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엄마가 "숙제 다 했니?"라고 물었고 넌 "다 했어"라고 했다.
침대에 누워 폰을 들었다. 인스타 릴스 하나. 재미있다. 다음 건? 별로다. 또 다음? 오, 이것 봐! 손가락이 위로 스르르. 또 위로. 또.
정신 차려 보니 밤 11시 반이었다. 어? 언제?
너는 그 손가락이 뭐했는지 알고 싶나?
손가락이 슬롯머신 레버를 당기고 있었던 거다.
슬롯머신 아나? 카지노에서 "딸칵딸칵" 하는 그 기계. 동전을 넣고 레버를 잡아당기면 "팡!" 하고 동전이 쏟아진다. (정말 그렇게만 되면 좋겠지만 보통은 안 떨어진다.)
근데 네가 한 건 그것과 똑같은 일이다. 동전을 넣은 대신 시간을 썼을 뿐.
슬롯머신이 좋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큰돈을 딸 수 있어서?"
틀렸다. 진짜 이유는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기계가 "5번 당기면 무조건 한 번 터진다"고 알려줬다면? 사람들은 금방 지친다. 4번은 그냥 손해고, 5번째만 기다리면 된다. 재미없다.
그런데 진짜 슬롯은 다르다.
"언제 나올지 몰라."
이 한마디가 마법이다. 다음에 나올지도 몰라. 100번 뒤에 나올지도 몰라.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또 당긴다. 또. 또.
여기서 과학 얘기 하나만.
너의 뇌 깊숙한 곳에 "좋다!"를 켜는 스위치가 있다. 거기서 나오는 물질을 도파민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쾌락 물질"이라고 부르는데 — 이건 반만 맞다.
도파민은 '받을 때'가 아니라 '받을 것 같을 때' 터진다.
예를 들어. 엄마가 "넌 좋아하는 거 하나 사줄게" 했다고 해. 기다리는 그 시간, 뭐가 나올지 모르는 그 설렘. 그 순간이 가장 짜릿하다. 막상 물건을 받으면? "어? 이거네." 하고 시들한다.
릴스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그 0.5초. 그 안에 도파민이 폭발한다. 다음이 대박일지도 모르니까.
너는 이 마술을 매일 겪는다.
SNS 피드 — "다음에 뭐가 나올까?" 스르르.
명절 화투판 — "이번 판에서 나 이기면?" 손이 패를 쳐 올린다.
지름신 — "어, 이 옷 이쁜데. 근데 빨강색도 있나?" 손가락이 이미 담아 뒀다.
다 같은 회로다.
언제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기대가 부푼다. 기대가 부풀어야 손가락이 움직인다.
이건 너만 그런 게 아니다. 이건 너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설계다. 누군가 이 마술을 아주 잘 만들었다.
SNS를 만든 회사, 온라인 쇼핑몰, 화투판. 모두가 이 마술을 알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기대감이 가장 강하다는 걸.
여기까지 읽고 기분이 안 좋으면, 이렇게 생각해봐.
"아, 그럼 나 약한 거네. 의지가 없는 거네."
그렇게 생각하지 마. 정반대다.
그 손가락의 힘, 그 집중력, 그 "다음은?" 하는 호기심 — 이건 약점이 아니라 엔진이다. 정말 강력한 엔진.
지금은 폰을 돌린다. 화투판을 돌린다. 그뿐이다. 엔진이 나쁜 게 아니다. 엔진이 연결된 곳이 조금 아까울 뿐이다.
그 엔진을 다른 곳에 연결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다음 장이 궁금해하기. 그림을 그리고 "이 부분 어떻게 해야 쿨할까?" 고민하기. 친구를 사귀고 "다음엔 뭘 같이 할까?" 기다리기.
같은 엔진, 다른 연결.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으면?
마음껏 해봐. 릴스를 스크롤 할 때, 화투를 칠 때, 새로운 영상이 나올 때 — "아, 지금 내 손이 레버를 당기는 중이다"라고 생각해보는 거다. 그걸 알아차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알면, 조절할 수 있다. 몰랐을 땐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였지만, 알고 나면 "지금 이 마술을 하고 있구나" 하고 멈출 수 있게 된다.
너는 약하지 않다. 너는 강한 엔진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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