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화주 아주머니가 전화기를 들고 있다. 옆에는 박스가 쌓여 있다. 얼굴은 걱정스럽다.〕
오후 세 시, 한 공장의 사무실에서 일이 터진다. "이 물건 내일 서울 가야 돼!" 아주머니는 화물차 회사한테 전화를 건다. 전화가 울린다. 울린다. 그리고 마침내 나온다. "얼마일까요?" "차는 몇 시에 와요?" 아주머니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빨리 와야 해요. 그리고… 차가 괜찮은 거죠?" 전화 저편에선 "당연하죠!"라고 하지만, 아주머니는 알고 있다. 지난달엔 와서 본 그 차. 창문 떨어져 있고, 바퀴도 이상했다. 그 차로 가다가 물건이 깨지면? 돈은 누가 낼까?
〔그림: 시계가 3시에서 4시, 5시로 자꾸만 움직인다. 아주머니는 창밖을 본다.〕
"차는 정확히 몇 시에 와요?" 아주머니가 다시 묻는다. 전화 저편: "글쎄요, 지금 한 시간, 아니 두 시간? 길이 막혀 있어서…"
아주머니는 한숨을 쉰다. 물건을 기다리는 서울 회사도 답답할 텐데, 본인도 답답하다. 화물차가 한두 시간 늦으면, 손님은 화내고, 아주머니는 설명해야 한다. "왜 이리 늦냐니까요…" 근데 뭘 해? 차가 이미 나와 버렸는데. 중간에 뭐 하는지 알 수도 없다.
비행기는 시간표가 있고, 버스는 위치를 보여준다. 그런데 왜 화물차는? "지금 어디쯤이세요?" "음… 진천 지나갑니다." 그게 전부다.
〔그림: 종이 위에 많은 숫자가 있다. 아주머니가 계산기를 두드린다. 맞지 않는다.〕
짐이 도착했다. "화물비 30만 원입니다." 아주머니가 깜짝 놀란다. "어? 어제 전화로 받은 건 25만 원인데?" "아, 그게요, 유류비가… 톨게이트가…"
다음날 청구서가 온다. "왜 여기 5만 원이 더 들었어요?" "연차도 있고, 고속도로도 비싸졌고…" 아주머니는 계산이 맞는지 틀린지 알 수가 없다. 혼자선 확인할 수 없으니까. 매번 사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이 기사님은 27만 원, 저 기사님은 32만 원." 왜? 뭐가 다른가?
더 답답한 건, 정산이 끝난 뒤다. 몇 주 뒤에 청구서가 온다. "왜 지금 와요?" 그사이 서울 고객과의 계약금도 받지 않은 상황. 돈이 돌지 않는다.
〔그림: 화주 아주머니와 기사 아저씨가 반대편에 앉아 있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화주 아주머니를 생각해 봐. 매일 화물차를 부른다. 그런데 매번 같은 질문을 한다.
"차가 멀쩡한 건가요?" "정말 정시에 가나요?" "정산이 정직한가요?" "이 기사님, 이 회사를 계속 써도 괜찮나요?"
그런데 답을 얻을 수 없다. 손가락으로 꼽히는 큰 회사 아니면, 그냥 어제 나눈 번호로 또 전화하는 것뿐.
기사는 또 어떨까? 기사도 화주를 못 믿는다. 도착해서 물건 개수가 다르다고 우기나, 흠집이 생겼다며 돈을 뺀다거나. 기사는 "이 화주, 또 뭘 꼬투리 잡을까?" 불안해한다.
둘 다 같은 한 번의 운송 때문에 앓는다. 화주는 "제때 도착할까, 정산은 깔끔할까" 걱정하고, 기사는 "불평할까, 돈을 떼지 말까" 걱정한다.
만약 이 둘 다 동시에 안심시킬 수 있다면? 화주에겐 투명함을, 기사에겐 공정함을? 그럼 플랫폼은 무엇을 가져야 할까—혹은 가지지 말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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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까? 화주도 편하고 기사도 편해지려면, 누군가는 뭘 포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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