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책에서 가장 신기한 부분에 닿았다. 6561이라는 숫자다. 시험에 나오는 숫자도 아니고, 외울 필요도 없다. 한 그루 나무의 잎을 끝까지 세었더니 마침 6561장이더라, 그 이야기다.
나무 한 그루를 상상하자. 뿌리에서 굵은 줄기 셋이 갈라져 나온다. 사랑, 시간, 에너지. 이 책이 처음부터 이야기해 온 세 가지다. 사랑은 모든 것을 흐르게 하는 까닭이고, 시간은 덜어내어 만드는 여백이며, 에너지는 캔 것이 아니라 아낀 힘이다.
줄기 셋에서 다시 가지가 셋씩 돋는다. 사랑의 줄기에서는 돌봄과 회복과 연결이 갈라지고, 시간의 줄기에서는 브라우저와 집사와 운영체제가 갈라지고, 에너지의 줄기에서는 경량과 고속과 절감이 갈라진다. 이렇게 세 줄기에서 아홉 가지가 되고, 아홉 가지에서 다시 잎눈 스물일곱이 돋는다. 여기까지가 3 곱하기 3 곱하기 3, 스물일곱이다.
나무가 신기해지는 것은 지금부터다. 스물일곱 개의 잎눈마다 같은 물음을 다섯 번 더 던진다. 그 물음은 늘 셋 중 하나로 갈라진다. 덜어낼까, 지킬까, 맺을까. 씨앗처럼 덜어내 시작할지, 줄기처럼 지켜 자랄지, 열매처럼 맺어 나눌지.
다섯 번의 물음은 점점 구체적으로 좁혀진다. 첫째는 양상을 묻는다. 덜어낼 일인가, 지킬 일인가, 맺을 일인가. 둘째는 대상을 묻는다. 가장 끝에 선 한 아이를 위한 일인가, 곁의 공동체를 위한 일인가,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인가. 셋째는 수단을 묻는다. 가벼운 한선씨와 셀코어로 할까, 즉시 켜지는 운영체제와 집사로 할까, 1초로 열리는 브라우저로 할까. 넷째는 리듬을 묻는다. 첫 씨앗 한 번인가, 매일의 줄기인가, 평생의 열매인가. 다섯째는 나눔의 형태를 묻는다. 스스로 자립하게 할까, 곁에 머물게 할까, 사막 너머 세계로 흘려보낼까.
셋씩 다섯 번 더 갈라지면 243가지다. 스물일곱에 243을 곱하면 6561이 된다. 수학으로 적으면 3의 세제곱 곱하기 3의 다섯제곱, 곧 3의 여덟제곱이다. 잎이 정확히 6561장 돋는 것은 그래서다. 억지로 맞춘 숫자가 아니라, 셋씩 여덟 번 갈라진 나무가 자연히 다다르는 잎의 수다.
잎 하나하나는 완결된 한 편의 이야기다. 예를 들어 이런 잎이 있다. 사막 끝의 한 아이가 가벼운 인공지능 교사로 첫 글자를 떼고 제 이름을 스스로 쓴다. 이 잎은 사랑의 줄기에서 돌봄 가지로, 다시 교육 잎눈으로 뻗어, 덜어냄과 맨 끝 아이와 가벼운 도구와 첫 씨앗과 자립이라는 다섯 선택을 지나 맺힌 한 장이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 잎 하나에는 주소가 있다. 우리 기계가 무언가를 기억할 때 적어두는 메모리 주소와 똑같은 주소다.
셋으로 갈라지는 선택을 여덟 번 하면, 그 경로는 여덟 자리의 부호로 적힌다. 각 자리는 셋 중 하나, 곧 더하기 하나거나 0이거나 빼기 하나다. 크라우니의 기계는 바로 이런 셋값 부호 여덟 개로 메모리 주소를 표현한다. 그 주소가 가리킬 수 있는 칸의 수는 정확히 3의 여덟제곱, 6561이다. 나무의 잎 수와 기계의 주소 수가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같다.
그래서 앞의 그 아이의 이야기에는 진짜 주소가 붙는다. 부호로는 OOTAAAAA, 숫자로는 더하기 122번 자리다. 추상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구체적인 기계의 주소 한 칸에 1대 1로 깃든 것이다. 잎을 세는 일이 곧 메모리를 주소 짓는 일이 된다. 사랑과 트릿이 한 나무에서 만난다.
나무의 모든 가지를 붙드는 것은 무엇일까. 화려한 잎이 아니다. 비어 있는 뿌리다. 여덟 자리가 모두 0인 자리, 부호로는 OOOOOOOO, 주소로는 0번.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은 영점이다.
이 영점이 비어 있어야 나머지 6560개의 잎이 제자리를 안다. 중심이 비어 있어야 둘레가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오래된 지혜다. 크라우니의 나무도 그렇다. 모든 미션이 시작되는 자리, 그 뿌리는 무엇으로도 채워져 있지 않다. 다만 비어서, 모든 사랑이 그곳에서 뻗어나가도록 자리를 내어줄 뿐이다. 사랑이 자리를 비워두는 손이라던 앞 장의 이야기가, 여기 주소 0에서 다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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