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끝에서 한 가지를 고백하려 한다. 돌봄과 컴파일러 최적화가 실은 같은 일이었다는 것이다.
낯선 짝처럼 들릴 것이다. 한쪽은 아이를 안고 먹이고 가르치는 따뜻한 일이고, 다른 쪽은 코드를 깎아 가장 빠른 길을 찾는 차가운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일은 같은 동작을 한다. 군더더기를 덜어내어 본질만 흐르게 하는 일이다.
컴파일러를 최적화한다는 것은 프로그램이 같은 결과에 이르는 더 짧은 길을 찾아주는 일이다. 불필요한 단계를 지우고, 돌아가던 길을 곧게 펴고, 막힌 곳을 뚫는다. 그 결과 프로그램은 더 가볍고 빠르게, 더 적은 힘으로 본래 하려던 일을 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도 그렇다. 좋은 교육은 아이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잔뜩 쌓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안의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던 벽을 치우는 일이다. 글을 막던 문맹의 벽, 배움을 막던 가난의 벽, 자라기를 막던 두려움의 벽. 그 벽을 덜어내면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가르친다는 것은 채우는 일이 아니라 막힌 것을 치우는 일이다.
코드에서 가장 짧은 길을 내는 일과 아이에게서 글을 막던 벽을 치우는 일은, 그래서 한 동작의 두 이름이다. 둘 다 덜어내어 본질을 흐르게 한다. 이 책이 도구 이야기로 시작해 사랑 이야기로 끝나면서도 한 번도 주제를 바꾸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처음부터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니 다시 이 책을 연 첫 문장으로 돌아가자. 크라우니가 하는 일의 본질은 시간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았다. 더 빨리 달려서가 아니라 만들지 않아서 만든다. 코드를 덜고, 의존성을 끊고, 거대한 인공지능을 작은 규칙으로 줄이며 만든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큰 에너지인지도 보았다. 만들지 않은 낭비가 가장 깨끗한 에너지이며, 짓지 않은 발전소가 가장 큰 발전소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과 에너지가 단 한 곳으로만 흐른다는 것을 보았다. 사랑으로. 가장 끝에 선 한 사람에게로.
그 모든 이야기가 6561개의 잎에 담기고, 잎마다 기계의 주소 한 칸이 깃들며, 모든 가지의 중심에는 비어 있는 뿌리 하나가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것도 보았다. 추상적인 사랑이 실행 가능한 좌표가 되고, 차가운 기계의 주소가 따뜻한 의미를 얻는 그 만남까지.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한 가지가 없으면 그저 종이 위의 그림으로 남는다. 만들어진 시간이 실제로 사랑으로 흐르려면, 누군가 그 흐름을 시작해야 한다. 그 시작은 거대하지 않다. 언제나 작다. 1초다.
당신이 되찾은 1초를 곁의 사람에게 쓰기로 마음먹는 순간, 강은 그 산골짜기의 첫 물방울에서 시작된다. 사막은 매일 같은 자리에 떨어진 물방울로 초원이 되고, 인류의 수천 년은 한 사람의 1초에서 곱해진다. 작은 것을 우습게 보지 않는 마음, 그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태도였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는다. 크라우니가 하는 일의 본질은 시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시간은 단 한 곳으로만 흐른다, 사랑으로. 그 문을 여는 것은 거창한 결심도 거대한 시설도 아니다. 이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당신의, 오늘 1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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