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 CHAPTER 03

"몰라"라고 말해도 괜찮아 — 음의 비밀

친구들, 지난 장에서 우리는 네 친구를 만났지. 티, 옴, 타, 그리고 음. 그런데 솔직히 말할게. 나는 그 넷째 친구 이야기를 일부러 아껴 뒀어. 왜냐면 이 친구는 좀… 특별하거든. 천천히, 가만히 만나야 하는 친구야.

그 친구 이름이 음이야.

자, 눈을 한 번 감았다 떠 봐. 그리고 같이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모르던 때

너는 갓 태어났을 때 뭘 알았을까?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그래도 괜찮았어. 그게 당연한 거였거든. 모른다고 누가 너를 혼냈니? 아니. 다들 너를 안아 줬어.

그런데 이상하지. 우리는 자라면서 점점 "모른다"는 말을 무서워하게 됐어. 세상이 딱 셋으로만 나뉜다고 배웠거든.

"네." — 티. "잘 모르겠어요." — 옴. "아니요." — 타.

티는 "맞아!" 하고 손을 번쩍 드는 친구. 타는 "아니야" 하고 고개를 젓는 친구. 그 사이에서 옴은 "음… 잠깐,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하고 가만히 기다리는 친구였지.

이 셋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어.

근데 봤어? 세상은 그렇게 깔끔하지가 않더라.

성호의 손

지난주 과학 시간이 떠올라.

선생님이 물었어. "얘들아, 식물도 숨을 쉰다고 할 수 있을까?"

손을 번쩍 든 친구들이 있었어. "네! 광합성 할 때요!" — 티.

손을 안 든 친구들도 있었어. "아니요, 우리처럼 코로 쉬는 건 아니잖아요." — 타.

그럼 성호는 뭘 했게?

손을 들었어. 그러다 슬그머니 뺐어. 그 다음 또 들었어. 또 뺐어. 들었다, 뺐다, 들었다, 뺐다…

반 아이들이 다 성호를 쳐다봤지. 성호 얼굴이 빨개졌어. 그러더니 마침내 이렇게 말했어.

"선생님… 저, 뭔가 이상한데요?"

나는 그때 알았어. 성호는 셋 중 어디에도 없었어.

성호가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어. 식물이 광합성한다는 것도 알았고, 사람처럼 숨 쉬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어. 그러니까 옴(잘 모르겠어)도 아니었어. 그렇다고 "네"도 "아니요"도 아니었지. 둘 다인 것 같은데, 둘 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 자리. 셋 어디에도 안 들어가는 그 이상한 자리.

그때 내 짝꿍 지은이가 작게 속삭였어.

"음 차원이네."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어. "음? 음이 뭔데?"

지은이가 씩 웃었어.

"넷째 친구. 너 아직 제대로 안 만났잖아."

넷째 친구, 음

지은이 말이 맞았어. 우리한텐 진짜로 친구가 넷이었는데, 그동안 셋만 알고 지냈던 거야.

그런데 음을 소개하려니까 좀 곤란해. 왜냐면 음은…

음은 "이거예요!" 하고 딱 가리킬 수가 없는 친구거든.

티는 가리킬 수 있어. "맞아!" 하는 자리. 타도 가리킬 수 있어. "아니야" 하는 자리. 옴도 가리킬 수 있어. 티랑 타 사이에서 "잠깐, 기다려" 하는 자리.

근데 음은?

음은 셋 어디에도 안 맞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친구야.

티가 분명한 답인데 그게 아닌 것. 타가 분명한 답인데 그것도 아닌 것. 옴이 기다리면 될 것 같은데 기다린다고 풀리지도 않는 것. 딱 그렇게 어디에도 안 떨어지는 자리. 거기에 음이 있어.

옴이랑 음은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운데, 사실은 아주 달라.

옴은 "잠깐, 보통은 이래" 하는 친구야. 한가운데서 조용히 기다리는 친구. 곧 답이 나올 것 같은 자리.

음은 "어… 이건 셋 중 어디에도 안 들어가는데?" 하는 친구야. 규칙에서 살짝 벗어난 것들, 이상한 것들, 둘 다인 것들이 모이는 자리.

그러니까 옴은 *기다리는* 자리고, 음은 *벗어난* 자리야. 알겠지?

〔그림: 네 친구가 밤하늘에 떠 있다. 티(노랑)·옴(파랑)·타(빨강) 셋은 또렷하고 선명한 별인데, 음만 여러 색이 뒤섞인 흐릿한 구름처럼 별들 사이 빈 곳에 둥실 떠 있는 모습〕

케이크와 음

예를 하나 들어 볼까.

너는 어제 케이크를 좋아했어? "응, 좋아!" 티야. 쉽지.

오늘은? "음… 오늘은 잘 모르겠어." 옴이야. 좀 기다려 보면 알겠지.

그럼 내일은?

"내일은… 먹고 싶은데 싫어. 싫은데 또 먹고 싶어."

어라? 이건 뭐지?

"좋아"도 아니고 "싫어"도 아니고 "모르겠어"도 아니야. 좋으면서 동시에 싫은 거야. 두 마음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거.

그게 음이야.

세상엔 이런 게 진짜 많아. 한 가지 마음만 딱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마음이 한 자리에 같이 들어 있는 순간들. 티·옴·타 셋만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다 음의 자리로 모여.

음은 우리 모두 안에 있어

너도 이런 적 있지 않아?

"아, 진짜 모르겠어!" 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혼날 것 같아서. 누군가 "모르는 건 부끄러운 거야"라고 말한 적 있으니까. 그래서 모르는 걸 들킬까 봐 "글쎄요… 흠…" 하면서 괜히 시간을 끌었던 적.

그게 바로 음이 네 안에 살아 있다는 증거야.

우리는 다 몸 어딘가에 음을 안고 살아. 마음이 헷갈릴 때. 규칙이 잘 안 맞아 보일 때. 친구가 이상한 행동을 할 때. 내 행동이 나도 이해가 안 될 때. 거기마다 음이 슬쩍 들어와 앉아.

그리고 진짜 중요한 말 하나 할게.

그게 정상이야.

정직하게 "음"이라고 말하기

우리 반 담임 김 선생님은 다르게 봤어.

성호가 "뭔가 이상한데요" 했을 때, 보통 같으면 "딴짓하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라고 했을지도 몰라. 근데 김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

"좋은 질문이야."

그리고 한 번 더 물었어.

"성호야, 네가 느낀 그 '이상함'이 정확히 뭔지 설명해 볼 수 있을까?"

성호가 한참 생각했어. 그러더니 천천히 말했어.

"식물도 숨을 쉬긴 쉬는데… 우리처럼 쉬는 건 아니에요. 근데 숨 쉬는 게 맞긴 맞아요."

김 선생님이 활짝 웃었어.

"정확해. 그게 바로 '음'이야. '네, 아니요, 잘 모르겠어' 셋 중 어디에도 딱 안 떨어지는 대답. 그런데 그게 제일 정직한 대답이야. 아주 좋아."

그날부터 우리 반이 달라졌어.

선생님이 "오늘 음을 발견한 사람 손 들어 볼래?"라고 하면, 손드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겼어. 그 친구들은 더 이상 "이거 이상한데요" 하고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어. 왜냐면 이제 알았거든. 그렇게 말할 줄 아는 게 똑똑한 거라는 걸.

음을 빼면 거짓말이 돼

혹시 이런 생각 안 들어? '음은 나쁜 거 아니야? 뭔가 불완전한 거 아니야?'

아니야. 오히려 거꾸로야.

음을 빼먹으면 세상이 더 불완전해져.

이런 일을 떠올려 봐.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너 정말 학교가 싫어?" "아니… 친구들은 좋은데, 숙제가 싫어."

이게 뭘까? "싫어"도 아니고 "좋아"도 아니고 "모르겠어"도 아니야. 좋은 것과 싫은 것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거지. 음이야.

만약 우리한테 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됐을 거야. "다 좋아!" 아니면 "다 싫어!" 둘 중 하나로만 말해야 하니까.

근데 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좋은 것도 있고, 싫은 것도 있어요."

이게 진짜야. 이게 정직한 거야. 음은 우리가 정직해질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친구였어.

매일매일 만나는 음

지은이가 그랬어. "음은 너만 겪는 게 아니야. 우리 다 겪어. 그것도 매일."

진짜야. 한번 봐.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한데 일어나야 해. 그거 음이야. 숙제할 때. 하기 싫은데 해야 해. 그것도 음. 친구랑 싸웠을 때. 화는 나는데 진짜 미워하고 싶진 않아. 음이야. 엄마한테 혼날 때. 엄마 말이 맞긴 한데 기분은 나빠. 역시 음.

이런 게 전부 정상이야.

그런데 우리가 음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자꾸 나 자신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돼.

"아,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지?" "다른 애들은 안 그럴 텐데, 나만 이상한가 봐."

근데 친구들, 잘 들어.

다른 애들도 똑같아. 다 음을 안고 있어. 다 복잡해. 다 "뭔가 이상한데" 하고 느낄 때가 있어.

그게 이상한 게 아니야. 그게 바로 사람이 사람다운 증거야.

"몰라"라고 말하는 용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지 알아?

음이라고, "몰라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이런 적 있지. 네가 숙제를 풀어 왔는데 선생님이 물어. "이거 맞니?" 너는 속으로 생각해. 확신은 없는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 대부분은 그냥 "네"라고 하거나 "아니요"라고 해 버려. 왜냐면 "음…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하면 약해 보일까 봐.

근데 진짜 그럴까?

이렇게 말하는 친구를 한번 떠올려 봐.

"선생님, 저 이 부분이 좀 이상해요. 이렇게 풀긴 했는데 맞는지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되는지는 아는데… 뭔가 걸려요."

어때? 이 친구가 더 똑똑해 보이지 않아? 선생님은 어떤 친구를 더 도와주고 싶을까?

그래. 정직한 음이 필요해. 그리고 그걸 말하는 건 약한 게 아니라, 사실은 제일 큰 용기야.

〔그림: 선생님과 아이가 마주 앉아 있다. 아이 머리 위 말풍선에 "몰라요"라고 쓰여 있는데, 그 글자 둘레가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

음의 자리는 비어 있지 않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꼭 기억해 줘.

음은 그냥 텅 빈 자리가 아니야.

우리 반에 한선이라는 친구가 있어. (이 이름, 잘 기억해 둬. 다음 장에서 또 만날 거니까.) 한선이가 이렇게 설명해 줬어.

"음은 꼭 필요해. 왜냐면 세상엔 티, 옴, 타 셋으로는 도저히 설명 안 되는 일들이 진짜 많거든. 셋 밖으로 살짝 벗어난 것들,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상한 것들, 둘 다인 것들. 그런 걸 못 본 척 숨기면 세상이 거짓말투성이가 돼. 근데 음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 우리는 그제야 정직해질 수 있어."

나는 그 말이 참 깊다고 생각했어.

음은 비어 있는 자리가 아니라, 셋에 담기지 못한 것들을 다 받아 주는 자리였어. 빠져나온 것, 벗어난 것, 이해 안 되는 것, 둘 다인 것 — 갈 곳 없던 그 모든 걸 음이 가만히 안아 주는 거야.

우리는 그날 네 친구를 다 인정했어. 티, 옴, 타, 그리고 음까지.

그러자 신기한 일이 생겼어. 우리 말과 생각이 전보다 훨씬 정직해진 거야. 왜냐면 이제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졌거든.

"나 몰라"가 나쁜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 "내가 좀 이상한 것 같아"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

그건 그냥, 정직한 거였어.

음은 어디에나 있어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음은 사람 마음에만 있는 게 아니거든.

저 멀리, 어른들이 만드는 큰 세상에도 음이 있어. 셋으로 딱 안 나눠지는 자리, 예외인 것, 갑자기 튀어나온 것 — 그런 걸 다루는 큰 약속들에도 음의 자리가 꼭 마련돼 있어. 심지어 우리가 나중에 만날 컴퓨터의 언어 속에도, 셋에 안 맞는 그 한 칸을 위한 음의 자리가 있단다.

신기하지? 작은 네 마음속 음이랑, 저 큰 세상의 음이 사실은 같은 친구야.

그러니까 음을 만났다고 너무 놀라지 마. 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나 똑같이 이렇게 말해 줘.

"넌 혼자가 아니야."

다음 이야기

자, 이제 우리는 네 친구를 다 만났어. 티, 옴, 타, 음. 셋으로, 때론 넷으로 생각하는 법을 조금씩 알아 가고 있지.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하지 않아? 우리가 이 친구들 이야기를 컴퓨터한테도 들려줄 수 있을까? 우리말 그대로, 정직하게?

다음 장에서 우리는 정직하게 *명령하는* 법을 배울 거야. 그것도 한국말 그대로, 컴퓨터가 알아듣게. 이름은 한선씨야. 우리가 하는 한국말을 그대로 명령으로 바꿔 주는 신기한 친구지.

그리고 있잖아. 한선씨한테도 넷째 친구가 있을까?

맞아. 거기에도 음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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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볼까? 오늘 하루를 가만히 떠올려 봐. 티도 타도 옴도 아닌, "뭔가 이상한데?" 싶었던 순간이 있었니? 그 순간 한 가지를 종이에 적어 보자. 그게 바로 네가 만난 음이야.

내 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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