함이 아니라 회로의 일이다.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 도박문제 헬프라인 1336, 24시간 무료·익명이다.

내 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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