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는 화물기사들의 스탠바이 시간이다. 일부는 이미 차 안에서 깬 지 한 시간. 휴게소 커피와 담배로 밤을 떨쳐내고, 핸드폰 화면을 들었다 놨다 반복한다. 첫 콜을 놓치면 그 아침이 밀린다는 것을 안다. 화물운송 시장은 선착순이고, 경쟁은 가격으로 끝나고, 가격은 떼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다린다. 왜냐하면 일하지 않으면 저녁이 없기 때문이다. 한 통의 전화, 그것이 오늘의 운수(運數)를 결정한다.
그 전화가 울렸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막힌 도로를 200킬로미터 달려가 짐을 내리는 일은 육체를 모두 쓴다. 한 건의 운송이 끝나는 순간, 기사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다. 차는 비었다. 연료비와 도로비는 나왔는데, 돌아올 화물이 없다. 이것을 '공차'라 한다. 운송료가 한쪽 방향뿐일 때, 실은 두 배의 거리를 한 배의 비용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속도로를 달려 휴게소에 멈춰 다시 핸드폰을 든다. 누군가 수도권으로 가는 짐이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약속을 받기 어려워진다. 결국 빈 채로 돌아온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핸드폰이 울린다. 화주의 목소리가 한숨 섞여 있다. "기사님, 운임이 좀 조정되면 안 될까." 짐을 실어날랐던 차량 수가 많았다고, 시장이 경쟁이 심했다고, 혹은 좀 깎아줄 수 없냐고. 원래 약속한 금액의 10%, 때론 15%가 그렇게 사라진다. 이를 '운임 떼임'이라 부르는데,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관례처럼 통한다. 더 억울한 것은 대기료다. 짐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기다린 시간들 — 2시간, 때론 4시간 — 그 시간은 돈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 기사는 그 시간도 준 셈이다. 차는 멈춰 있고, 휘발유는 타고, 매출은 늘어나지 않는다.
이 현실을 견디기 위해 베테랑 기사들은 비공식 루트를 찾는다. 다른 기사들에게 정보를 얻고, 특정 화주나 중계인과의 관계를 깊게 한다. 누가 돈을 잘 주는지, 누가 대기료를 인정하는지, 어느 물류센터는 짐이 항상 있는지. 그 정보망을 가진 사람은 운이 좋다고 불린다. 하지만 그것도 보장이 아니다. 정보는 단편적이고, 갱신은 늦고, 호의는 선택적이다. 정보 비대칭은 산업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는 많은 정보로 많이 버는데, 누군가는 모자란 정보로 적게 번다. 그 격차가 한 사람의 저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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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빈 차로 돌아오는 동안, 그 짐을 맡긴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같은 한 건의 운송을 반대편에서 보면, 또 다른 고통이 펼쳐진다. 하나의 적재량, 하나의 목적지, 하나의 비용 — 그것이 같은 시간 다른 두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짓누르는지, 이제 그들의 오후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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