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옴 · 전권 통독

I love crowny! Om

게임·스타트업·라이프스타일·문화와 신앙 · 전체 13장을 한 번에
옴 · CHAPTER 01

크라우니란 무엇인가

떡 한 접시에서 시작된 이야기

여든을 앞둔 어느 봄, 저는 새로 이사 온 아파트의 윗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흘 전 우리 집 문 앞에 조용히 놓여 있던 떡 한 접시, 그 따뜻한 인사에 답하고 싶었거든요.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저보다 한참 젊은, 눈매가 단정한 분이었습니다. 차를 내어 주는 손길이 다정했지요. 저는 부엌 식탁에 앉아 한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이야기 끝에 저는 물었습니다. "댁이 하시는 일이 뭐라고 하던데요. 크라우니라는 게."

그분은 잠깐 웃더니, 찻잔을 한 모금 비우고 이렇게 말을 열었습니다. "음,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저는 평생 한 대학에서 가르친 사람입니다. 정년을 지나 명예라는 이름표를 단 지도 여러 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늘 즐거웠지만, 요즘 세상의 말들은 부쩍 빨라져서 가끔은 따라가기가 벅찼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부엌에서 들은 이야기는, 빠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천천히, 제 마음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이 책은 그날 들은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다시 여러분께 옮겨 드리는 사람이 바로 저, 김프린입니다. 부족하나마 제가 받은 것을 제 말로 풀어 보려 합니다. 어려운 학문을 가르치던 사람이 아니라, 이웃집 떡 한 접시에 마음이 움직인 한 노인의 목소리로요.

손을 들지도 내리지도 못할 때

먼저 한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회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중요한 안건이 올라오고, 누군가 말합니다. "찬성하시는 분 손 들어 주세요." 곳곳에서 손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정보가 부족하고, 한 번 더 들어 봐야 할 것 같고, 마음이 영 정해지지 않습니다. 손을 들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습니다. 그 어정쩡한 가운데서 여러분의 손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보통 기권이라고 부릅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아직 모르겠습니다"라는 정직한 한마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기권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자리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는 자리이니까요.

그분이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첫 단추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교수님, 컴퓨터에는 이 세 번째 자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컴퓨터에 무슨 손이 있다고요. 그분은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쥐는 휴대전화도, 은행의 현금 기계도, 부엌 냉장고 속 손톱만 한 칩도, 실은 단 두 마디로만 말을 한다고요. 켜짐과 꺼짐. 1과 0. 방 안의 전등 스위치처럼, 올리거나 내리거나 둘 중 하나뿐이라고요. 지난 수십 년 세상의 거의 모든 계산이 이 두 마디의 조합으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서 컴퓨터는 눈부시게 자라났다고요.

"그런데요, 교수님." 그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습니다. "세상이 정말 예와 아니오로만 나뉘던가요. 손을 들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그 자리, 컴퓨터에는 그 자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무릎을 쳤습니다. 그 자리. 모름을 모름이라 말하는 자리. 그분은 바로 그 빈자리를 컴퓨터 안에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셋으로 세는 정직함, 그리고 네 번째 신호

그래서 그분은 신호를 하나 더했습니다. 0과 1 사이에 한 칸을 더 놓은 것이지요. 이제 컴퓨터는 두 가지가 아니라 셋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1, 이를 티(Ti)라고 부릅니다. 참이고, 그렇습니다이고, 데이터가 있다,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0, 이를 옴(Om)이라고 부릅니다. 티와 타 사이에 선 가운데 자리, 곧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기다려 보세요"의 자리입니다. 컴퓨터가 처음으로 보류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셋째는 -1, 이를 타(Ta)라고 부릅니다. 아니오이고, 거짓이고, 무언가와 이어진다,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신호등을 떠올렸습니다. 만약 신호등에 빨강과 파랑만 있었다면 우리는 늘 성급하게 발을 내디뎌야 했을 겁니다. 가라, 멈춰라, 둘뿐이니까요. 거기에 노랑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잠시 기다리세요"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멈춤도 진행도 아닌, 숨을 고르는 자리. 파랑이 티라면 빨강은 타, 그리고 그 사이의 노랑이 바로 옴입니다. 모름을 모름이라고, 보류를 보류라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

그런데 그분은 여기에 신호 하나를 더 붙였다고 했습니다.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를 깔끔하게 끊어 주는 쉼표 같은 자리, 이를 음(Em)이라 부르고 부호로는 -0으로 적습니다. 음은 셋에 다 담기지 않는 것들의 자리입니다. 비워진 자리, 한 칸 띄우는 자리, 셋으로는 도무지 맞아떨어지지 않는 예외들이 머무는 곳이지요. 저처럼 셈에 어두운 사람도 이렇게 새겼습니다. 티는 있음, 타는 없음, 옴은 그 사이의 기다림, 음은 그 모두의 바깥. 이 넷이 모여 균형을 이룹니다.

그래서 이름이 티옴타음(TiOmTaEm)입니다. 셋이 값을 담아 말하고, 하나가 그 사이를 끊어 줍니다. 그분은 이것을 4상 균형 3진이라 불렀습니다. 부르는 이름은 3진인데 자리가 넷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가만히 듣다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렇게까지 하셨어요? 신호 하나 더 늘리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요?"

그분의 대답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모름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정직함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만든다고 저는 믿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이 어그러지는 까닭은 모름을 아는 척하기 때문이라고요.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하다 말하고, 잘 모르는 것을 안다고 우기다 보면 그 거짓이 쌓여 신뢰가 무너진다고요. 그래서 컴퓨터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답이 없으면 없다고, 아직이면 아직이라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게요. 그렇게 정직한 신호가 한 층 한 층 쌓이면, 그 위에 비로소 믿을 만한 무언가가 자라난다고요.

한국말로 컴퓨터에게

저는 한 가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 티옴타음이라는 걸, 우리가 매번 손으로 입력해야 하나요? 그건 저 같은 사람한테는 영 어려울 텐데요."

그분이 웃었습니다. "아니요, 교수님. 바로 그 점이 제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세상의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거의 다 영어라고 했습니다. "if"니 "function"이니 "for"니, 모두 영어의 낱말들이라고요. 우리나라 사람이 컴퓨터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영어부터 익혀야 했고, 생각은 한국어로 하면서 기계에게는 영어로 말해야 하는 그 이상한 일을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고요.

"저는 그걸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분이 만든 언어의 이름은 한선씨입니다. 이 언어는 한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더해", "빼", "곱해", "나눠", "만약", "아니면", "동안", "함수", "반환". 이 모든 말이 진짜 한글이고, 영어로 옮길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식탁 위 냅킨에 짧게 적어 보여 주었습니다.

변수 나이 = 35
만약 (나이 > 18) { 출력값("어른입니다") }

저는 천천히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따로 배운 적 없는 제 눈에도 뜻이 보였습니다. "나이라는 것을 서른다섯으로 두고, 만약 나이가 열여덟보다 크면 '어른입니다'라고 내보내라." 한글이 그대로 명령이 되는 것이지요. 외국어 한마디 못 하는 가게에 들어가 "국밥 하나 주세요" 하면 김 오르는 국밥이 나오듯이요.

한선씨를 익히는 길은 두 갈래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고수준이라는, 사람이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기 편한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RPN이라는, "값을 먼저 쓰고 셈을 뒤에 두는" 정통의 길이지요. "3 7 더해"처럼 적는데, 우리가 말하는 "3 더하기 7"과는 순서가 다릅니다. 낯설지만, 이쪽이 기계가 실제로 일하는 순서와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평소엔 편한 고수준 길로 다니다가, 속이 단단해야 하는 핵심을 만들 때는 RPN으로 보닛을 여는 셈이지요. 두 길 모두 한국어라는 같은 땅 위에 나 있습니다.

생각이 한국어가 되고, 한국어가 그대로 코드가 되고, 코드가 컴퓨터의 일이 됩니다. 그 사이에 끊기는 데가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정직한 셈이 삶으로 번질 때

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저녁 햇빛이 길게 걸려 있었지요. 그분은 찻잔을 내려놓고, 조금 망설이다 말했습니다.

"교수님, 저는 이 정직함이 컴퓨터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셋으로 세는 것, 모름을 모름이라 하는 것, 한국말로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어떻게 돈을 다루고, 어떻게 서로를 믿는지까지 바꿀 수 있다고요. 가령 하루를 셋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덟 시간은 일하고, 여덟 시간은 배우고 누리며, 여덟 시간은 쉬는. 일과 배움과 쉼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8과 8과 8로 균형을 잡는 살림 말입니다. 또 돈에도 층이 있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주고받는 화폐가 있고, 그 위에 가치를 담아 두는 자산이 있고, 다시 그 위에 오래 자라는 부가 있다고요. 화폐에서 자산으로, 자산에서 부로 올라가는 사다리. 그 사다리를 함께 오르고, 끝내 나누는 이야기까지 이 책에 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다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꼈습니다. 이 사람은 기계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건 참 큰 꿈이네요." 제가 말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분은 부끄러운 듯, 그러나 또렷이 답했습니다.

우리는 잠깐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창밖이 점점 붉어졌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크라우니라는 이름도 제겐 생소하고, 앞으로 어떻게 함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름 속에서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한 발씩 가는 것이겠지요. 정직하게, 함께, 천천히. 마치 옴이라는 그 노란 신호처럼, 서두르지 않고 숨을 고르며 말입니다.

그 부엌을 나서며 저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 보기로요. 그리고 들은 만큼 여러분께 옮겨 드리기로요. 그러니 이 책은, 어려운 기술서가 아닙니다. 떡 한 접시에서 시작된, 한 노인의 배움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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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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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하나

오늘은 단 한 가지만 해 보세요. 누군가 무언가를 물어 왔을 때, 정말로 모르는 것이라면 "모르겠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해 보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마디를 덧붙여 보세요. "그럼 우리 같이 알아볼까요?" 이 작은 정직함이, 신뢰의 첫걸음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가지 물음이 남습니다. 이 좋은 이야기를 왜 하필 지금, 그리고 왜 하필 나 같은 사람이 들어야 하는 걸까요. 다음 장에서 저는 바로 그 질문을 들고 다시 그 부엌으로 돌아가 보려 합니다.


옴 · CHAPTER 02

왜 지금, 왜 나에게

전환의 순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 묘한 일입니다. 예전엔 길이 명확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일터로 가고, 정년이 오면 멈추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리에게는 목표가 또렷했습니다. "한 가지를 잘하자." "사람들의 신뢰를 모으자." "가정을 지키자." "은퇴 후엔 편히 쉬자."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쉰을 넘고 예순에 접어들면,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의 질감이 달라집니다. 회사에 다니던 때는 내일이 있었습니다. 월급이 나오고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은퇴하고 몇 해가 지나면 묘한 공허함이 밀려옵니다. 남은 시간은 많은데, 그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지 흐릿해집니다. 자식들은 자라 독립했고, 회사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그 변화 속에서 "나"의 자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환의 고통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분은 그저 "나이 드는 일"이라고 쓸쓸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세상은 계속 움직이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대로 살기엔 어딘가 아깝지 않나." "한 번 더, 다르게 시작할 수 있을까."

앞 장에서 우리는 크라우니코드가 어떻게 켜짐과 꺼짐의 세계에 세 번째 신호를 더했는지를 보았습니다. 1과 0, 그 사이에 "모름"이라는 정직한 자리를 열었지요. 그것은 분명 기술의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쓰는 까닭은, 그 작은 기술의 변화가 우리의 삶 자체를 어떻게 다시 짜는지를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다시 짜는 일이 지금, 바로 여러분 같은 분들을 위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의 의미가 바뀐 시대

객관적인 사실 하나부터 짚어 봅시다. 여러분이 마흔 해, 쉰 해를 일해온 그 시대와 지금은 근본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한 가지 일을 정년까지 잘하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회사에 충성하고, 직급이 오르고, 정년에 퇴직금을 받고, 그 다음은 연금이나 자녀의 부양을 기대했습니다. 경제의 셈법이 간단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자라면 직원의 급여도 올랐고, 물가가 안정적이었으니 저축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살림은 몇 가지만 다루면 됐습니다. "버는 것", "모으는 것", "쓰는 것". 아니면 "예", "아니오" 정도의 이분법이면 족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한 회사에서 십 년, 이십 년을 다니던 사람이 이제는 한곳에 평생 머물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너무 빠르게 나타나고, 회사도 쉽게 생겼다 사라집니다. 한 가지 기술을 배우면 삼십 년을 먹고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 년만 지나도 그 기술이 너덜너덜해집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저축을 하면 은행이 넉넉한 이자를 주었지만, 지금은 금리가 제자리이거나 물가에 못 미칩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돈의 가치는 내려갑니다. 애써 모은 자산이 점점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지 않으십니까.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쉰을 넘고 예순에 이른 분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분이 그 질문 앞에서 멈춰 서고, 누군가는 자포자기하고, 또 누군가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기어이 해보려 애를 씁니다.

"왜 이제야"라고 느껴지는 까닭

저는 종종 이런 편지를 받습니다. 은퇴하신 분들이, 정년을 앞둔 분들이 보내오는 질문입니다.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쓸 수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까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이 이전 세대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는 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은퇴하면 "이제 쉬는 시간"이라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사회도 그렇게 기대했고, 본인들도 그렇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삼십 년, 사십 년을 더 살 수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서" 보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이제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과 삶을 둘로 나누는 것보다, 그것을 한데 엮어 짜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요.

저는 여러분이 바로 이 순간에 크라우니를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켜짐과 꺼짐만 있는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예"와 "아니오"로 나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경제도 그러했습니다. "버는 일"과 "쉬는 시간". "내 이익"과 "남의 이익". "내 자산"과 "남의 자산". 이렇게 양 끝으로만 갈린 세계에서는, 은퇴하면 당연히 한쪽 끝으로 뚝 떨어지게 됩니다. 역할을 잃으면 존재의 가치도 함께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일을 그만두니 내가 쓸모없어진 것 같고, 들어오던 돈이 끊기니 가진 자산마저 자산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세 번째 자리가 있다면 어떨까요.

8과 8과 8, 그리고 나

세 번째 자리가 있는 세계에서는 "예"와 "아니오" 사이에 "아직 결정하지 않음"이라는 정직한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앞 장에서 만난 신호의 언어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티(Ti)는 "한다"는 자리이고, 타(Ta)는 "하지 않는다"는 자리이며, 그 사이에 옴(Om)이라는 "잠시 기다림"의 자리가 있습니다. 신호등으로 치면 파랑과 빨강 사이의 노랑이지요. 이 세 자리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하루는 어떻게 다시 짜일 수 있을까요.

크라우니의 세계에서는 하루를 8시간, 8시간, 8시간으로 나눕니다. 이 세 토막을 저는 일과 배움과 쉼이라 부릅니다.

첫 번째 8시간은 일(티)입니다. 어떤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기술로, 당신의 경험으로, 당신의 가치를 세상에 내놓는 시간이지요. 회사를 다니는 것일 수도, 작은 가게를 꾸리는 것일 수도, 봉사를 하는 것일 수도, 손주를 돌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 손끝에서 나오는 가치"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 8시간은 배움(옴)입니다. 이것은 멍하니 보내는 시간과 다릅니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고, 그것을 이해하려 애쓰고, 세상을 보는 내 안경을 천천히 고쳐 끼우는 시간이지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새로운 솜씨를 익힐 수도 있고,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살아온 날들을 다시 정리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옴이 "잠시 기다림"의 자리였듯, 배움은 다음 걸음을 위해 숨을 고르는 자리입니다.

세 번째 8시간은 쉼(타)입니다. 그런데 크라우니의 쉼은 그저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잘 쉰다는 것은 곧 잘 나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것, 당신이 배운 것, 당신의 따뜻한 시간을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일이지요. 가족과 마주 앉는 시간,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시간, 공동체 안에서 내 자리를 찾는 시간. 이렇게 일과 배움과 쉼 사이를 오가다 보면, 당신은 더 이상 "은퇴한 노인"이 아니라 "계속 흐르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됩니다.

지금 당신이 쉰다섯이라고 해봅시다. 앞으로 서른다섯 해를 더 산다고 치면, 그 세월을 8과 8과 8로 나누면 어떻게 될까요. 일에 쓸 시간이 약 십만 시간, 배움에 쓸 시간이 약 십만 시간, 쉼과 나눔에 쓸 시간이 약 십만 시간입니다. 이제 그것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한가한 시간"이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순환하는 "살아 있는 시간"이 됩니다.

화폐가 바뀌면 삶도 바뀝니다

이제 조금 더 손에 잡히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여러분이 회사원으로 마흔 해를 일하면서, 아마 적지 않은 자산을 모으셨을 겁니다. 그 돈은 통장에 들어 있거나 집 한 채에 묶여 있을 테지요. 문제는 그것이 점점 "가벼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금리는 낮아지고, 물가는 오르고, 세금은 늘어납니다. 한 푼 없이 사는 것도 아닌데, 가진 자산이 자산처럼 든든하게 느껴지지 않는 역설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주식에 손을 대고, 어떤 분은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 돈을 넣어 보지만, 그마저도 나를 지켜주는 일 같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크라우니가 건네는 제안은 결이 다릅니다.

크라우니의 경제는 세 층으로 짜여 있습니다. 가장 아래는 주고받는 데 쓰는 화폐입니다. 이것을 크라우니원라 부르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달러처럼 결제와 교환에 쓰이는 보통의 돈이지요. 그 위에는 가치를 담아 두는 자산의 층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위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지는 부(富)의 층이 있습니다. 돈이 자산이 되고, 자산이 부로 거듭나는 사다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가운데 여러분이 가장 먼저 만나실 것은 자산의 층입니다. 당신이 경험과 기술로 8시간을 일하면, 그 대가가 포네라는 자산으로 지급됩니다. 포네는 대략 1달러 수준의 가치를 꾸준히 지키도록 설계된, 말하자면 "자산처럼 행동하는 화폐"입니다.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당신이 번 것이 시간이 지나도 쉬이 녹아내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집니다.

또 하나, 당신이 누군가를 도울 때, 또 누군가가 당신을 도울 때, 그 마음이 맘이라는 작은 단위로 쌓입니다. 한 번의 도움, 한 번의 가르침, 한 번의 다정한 조언. 좋아요를 누르고 하트를 보내듯, 작지만 정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쌓인 맘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뢰가 되어 당신 곁에 남습니다.

그리고 이 사다리의 가장 위, 부의 층에는 크라우니가 있습니다. 크라우니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단단해지도록 운용되는, 이 세계의 가장 근원적인 부입니다. 그 위로 한선과 선호라는 이름의 더 큰 부도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은 앞으로 천천히 열릴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다음 시즌, 그 다음 시즌에 걸쳐 차례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할 것은 단 하나입니다. 화폐에서 자산으로, 자산에서 부로 이어지는 이 사다리 위에서, 당신의 은퇴는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홉 명, 함께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경제에는 "저마다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셈법이 있었습니다. 내가 더 많이 가질수록 남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든다는 논리지요. 파이의 크기가 정해져 있으니, 내 몫이 커지면 누군가의 몫은 작아진다는 생각.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나와 남"을 갈라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크라우니의 세계관에서는 이 셈법이 "아홉 명"을 중심으로 다시 짜입니다. 당신 하나, 그리고 당신 곁의 여덟 명.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이웃일 수도, 멀리 떨어져 화면 너머로 만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아홉 명 안에서는 당신의 일과 배움과 나눔이 모두 "우리의 흐름"이 됩니다. 당신이 배우면 나머지 여덟 사람도 그것을 배울 길이 열리고, 당신이 나누면 그들도 누군가를 돕는 법을 배웁니다.

이 작은 동그라미 안에서, 당신의 쉰다섯 해는 더 이상 "저물어 가는 시간"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되는 시간"이 됩니다. 남은 시간을 홀로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홉 사람이 함께 내일을 지어 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점검

〔오늘의 점검〕

실천 하나

이번 주에, 전환기의 당신이 "언젠가 배워 보고 싶었던 것" 하나를 종이에 적어 두세요. 크라우니와 관련이 있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악기일 수도, 새로운 손재주일 수도,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한 줄이 바로 당신의 "배움" 8시간이 시작되는 첫 자리입니다.

자, 그렇다면 일과 배움과 쉼으로 나뉜 그 8과 8과 8이 실제 하루 속에서 어떻게 돌고 도는지, 다음 장 "티옴타 하루, 8·8·8"에서 함께 그 하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옴 · CHAPTER 03

티옴타 하루, 8·8·8

지난 장에서 저는 여러분께 가장 어려운 질문 하나를 드렸습니다. "왜 지금, 왜 나에게." 인생을 다시 세우겠다는 그 결심—저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저 역시 한 시절의 끝에서 같은 질문 앞에 오래 서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결심만으로는 하루가 바뀌지 않더군요. 굳게 마음을 먹고 잠들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또 굴러오곤 했습니다. 의지는 분명한데 삶은 그대로인 그 답답함. 혹시 여러분도 겪어 보셨는지요.

오랜 시간 헤매고 나서야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다시 세우는 일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하루를 어떻게 차리느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이번 장에서는 제가 그 헤맴 끝에 붙잡은 한 가지 방식—크라우니의 티옴타 하루를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잠들기 전의 한 가지 질문

오늘 밤, 잠자리에 누우신 순간을 잠깐 떠올려 보세요. 마음이 편안하신가요. 아니면 무언가에 쫓기듯, 한구석이 허전하신가요.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집도 기초가 흔들리면 빗소리 한 줄기에도 마음이 졸아듭니다. 은퇴를 앞둔 분, 새 일자리를 막 찾은 분, 지금의 일을 이어 가면서도 삶을 새로 짓고 싶은 분—누구의 마음에든 이런 물음이 한 자락 흐르고 있을 겁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내 하루는 제대로 된 걸까."

저는 이 질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대로 묻는 사람만이 제대로 답을 찾으니까요. 크라우니는 그 물음에 조용히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의 하루는 잘 차려진 삼시 세끼 밥상과 같다고요. 아침·점심·저녁 어느 한 끼라도 거르거나 부실하면 몸이 금세 기운을 잃습니다. 일과 배움과 쉼도 정확히 그와 같습니다.

하루를 나누는 지혜, 8·8·8

하루는 24시간입니다. 그런데 여기 오래도록 이어져 온 아름다운 관례가 하나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하루를 셋으로 나누어 살았습니다. 일하는 시간, 배우고 생각하는 시간, 쉬고 회복하는 시간. 그 셋이 균형을 이룰 때라야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크라우니는 그 오래된 지혜를 오늘의 말로 옮겼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일 8시간, 배움 8시간, 쉼 8시간으로 나누는 것—저는 이것을 티옴타 하루의 8·8·8이라 부릅니다.

티, 옴, 타. 입에 붙여 두면 하루가 한결 또렷해지는 세 글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손에 닿지 않는 이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분이, 특히 더 건강하고 오래 사시는 어르신들이 알게 모르게 이 리듬을 따르고 계십니다. 저는 그분들의 하루에서 이 지혜를 거꾸로 배웠습니다.

첫 번째 끼, 일(티): 가치를 만드는 시간

일이란 무엇일까요. 직장에서 하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자영업을 꾸리고, 손주를 돌보고, 텃밭을 가꾸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모두가 '일'입니다. 이 모든 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여러분이 세상에 무언가를 더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크라우니는 이렇게 가치를 만드는 시간을 '티(Ti)'라 부릅니다. 드러나고 존재하게 하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좋은 밥상은 이것저것 한꺼번에 올려 어수선하지 않습니다. 한두 가지 음식에 정성을 들여 차립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알림과 잡담과 이메일을 잠시 내려놓고 한 가지에 마음을 모을 때, 그 일은 가장 깊어지고 단단해집니다. 손으로 정성껏 빚은 그릇처럼요. 그리고 한 끼와 다음 끼 사이에 숨을 고르듯, 일과 일 사이에 짧은 틈을 두면 똑같은 8시간도 훨씬 알찬 결실을 맺습니다. 식사 사이의 출출함이 다음 끼니를 더 맛있게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두 번째 끼, 배움(옴): 나를 키우는 시간

여기서 꼭 붙잡으셔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배움은 결코 쉼이 아닙니다.

많은 분이, 특히 은퇴를 앞두신 분들이 독서나 취미를 쉼으로 여기십니다. 하지만 크라우니가 말하는 배움, 곧 '옴(Om)'은 마음을 능동적으로 써야 하는 시간입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도 정신만은 또렷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아이가 색칠 도구를 손에 쥐고 그림에 푹 빠져들 때를 떠올려 보세요. 즐거워하면서도 눈빛만은 또렷하지 않던가요. 바로 그것이 배움입니다.

새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것,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것, 동호회에서 새 벗을 사귀는 것, 처음 만지는 악기나 기계를 더듬더듬 배워 가는 것—모두가 옴입니다. 오히려 은퇴 후 무언가를 새로 배우시는 분들이 가장 생기 있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지 않던가요. 무력감을 걷어낸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저는 배움이야말로 나이를 거꾸로 돌려놓는 가장 정직한 약이라고 믿습니다.

세 번째 끼, 쉼(타): 나를 회복하는 시간

마지막 끼는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쉼, '타(Ta)'입니다. 으뜸은 충분한 잠입니다. 잠은 그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줄 뿐 아니라, 낮 동안 배운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쉼이 잠만은 아닙니다. 아침 산책, 가족과 둘러앉은 밥상, 명상과 기도, 좋아하는 취미—이 모두가 쉼입니다.

간혹 일을 조금 더 하려고, 혹은 배움을 더 늘리려고 잠과 쉼을 깎는 분이 계십니다. 아침과 점심은 푸짐히 먹겠다며 저녁 한 끼를 매일 거르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은 견딜 만해도, 길게 보면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지요. 쉼이라는 끼니를 거른 통장은 결국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한 문장만은 꼭 마음에 새겨 두시길 부탁드립니다.

번아웃은 일이 너무 많아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쉬고 배울 시간을 일이 빼앗아 갔기 때문에 옵니다.

원인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야 합니다. 의사가 병을 잘못 짚으면 약도 어긋나는 법이니까요. 저 역시 한때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답인 줄 알고 저녁을 거르듯 쉼을 거르다, 결국 밥상째 엎고 나서야 이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늘의 점검〕

매일 밤 잠자리에 누우셨을 때,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가만히 물어보세요.

완벽하게 맞추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오늘 어느 한 끼가 너무 부실했다면, 너무 자책 마시고 내일 그만큼 보태면 됩니다. 이 세 물음에 조용히 답해 보는 것만으로도, 자기 삶을 찬찬히 돌아보는 좋은 습관이 됩니다. 가족이나 교회 모임, 동호회에서 함께 점검해 보아도 좋습니다.

궁금하시다면 balance.crowny.org에 한번 들러 보세요. 일·배움·쉼은 물론, 자산과 관계와 권한과 신뢰 같은 여러 면에서 내 삶이 얼마나 고루 균형 잡혀 있는지 가만히 비춰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반드시 지켜 주세요. 어느 한 영역이 완전히 0이 되는 일만은 피하셔야 합니다. 균형이란 한 곳이 유난히 높은 것이 아니라, 어디도 텅 비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 끼라도 통째로 거른 밥상은, 다른 두 끼가 아무리 푸짐해도 건강한 하루가 되지 못하니까요.

은퇴 후에도 8·8·8은 계속됩니다

은퇴 후 많은 분이 "일이 없어서 우울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것은 단순히 '일'이 사라져서가 아니었습니다. 일·배움·쉼이라는 세 기둥이 같은 날 한꺼번에 무너져서 오는 무력감이었지요. 지난 30년 하루를 떠받치던 삼시 세끼 밥상이, 은퇴하던 날 통째로 치워진 셈입니다.

다행히 그 밥상은 여러분이 직접 다시 차리실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자유롭습니다. 끊긴 밥상을 이번에는 내 손으로 새로 차리는 일이니까요.

일 8시간은 봉사 활동, 손주 돌봄, 텃밭 가꾸기로 충분합니다. 교회나 지역 단체에서 평생의 경험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시간—그것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세상에 여러분의 손길이 닿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배움 8시간은 독서 모임, 동호회, 온라인 강의로, 또 그동안 배우고 싶던 악기나 그림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손주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다 함께 책을 펼치는 것도, 새 요리법을 익히는 것도 모두 배움입니다. 마음을 능동적으로 쓰는 모든 일이 여기 속합니다.

쉼 8시간은 충분한 숙면, 매일 아침의 산책, 기도와 명상, 가족과의 밥상, 좋아하는 취미로 풍요로이 누릴 수 있습니다. 손주를 무릎에 안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오후도, 더없이 소중한 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세 시간의 균형입니다. 한 영역에만 매달리면 다른 곳이 메마릅니다. 일만 붙들면 자신을 가꿀 틈을 잃고, 배움만 좇으면 몸이 쇠약해집니다. 반대로 셋이 고루 채워지면, 나이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활기차고 의미 있는 하루를, 그리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실천 하나: 내일의 밥상을 미리 그려 보기

오늘 저녁, 잠시 조용히 앉아 내일의 하루를 떠올려 보세요. 일 8시간, 배움 8시간, 쉼 8시간이 어떻게 놓일까요.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세 끼가 모두 밥상에 오르는지, 어느 한 끼가 빠지지 않는지만 가만히 살펴보세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종이 한 장에 '일' '배움' '쉼' 세 칸을 그어 두고, 내일 그 칸을 무엇으로 채울지 한 줄씩 적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손으로 적은 하루는, 신기하게도 마음에 더 또렷이 자리를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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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우리 삶의 진짜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이 작은 습관 하나가 내일의 하루를 가만히 바꾸어 놓을 거예요. 저는 이 8·8·8의 밥상이, 인생을 다시 세우려는 여러분의 가장 든든한 기초가 되리라 믿습니다. 머잖아 우리는 이 균형 위에서 함께 일할 사람들을 만나고, 거기서 거둔 것을 다시 나누는 이야기까지 나아가게 될 테니까요.

다만 그 길로 들어서기 전에, 저는 세 끼 가운데 가장 자주 부실해지는 자리부터 단단히 다지고 싶습니다. 일에 치여 배움을 놓치고, 쉼을 깎아 가며 자신을 갉아먹는—바로 그 무너진 자리 말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흐트러진 그 밥상을 어떻게 다시 차려 내는지, 일·배움·쉼의 회복에 대해 한 끼씩 함께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옴 · CHAPTER 04

일·배움·쉼의 회복

어젯밤, 마음이 편안하셨나요

지난 장에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루라는 밥상을 차려 보았습니다. 일 8시간, 배움 8시간, 쉼 8시간. 티옴타 하루의 세 끼를 골고루 차리자고, 잠들기 전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물어보자고 약속했지요. 그러니 오늘은 그 약속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우셨을 때 마음이 편안하셨나요. 하루를 잘 살았다는 따뜻한 충만함으로 눈을 감으셨나요. 아니면 무언가에 쫓기듯, 가슴 한구석이 허전한 채로 천장을 바라보셨나요.

저는 압니다. 이 물음 앞에서 많은 분의 마음이 살짝 움츠러든다는 것을요. "8시간씩이라니, 그게 정말 가능한 이야기인가" 하고 고개를 가로젓고 싶으실 겁니다. 일에 치여 사는 분이라면 쉼과 배움이 통째로 사라졌을 테고, 은퇴 후 무력감에 잠긴 분이라면 일이라는 기둥 하나가 빠지면서 하루 전체가 흔들렸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지난 장이 세 끼의 밑그림을 그렸다면, 이번 장은 그 세 끼를 실제로 어떻게 차려 내는지, 손에 잡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미리 한 가지만 말씀드리지요. 균형을 되찾는 일은 여러분이 두려워하시는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훨씬 가깝습니다. 이미 여러분 삶 속에 놓여 있던 것들을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놀랍도록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자, 그러면 첫 끼부터 차려 보겠습니다.

첫 끼: 일의 깊이를 회복합니다

우리가 '일'이라 부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직장에 나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자녀를 정성껏 기르는 손길, 작은 가게를 꾸려 가는 부지런함, 교회나 절에서 묵묵히 섬기는 봉사, 텃밭의 흙을 만지며 제 손으로 무언가를 길러 내는 그 모든 활동이 다 '티(Ti)', 곧 일입니다. 세상에 무언가를 더하고 가치를 낳는 시간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훌륭한 일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오래 들여다보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일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양'이 아니라 '깊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곧잘 "오늘 여덟 시간 일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여덟 시간 가운데, 정말로 깊이 있게 마음을 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휴대폰이 울리고, 메일 알림이 떨어지고, 옆자리의 잡담이 끼어드는 사이사이로 우리의 정신은 자꾸만 흩어집니다. 한 가지에만 온전히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연속된 시간이 점점 짧아집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여덟 시간을 꼬박 채웠어도, 마음으로는 두 시간 남짓 일한 것 같은 허전함이 남지요. 다들 한 번쯤 겪어 보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일을 어떻게 회복할까요.

하루 가운데 한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휴대폰을 잠시 다른 방에 두시고, 메일 알림을 꺼 두세요. 그리고 한 자리에서,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만드세요. 흩어지지 않고 한곳에 정신을 모으는 이 시간을 두고 흔히 '깊은 일'이라 부릅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모은 한 시간이, 산만하게 흘려보낸 네 시간보다 더 단단한 결실을 맺습니다. 손으로 정성껏 빚은 그릇이 기계로 찍어 낸 물건과 사뭇 다르듯, 정신을 모은 일과 흐트러진 일은 그 깊이가 아주 다릅니다.

은퇴하신 분들은 어떨까요. "이제 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실 때, 저는 그 마음 깊은 곳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그것은 일을 잃어서라기보다, 삶의 목적을 잃은 허전함일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월급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출근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 자리가 비었다고 해서, 여러분의 손이 할 수 있는 일까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모두가 어엿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시간이 내 하루에 얼마나 있는가입니다. 월급이 따르지 않아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어도, 아무도 지켜보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손수 차릴 수 있는 일의 밥상은 여전히 풍성합니다.

〔오늘의 점검〕

두 번째 끼: 배움의 기쁨을 되찾습니다

시니어 여러분, 혹시 이런 말을 들어 보셨나요. "은퇴하면 책이나 느긋하게 읽고, 좋아하는 취미나 하면서 편히 살아야지." 듣기에는 더없이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자그마한 함정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배움은 결코 쉼이 아닙니다.

책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읽을 수 있지만, 책장을 넘기는 내 정신만은 또렷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가 살아온 경험과 이어 보고, 그렇게 나를 조금씩 바꾸어 가는 능동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되는 것처럼 편해 보여도, 마음만은 부지런히 씹고 음미하고 있는 셈이지요. 영화를 멍하니 흘려보는 것과, 한 장면 한 장면을 곱씹으며 보는 것이 전혀 다른 것처럼요. 앞 장에서 저는 배움을 두고 "입으로 들이되 정신으로 씹는 시간"이라 했습니다. 바로 그 뜻입니다.

그리고 혼자 가만히 읽는 것보다, 배움을 함께 나눌 때 그 기쁨이 한결 풍요로워집니다.

그렇다면 배움을 어떻게 회복할까요.

첫째, 모임에 나가 보세요.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혼자 할 때보다 훨씬 깊이 배우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든, 악기를 더듬더듬 익히든, 역사를 함께 공부하든, 성경이나 불경을 둘러앉아 읽고 나누든 좋습니다. 함께라는 온기가 배움을 오래가게 합니다.

둘째, 배운 것을 나누세요. 손주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다가 함께 역사책을 펼쳐 "할아버지 어릴 적엔 어땠을까" 물어보는 것도 훌륭한 배움입니다. 내가 아는 것을 누군가에게 건네려 애쓰는 그 순간, 나 자신이 그것을 한층 더 깊이 알게 되니까요.

셋째, 처음 보는 것에 도전해 보세요. 여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것이면 더 좋습니다. 악기든, 그림이든, 외국어든, 손에 익지 않은 스마트폰 다루기든 괜찮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머리는 새로운 자극과 배움을 오히려 더 갈구합니다. 무력감에 잠겼던 분이 새 취미 하나를 익히며 눈빛을 되찾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은 끝까지 배우기를 원하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배움 여덟 시간을 빠짐없이 다 채우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루 한두 시간, 새로운 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는 한층 깊어집니다.

〔오늘의 점검〕

세 번째 끼: 쉼의 깊이를 지킵니다

일도 소중하고 배움도 귀합니다. 하지만 부디 잊지 마세요. 쉼이 모자라면, 아무리 부지런히 일하고 배워도 끝내 번아웃이라는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많은 분이 번아웃의 까닭을 잘못 짚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지쳤다"고 말씀하시지요. 하지만 크라우니가 들여다본 번아웃의 진짜 뿌리는 조금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쉬고 배울 시간을 일이 빼앗아 갔기 때문에 찾아옵니다. 밥상에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점심을 푸짐하게 차린 사람이 저녁을 매일 거른다면, 그 몸은 머지않아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회복할 한 끼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더 깊이 파 내려갈 테니, 오늘은 쉼의 세 가지 모습을 먼저 차려 보겠습니다.

쉼의 첫째, 무엇보다 으뜸은 잠입니다.

충분한 잠은 사치가 아닙니다. 잠은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내고, 머리가 그날 배운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비로소 내 것으로 갈무리하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입니다. 잠을 줄여 가며 일과 배움만 좇는 것은, 아침과 점심을 든든히 먹겠다며 저녁을 날마다 거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당장은 버틸 만해도, 길게 보면 자신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일이지요.

쉼의 둘째는 몸의 회복입니다.

아침 산책이 주는 위안은 얼마나 따뜻한지요.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립니다. 규칙적인 운동,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목욕,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손을 가만히 놀리는 시간. 이 모두가 어엿한 쉼입니다. 몸이 풀리면 마음도 절로 차분해집니다.

쉼의 셋째는 마음의 회복입니다.

기도나 명상은 흐트러진 마음을 한곳에 고요히 모으는 시간입니다. 소리 없는 조용한 자리에 앉아 숨을 천천히 고르며 하루의 소란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지는지요. 신앙이 있는 분은 기도로, 종교가 없는 분은 명상이나 음악으로, 또는 마음 맞는 이와의 도란도란한 대화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쉼의 가장 따뜻한 모습은, 가족과 둘러앉은 밥상입니다.

밥상에 마주 앉아 하루를 나누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시간. 손주를 무릎에 안고 도란도란 속삭이는 그 평온한 오후. 이것이야말로 참된 쉼입니다. 회복이란 혼자만의 편안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일 때, 우리 마음은 가장 깊은 곳까지 회복됩니다.

〔오늘의 점검〕

세 끼를 차리는 사람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이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실 겁니다. "말씀은 참 좋은데, 내 현실이 그렇게 반듯하게 균형 잡혀 있을 리가 없잖아." 맞습니다. 저도 압니다. 요즘은 누구나 일에 치여 사는 세상이지요. 젊은 분들은 일과 배움 틈바구니에서 쉼을 잃었고, 은퇴한 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일의 자리가 비면서 삶의 균형 전체가 휘청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꼭 하나 붙들고 가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균형이란 완벽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매일 칼같이 여덟 시간씩 일하고, 정확히 여덟 시간씩 배우고, 한 치 어긋남 없이 여덟 시간씩 자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균형이란, 어느 한 곳도 텅 비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 끼가 부실했던 날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다음 날 그만큼 보태면 됩니다. 어제 제대로 쉬지 못했다면, 오늘 그 부족분을 채우면 됩니다. 한 주를 통틀어 보았을 때 일과 배움과 쉼이 대략 고르게 채워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무리 바쁜 한복판에서도, 또 아무리 여유로운 은퇴 후에도, 이 세 가지 모두에 시간을 조금씩이나마 떼어 주는 것. 그것이 참된 균형입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어느 한 영역이 통째로 0이 되는 것입니다. 일을 아예 손에서 놓거나, 배움을 완전히 접거나, 도무지 쉬지 않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 가장 손쉽게 버려지는 끼니가 바로 쉼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번아웃이지요.

혼자서 이 균형을 지키기가 버겁다면, 함께하세요. 가족과, 교회나 절의 모임에서, 동호회에서 이 세 끼 차리는 일을 나눈다면, 저마다 홀로 짊어질 때보다 훨씬 따뜻하고 환할 것입니다.

실천 하나: 매일 밤의 세 가지 물음

이 장을 덮자마자 내일 아침부터 모든 것을 한꺼번에 뜯어고치려 하지는 마세요. 그러다 지쳐 며칠 만에 그만두는 분을 저는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대신, 오늘 밤 자리에 누우며 가만히 이 세 가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또렷한 답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물음을 날마다 되풀이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삶은 천천히 균형을 되찾아 갑니다. 한 주를 통틀어 이 세 자리가 대략 채워졌다면,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조금 더 헤아려 보고 싶으시다면 balance.crowny.org에 한번 들러 보세요. 일·배움·쉼은 물론, 자산과 관계, 권한과 신뢰까지 내 삶이 얼마나 고르게 균형 잡혀 있는지를 가볍게 비춰 보는 도구가 있습니다. 혼자보다 가족이나 모임에서 함께 점검해 보면, 그 시간이 한결 따뜻하고 뜻깊을 것입니다.

마무리: 내가 차리는 밥상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우리 삶의 진짜 주인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누가 시켜서도, 누가 지켜보아서도 아닌, 여러분 스스로가 이 세 끼 밥상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차릴 수 있습니다.

어젯밤 잠자리에서 마음이 편치 않으셨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무언가를 놓쳤다는 다정한 신호입니다. 일의 깊이였을 수도, 배움의 기쁨이었을 수도, 회복의 한때였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것들은 모두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내일부터, 이번 주부터, 아니면 이번 달부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되찾으면 됩니다.

그리고 이 균형을 더듬어 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일·배움·쉼이라는 세 가지가, 실은 따로 떨어진 남남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배움이 깊어지면 일도 깊어지고, 넉넉히 쉬어야 비로소 배움도 소화되며, 의미 있는 일을 할 때라야 마음이 진정으로 놓입니다. 세 끼는 서로를 떠받치는 한 식구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가만히 고개를 듭니다. 우리는 줄곧 "쉼이 모자라면 번아웃이 온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그 번아웃은 대체 어디서, 왜 오는 것일까요. 다음 장에서는 세 끼의 균형 아래 흐르는 더 깊은 뿌리로 내려가, 번아웃은 왜 오는가—우리가 끝내 지쳐 가는 진짜 까닭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옴 · CHAPTER 05

번아웃은 왜 오는가

지난 장 끝에서 저는 여러분께 한 가지 물음을 약속드렸습니다. 일·배움·쉼의 세 끼를 차리는 법까지 나누었으니, 이제는 더 깊은 뿌리로 내려가 보자고 말입니다. 번아웃은 왜 오는가. 우리가 왜 이토록 지쳐 가는지, 그 진짜 원인을 이번 장에서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번아웃은 결코 나약함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한 분들, 책임감 깊은 분들, 끝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분들에게 더 자주 찾아옵니다. 그러니 혹시 지금 마음이 텅 비어 있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다면, 부디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한쪽으로만 자신을 써 왔던 것뿐입니다.

똑같은 처방, 똑같은 실패

우리가 "번아웃"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고갈은 의외로 구체적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이 천근만근이고, 좋아하던 일조차 손에 잡히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것마저 버겁습니다. 마음 어딘가가 텅 비어 버린 듯한 그 느낌, 한 번이라도 겪어 보신 분은 단번에 아실 겁니다.

그런데 번아웃을 호소하면 세상은 대개 같은 처방을 내놓습니다. "일을 줄이세요." "휴가를 다녀오세요." "푹 쉬세요." 다 맞는 말 같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며칠 쉬어 봅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여행도 다녀오고, 늦잠도 실컷 자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돌아와도 별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쉬는 동안 더 불안했다는 분도 계십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쉬었는데도 왜 회복이 안 될까요?

저는 그 까닭을, 처방 자체가 원인을 빗나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일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침범당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래 지켜본 번아웃의 진짜 원인은 이렇습니다. 문제는 "일이 8시간"인 게 아니라, 쉼과 배움이 일에 끌려들어 갔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24시간입니다. 앞 장에서 우리는 이 하루를 세 끼 밥상처럼 나누어 보았지요.

일 8시간, 배움 8시간, 쉼 8시간.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이 골고루여야 하루가 건강하듯, 시간도 정확히 그렇습니다. 한 끼만 푸짐하게 차리고 나머지 두 끼를 거르면, 당장은 배가 불러도 몸은 서서히 무너집니다. 이것이 크라우니가 말하는 티옴타 하루입니다. 티(Ti)는 가치를 만드는 일, 옴(Om)은 능동적으로 새것을 익히는 배움, 타(Ta)는 회복하고 관계를 맺는 쉼입니다.

묶음뜻예시
일 8h (티)가치를 만드는 시간직장, 자영업, 창업, 자녀 양육, 봉사
배움 8h (옴)능동적으로 새것을 익히는 시간독서, 강의, 동호회, 공부, 손주와의 대화
쉼 8h (타)회복하고 관계 맺는 시간수면, 산책, 기도, 가족 식사, 운동

여기서 꼭 기억하실 것이 있습니다. 쉼은 단순히 TV 앞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쉼의 핵심은 수면입니다. 그리고 예배와 운동, 가족과의 진솔한 대화—이런 것들이 우리를 진짜로 회복시킵니다. 배움 또한 쉼이 아닙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우리 정신은 깨어서 새것을 받아들이고 있으니까요. 셋은 저마다 다른 양분이고, 어느 하나도 다른 것이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침범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그러면 이 균형은 어떻게 무너질까요? 거창한 사건 때문이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하루에서 슬그머니 시작됩니다.

바빴던 어느 날을 떠올려 봅시다. 아침에 회사에 나가 일 8시간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몇 가지가 덜 끝났네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이메일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업무 메모를 다시 펼쳐 봅니다. 밤 10시, 11시까지 결국 일이 이어집니다. 일이 쉼의 자리로 넘어온 것이지요.

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다 뒤처진다"는 조바심에, 출퇴근 길에 강의를 듣고, 점심시간에 영상을 보고, 주말에도 책을 펴야 한다고 느낍니다. 원래는 즐겁던 배움이, 어느새 "해치워야 하는 숙제"로 변해 버립니다. 배움이 일을 닮아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쉼. 잠을 줄입니다. "여섯 시간이면 충분하지" 하면서요. 그렇게 벌어들인 두 시간을 일과 배움에 보탭니다. 처음엔 괜찮습니다. 한 달, 두 달은 견딜 만합니다. 하지만 몸은 정직합니다. 빌린 잠은 반드시 이자를 붙여 돌려받아 갑니다.

이렇게 며칠이 쌓이면 하루는 이런 모양이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총합은 여전히 24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간을 더 쓴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한 영역(쉼)이 부도가 났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영역의 적자가,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그것이 번아웃의 정체입니다.

그래서 "일을 줄이세요"라는 처방이 자주 빗나가는 것입니다. 일을 조금 줄여도, 줄인 그 시간을 또 일 걱정이나 산만한 배움으로 채우면 쉼은 여전히 텅 비어 있으니까요. 채워야 할 곳을 채우지 않으면, 아무리 쉬어도 회복되지 않습니다.

은퇴 후에도 똑같이 찾아옵니다

"그럼 일이 아예 없으면 번아웃도 없겠네요?"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대목이 어쩌면 이 장에서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정년을 맞으신 분들 가운데 깊은 무력감과 우울을 호소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이제 할 일이 없다"고 하시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진짜 원인은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세 묶음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의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모양일 때가 많습니다.

일의 자리가 거의 비어 정체성을 잃습니다. 배움이 몇 시간 안 되니 뇌가 좀처럼 자극을 받지 못합니다. 그 빈자리를 전부 쉼이 차지해 버립니다. 그런데 쉼이 너무 많아지면, 쉼은 더 이상 회복이 아니라 공허함으로 바뀝니다. 하루 종일 쉬는데도 마음이 무거운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해법도 분명합니다. 일을 다시 만드는 것입니다. 거창한 직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교회에서,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루 안에 다시 들여놓는 것입니다.

봉사 활동을 시작하신 어느 분의 하루는 이렇게 다시 채워졌습니다. 봉사 8시간, 동호회와 공부 8시간, 잠과 가족과의 시간 8시간. 일의 양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균형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우울감이 스르르 물러갔습니다. 젊은 사람의 번아웃과 은퇴자의 무력감은 겉모습은 정반대처럼 보여도, 뿌리는 똑같습니다. 세 묶음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도났다는 것. 그리고 처방도 똑같습니다. 비어 버린 그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

오늘의 점검 — 세 묶음 지표

말이 길었습니다. 오늘 밤부터 바로 해 보실 수 있는 간단한 점검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자리에 누우시기 전,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물어보세요.

〔오늘의 점검〕

한 항목이라도 4시간에 못 미쳤다면, 그날은 "균형 적자"입니다.

여기서 '진짜'라는 말이 무척 중요합니다. 일하면서 한쪽에 영상을 틀어 둔 것은 배움이 아닙니다. 침대에 누웠지만 걱정에 뒤척이느라 잠들지 못한 것은 쉼이 아닙니다. 책을 들었다 놓았다만 반복한 것 역시 배움이 아닙니다.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이 온전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하게 답하는 그 한순간이, 번아웃을 가장 일찍 알아채는 신호등이 되어 줍니다.

다시 맞추는 법

균형이 깨진 것을 알아챘다면, 다행입니다. 알아챘다는 것은 이미 회복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니까요. 그다음 날부터 천천히 다시 맞추면 됩니다.

어제 쉼이 5시간이었다면, 오늘은 일을 조금 덜고 평소보다 한두 시간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어제 배움이 2시간이었다면, 오늘은 책을 펴거나 강의를 한 꼭지 듣습니다. 하루 만에 다 채울 수 없다면, 사흘에 걸쳐서라도 천천히 복구하면 됩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번아웃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여러 달, 여러 해에 걸쳐 일이 배움과 쉼을 야금야금 침범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회복도 마땅히 시간이 걸립니다. 무너지는 데 한 해가 걸렸다면, 돌아오는 데 한 달이 걸리는 것은 결코 더딘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방향만큼은 분명해야 합니다. 방향이 분명하면, 우리는 반드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함께 점검할 때 더 단단해집니다

이 점검은 혼자 하셔도 좋지만, 함께하면 훨씬 따뜻하고 단단해집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신앙 공동체에서 "오늘 세 묶음이 어땠어?" 하고 서로 물어보세요. 그러면 누군가는 "어제 너무 일만 했네" 하고 슬며시 고백하고, 또 누군가는 "나는 배움이 부족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서로의 적자를 알아봐 주고 채우도록 거들어 주는 것—그것이 공동체의 건강입니다. 혼자 차리는 밥상보다, 함께 차리는 밥상이 더 든든하기 마련이니까요.

처음에 세상이 건넨 조언, "일을 줄이세요"가 왜 자주 빗나가는지 이제 아셨을 겁니다. 진짜 처방은 '세 묶음을 다시 균형 맞추는' 것입니다. 일이 많든 적든, 그 균형이 무너지면 우리는 고갈됩니다. 반대로 균형을 돌려놓으면, 일은 다시 의미 있는 활동이 되고, 배움은 즐거운 시간이 되고, 쉼은 진정한 회복이 됩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 내 하루의 균형은 정확히 몇 점일까요—다음 장 '나의 균형 점수'에서, 이 세 묶음을 수치로 마주하는 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옴 · CHAPTER 06

나의 균형 점수

지난 장에서 우리는 번아웃이 왜 오는지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마땅히 쉬고 배워야 할 시간을 일이 슬그머니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지요. 도둑맞은 줄도 모르게 도둑맞은 시간. 그것이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봅시다. 내 하루가 정말로 어떻게 나뉘고 있는지, 직접 들여다볼 차례예요. 저는 이 작업을 무척 좋아합니다. 막연히 "요즘 힘들다"고 느끼던 것이, 숫자로 보이는 순간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지거든요. 적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면, 더는 무섭지 않은 법이니까요.

차 한 잔 옆에 두시고,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어제 하루를 돌아보면

어제 아침 눈을 뜬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당신의 스물네 시간은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뉩니다. 저는 이 셋을 일·배움·쉼이라고 부릅니다.

일 — 가치를 만드는 시간입니다. 회사에 다니시면 근무 시간이고, 가게를 하시면 장사하는 시간이고, 집에서 살림과 손주를 돌보신다면 그 또한 분명한 일입니다. 어떤 모습이든,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또는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보태는 시간이라면 다 일이에요. 돈을 받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배움 — 새것을 익히는 시간입니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때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동호회에서 취미를 배울 때도 있지요. 손주에게 자랑하려고 휴대폰 새 기능을 익히는 것도, 교회 성경공부에 나가시는 것도 모두 배움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꼭 기억해 주세요. 배움은 가만히 쉬는 게 아니라, 마음을 열고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어쩌면 가장 자주 잊히는 영역이에요.

쉼 —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잠이 가장 핵심이고요. 낮잠, 산책, 식사, 가족과의 도란도란한 대화, 예배, 가벼운 운동도 모두 쉼에 들어갑니다. 다만 쉼은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점을 기억하셨으면 해요. 텔레비전을 멍하니 틀어 두는 것과, 마음먹고 푹 자는 것은 같은 쉼이 아니랍니다.

이 셋이 고르게 어우러질 때, 우리 인생은 비로소 안정적으로 흘러갑니다. 한쪽으로 기울면 어딘가가 반드시 삐걱거려요.

8 대 8 대 8

하루는 스물네 시간입니다. 셋으로 나누면 여덟 시간씩이지요.

이것이 기본 공식입니다. 셋이 똑같은 무게를 가질 때 사람이 건강해요. 저는 이 셋을 티·옴·타라고 부릅니다. 어려운 말이 아니라, 그저 일에 티, 배움에 옴, 쉼에 타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을 뿐이에요. 이름을 붙이고 나니 신기하게도, 오늘 내가 어디를 비웠는지가 더 또렷이 보이더군요.

혹시 "배움에 여덟 시간을요?"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신 분 계실까요. 그럼요, 정말입니다. 저는 이걸 "하루를 삼시 세끼처럼 생각하기"라고 설명하곤 합니다.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이 골고루 들어와야 몸이 건강하지요. 한 끼만 거르면 그날 하루 종일 기운이 없습니다. 일·배움·쉼도 똑같아요. 일만 하고 배움과 쉼을 거르면 사람은 단순히 피곤해지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마음과 정신까지 야위어 갑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잔잔한 기쁨,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자유. 그것이 사라진 사람은, 배가 부른데도 헛헛한 사람과 똑같아요.

53분 20초의 힘

혹시 "여덟 시간을 어떻게 한자리에 앉아서 채우나" 걱정되셨다면, 마음 푹 놓으셔도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일할 때 여덟 시간을 내리 집중하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끊어집니다. 점심을 먹고, 동료와 짧게 이야기하고, 잠깐 자리를 비우고. 그 사이사이 작은 쉼이 끼어들어요. 사람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크라우니에서는 여덟 시간을 아홉 개의 작은 덩어리로 나눕니다. 한 덩어리는 53분 20초. 저희는 이 한 덩어리를 1 크시라고 불러요. 한 크시 동안 일에 푹 빠졌다가, 7분쯤 가볍게 쉬고, 다시 한 크시에 빠집니다. 이걸 아홉 번 반복하면 정확히 여덟 시간이 돼요.

왜 하필 53분 20초일까요? 이건 옛 지혜와 사람 마음의 이치가 만난 숫자입니다. 동양의 사찰에서는 오래전부터 스님들이 일·공부·수행을 여덟 시간씩 나누어 살았어요. 천오백 년을 이어 온 서양의 수도원도 기도와 노동과 독서를 고르게 나누어 하루를 채웠고요. 한 시간이 조금 못 되는 이 덩어리. 그것이 사람이 깊이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길이더라는 거예요. 동양과 서양이 천 년 넘게 따로 살아 보고 똑같은 결론에 다다랐다니, 저는 이 대목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자, 숫자가 좀 복잡하게 들리셨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간단합니다.

"아침에 일 두세 시간, 점심, 오후에 일 또 두세 시간. 퇴근 후 저녁에 배움이나 취미 두세 시간, 밥 먹고 쉰 뒤 잠자리 준비."

딱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53분 20초라는 숫자에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얽매이실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그저 "한 시간쯤을 한 덩어리로 삼아 집중하고, 그 사이사이 짧게 쉬어 주기" 정도로 마음에 새겨 두시면 됩니다.

당신의 어제는?

자, 이제 어제 하루를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솔직하게, 나 자신에게만은요.

〔오늘의 점검〕

어제 하루 중에…

한 영역이 네 시간에도 못 미쳤다면, 그날은 균형 적자입니다. 예를 들어 일에 열 시간, 배움에 두 시간, 쉼에 여섯 시간이었다면 — 배움이 심하게 굶은 하루예요. 그렇다고 자책하실 일은 아닙니다. 그저 내일 배움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채워 주면 되는 거예요.

저는 이 셋에 점수를 매겨 보기를 권합니다. 목표의 8할쯤을 채웠다면 80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셋 다 80점이면 건강한 하루입니다. 한 영역이 0점이라면 — 하루 종일 배움이 전혀 없었다든지 — 그건 빨간불이에요. 한 영역이 100점인데 다른 영역이 0점인 것은, 결코 잘한 하루가 아닙니다. 한 끼를 두 그릇 먹고 두 끼를 거른 것과 같으니까요.

은퇴하신 분들, 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께

혹시 "나는 이제 일을 안 하는데" 하실 분 계실까요. 괜찮습니다. 조금도 걱정 마세요. 일의 뜻은 생각보다 훨씬 넓습니다.

은퇴하신 뒤라면 이렇게 채워 보실 수 있어요.

저는 "일이 없으니 영 무력하다"는 말씀을 참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진짜 문제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 묶음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일 때가 많아요. 퇴직하고 처음 며칠은 마치 긴 휴가처럼 달콤하지요. 그러나 곧 배움도 일도 함께 빠져나가 버리면서, 마음이 텅 비어 갑니다. 쉼만 남은 하루는 쉼이 아니에요. 처방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시 세 묶음을 고르게 채우는 것. 그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균형 점수는 더 소중해집니다. 젊을 때는 한쪽이 무너져도 몸이 버텨 주지만, 연세가 드시면 한 영역이 0점인 날이 길어질수록 마음도 몸도 빠르게 시들어요. 그러니 더더욱, 매일 세 끼니를 챙기듯 세 묶음을 챙기셔야 합니다.

당신의 한 주는?

하루를 보셨으니, 이번엔 시야를 조금 넓혀 지난 한 주를 돌아봅시다. 하루는 들쭉날쭉할 수 있어도, 한 주를 모아 보면 내 삶의 진짜 모양이 드러나거든요.

〔오늘의 점검〕

지난 한 주를 떠올려 보면…

  1. 일 — 의미 있는 일을 충분히 했는가? (한 주 통틀어 대략 마흔 시간 안팎)
  2. 배움 — 무엇이든 새로 배웠는가? (책 한두 장, 새 사람과의 대화, 짧은 강의 하나라도)
  3. 쉼 — 밤잠을 충분히 자고, 마음 놓고 쉰 시간이 있었는가?

한 영역이 눈에 띄게 낮았다면, 다음 주 계획에 그 영역을 일부러 끼워 넣으세요. 비어 있던 자리는 저절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손을 내밀어 채워 넣어야 채워져요.

이를테면 지난주에 배움이 거의 없었다 싶으면, 다음 주에 이렇게 약속을 세워 봅니다.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의식적으로." 이 한마디가 무너진 균형을 되살리는 비결이에요. 큰 결심은 사흘을 못 가지만, 작은 약속은 한 해를 갑니다.

마음과 몸과 정신

당신이 왜 자꾸 피곤한지, 왜 가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바로 이 세 묶음을 들여다보세요. 답은 거기에 있습니다.

일만 하고 쉬기만 한 사람은, 몸은 쉬었을지 몰라도 마음이 굶주립니다. 새것을 배우는 기쁨, 무언가를 문득 깨닫는 환희. 그 양식이 끊겼으니까요.

일과 배움만 좇고 쉼을 미뤄 둔 사람은 몸이 서서히 병들어 갑니다. 잠을 줄여 가며 일을 더 하는 것을 두고 흔히 "자기관리"라 부르지요. 하지만 그것은 관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조금씩 깎아 먹는 일이에요. 통장은 채워질지 몰라도, 정작 그 통장을 쓸 사람이 닳아 없어집니다.

세 묶음의 균형이 맞으면,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몸이 가벼워집니다. 정신이 또렷해집니다. 거창한 비결도 비싼 약도 아닌, 그저 하루를 셋으로 고르게 나눈 것뿐인데 말이에요.

그리고 이 균형은, 사실 더 큰 이야기의 첫 단추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일·배움·쉼으로 고르게 세우는 법을 익히고 나면, 그 위에 차곡차곡 다른 균형들을 쌓아 올릴 수 있거든요. 시간의 균형이 잡힌 사람은, 머지않아 마음의 균형도, 관계의 균형도,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이 쌓아 가는 가치의 균형까지도 다스릴 줄 알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이 책을 따라오시는 동안 차차 펼쳐 보여 드릴게요. 지금은 한 걸음씩, 하루의 균형부터입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 균형을 일상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세워 가는지 들여다볼 거예요. 제목은 "아홉 명의 회사"입니다. 어쩌면 낯선 말처럼 들리시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하루 속에는 일을 맡은 당신, 배움을 맡은 당신, 쉼을 맡은 당신이 있고, 그 셋이 저마다 또 셋으로 나뉘어 아홉 사람이 됩니다. 그 아홉이 한 회사처럼 손발을 맞출 때, 당신의 인생은 비로소 한 사람이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잘 짜인 한 팀이 함께 굴려 가는 것이 됩니다.

지금은 차분히 어제와 지난 한 주를 되짚어 보세요. 당신의 균형 점수는, 몇 점인가요? 그 점수를 손에 쥐고 다음 장으로 함께 넘어가, 당신 안의 아홉 사람을 한 명씩 만나러 가 봅시다.


옴 · CHAPTER 07

아홉 명의 회사

"우리가 정말, 회사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묻고, 경력을 재 보고, 통장 잔고를 세어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젓는 분들의 얼굴을요. "서른이 넘으면 늦었다", "빌릴 돈이 없으면 안 된다", "나 같은 사람한테 회사는 무슨"—이런 말들이 공기처럼 떠다닙니다. 저도 그 공기를 압니다. 저 역시 한때 같은 자리에서 망설였으니까요.

바로 앞 장에서 우리는 '나의 균형 점수'를 매겨 보았습니다. 일과 배움과 쉼, 그 셋이 내 하루 안에서 얼마나 고르게 숨 쉬고 있는지를요. 누군가는 점수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을 테고, 누군가는 의외로 단단했을 겁니다. 저는 그 점검이 단지 '나 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좋은 하루를 살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일터를 만들 줄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그 균형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크라우니가 그리는 회사는, 여러분을 부담 앞에서 포기하게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이미 가진 것에서 출발하는 회사입니다.

야구팀처럼 시작합니다

야구장에 가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라운드 위의 아홉 명—투수와 포수, 내야수 넷, 외야수 셋. 정원이 정확히 아홉입니다. 한 명만 빠져도 경기가 성립하지 않지요.

크라우니의 작은 회사도 꼭 그렇게 시작합니다. 아홉 명.

이 아홉 명이 한 팀이 되면, 함께 크라우니(CRY)를 나눠 받습니다. 셈은 이렇습니다. 한 분이 6억 2천만 CRY를, 나머지 여덟 분이 각각 3억 1천만 CRY씩 받습니다. 일을 앞장서 끌어가는 분이 일반 팀원의 정확히 두 배가 되는 것이죠. 모두 합쳐 31억 CRY. 이것이 시즌 1의 전부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 크라우니가 무엇인지 짚고 가겠습니다. 크라우니의 살림에는 세 켜가 있습니다. 맨 아래는 날마다 주고받는 돈(머니), 곧 크라우니원입니다. 그 위에는 가치를 담아 두는 자산(에셋)이 있고요. 그리고 맨 위, 가장 근원에는 부(웰스)가 있습니다. 크라우니(CRY)는 바로 그 맨 위, 부의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손에 쥔 31억 CRY는 그러니까 '쓸 돈'이 아니라 '가진 부'입니다. 집이나 땅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든든해지는 바탕인 셈이지요.

자산이 자금을 낳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를, 어떻게 회사 살림으로 끌어 쓸까요. 여기서 크라우니의 가장 인상적인 셈법이 나타납니다.

부(웰스)인 크라우니를 담보로 맡기면, 곧바로 쓸 수 있는 돈—머니가 생깁니다. 우리는 이 돈을 크라우니원라고 부르지요. 신용카드를 만들 때 내 신용에 맞춰 사용 한도가 자동으로 정해지듯, 내가 가진 부(CRY)에 맞춰 쓸 수 있는 운용 자금의 한도가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3억 1천만 CRY를 가진 분이라면 약 42만 5천 크라우니원를, 6억 2천만 CRY를 가진 분이라면 약 85만 크라우니원를 손에 쥡니다. 갓 출발하는 작은 회사가 사무실을 얻고, 재료를 사고, 함께 일할 사람을 들이기에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가장 놀라운 건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집문서를 잡히지 않아도 되며, 갚을 날을 두려워하며 잠 못 이루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가진 부가 곧 신용이고, 그 신용이 곧 자금으로 바뀌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이 자금에 왜 이자의 무게가 얹히지 않는지는, 바로 다음 장에서 차근차근 풀어 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내 부가 내 자금이 된다'는 한 가지만 마음에 담아 두시면 충분합니다.

조금은 다른 회의, 조금은 다른 결정

아홉이 모이면 매주 한 번씩 만납니다. 시간은 단 1크시—크라우니의 표준 시간 단위로 53분 20초입니다. 짧지요.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거기서 함께 결정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이 회의에서 표결을 하면, 여느 회의와 다른 선택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찬성(T), 반대(A), 그리고 유보(O). 세 개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유보는 기권이 아닙니다. 무책임한 중립은 더더욱 아닙니다. "아직 정보가 모자랍니다. 제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더 알아봐야 합니다"—이렇게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유보입니다. 그리고 크라우니는 그 정직함을 존중합니다.

만약 아홉 명 중 찬성도 다섯에 못 미치고, 반대도 다섯에 못 미치는데 유보가 많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안건은 부결되지 않습니다. 대신 재논의로 넘어갑니다. 정보를 더 모으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표결하는 것이지요.

추리소설의 탐정을 떠올려 보세요. "이분이 범인인 듯한데, 증거가 모자라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능함이 아니라 정직함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단서를 찾게 되고,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역사 속 중립국들도 그러했습니다. 동과 서 어느 쪽으로도 섣불리 쏠리지 않은 그 한 박자가, 때로 세계의 판도를 바꾸었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이해가 안 되면 물어보는 회의. 이런 문화는 성급한 결정을 막아 주고, 아홉 명이 모두 납득한 뒤에야 한 발을 내딛게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표결 기록은 블록체인에 지워지지 않게 남습니다. 누가 언제 무엇에 표를 던졌는지 투명하게 남는다는 뜻이지요. 디지털이 아직 낯선 분들께도, 이 투명함은 의외로 큰 안심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슬그머니 바뀌는 일은 없으니까요.

아홉에서 시작해 큰 숲으로

아홉 명의 작은 회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크라우니는 그다음을 생각합니다.

한 아홉 명 회사가 잘 자라면, 그와 손을 잡은 또 다른 아홉 명 회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동네 식당 한 곳이 이웃 동네로 퍼지듯이 말이에요. 그렇게 세 배씩, 한 걸음 한 걸음 늘어납니다.

9명 → 27명 → 81명 → 243명 → 729명 → 2,187명 → 6,561명.

숫자를 외우려 하지 마세요. 그림을 기억해 주세요. 좋은 작은 식당 하나가 입소문을 타고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하나의 작은 생각이 몇 해에 걸쳐 수천 곳의 식당망으로 자라나는 풍경 말입니다. 크라우니가 그리는 그림은 거대한 회사 하나가 아닙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가게들, 그 가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이루는 큰 숲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회사가 그 숲의 한 그루 나무가 됩니다.

왜 하필 세 배일까요. 너무 빨리 커지면 처음의 마음이 흩어지고, 너무 느리면 꿈마저 식어 버립니다. 세 배는 그 사이의 적당한 속도입니다. 사람의 호흡으로 자랄 수 있는 속도 말이지요.

선택의 연습장

아홉 명이 모인 첫 만남에는 잠깐, 즐거운 놀이가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게임이지요. 각자가 자신의 자원—시간이든, 돈이든, 마음이든—을 나눠 담는 놀이입니다. 일에 쓸 것, 배움에 쓸 것, 쉼에 쓸 것. 세 곳에만 나눌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한곳에만 몰아주면 나머지 둘은 금세 바닥납니다. 회사의 성장만 바라면 가정이 흔들리고, 배움만 고집하면 일이 멈추고, 쉼만 탐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요. 세 가지의 균형을 잘 맞춘 사람이 마지막에 가장 높은 점수를 얻습니다.

눈치채셨는지요. 이것은 바로 앞 장에서 우리가 매겨 본 '나의 균형 점수'를, 게임판 위에서 다시 한번 겪는 일입니다. 내 하루의 균형이 이번에는 회사의 살림이 되어 돌아온 것이지요. 게임판에서 익힌 그 균형 감각이, 머잖아 회의 탁자 앞에서 고스란히 쓰이게 됩니다. "이 나이에 회사라니?" 싶은 그 자리에서,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한 박자 미뤄 둘 줄 아는 사람이 가장 단단한 결정을 내리는 법이니까요.

아홉 명의 첫 만남

시작은 이렇게 합니다.

아홉 명이 둘러앉습니다. 아무도 "회장님", "상무님" 하고 부르지 않습니다. 한 분은 일을 앞장서 끌어가는 리더일 뿐이고, 나머지 여덟은 그 팀의 일원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재주를 꺼내 놓습니다. 한 분은 고객과 마음을 나누고, 한 분은 손으로 만드는 일을 잘하고, 한 분은 숫자를 야무지게 맞추고, 또 한 분은 흩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모읍니다. 그 아홉 가지 재주가 모여 하나의 회사를 이룹니다.

부를 받았으니 자금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습니다. 12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즌 1의 만기는 2038년 9월 30일. 12년은 사람이 천천히 무언가를 일굴 수 있는 시간입니다. 처음의 서툰 제품을 고쳐 가면서,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아홉 명이 함께 자라갑니다.

그렇게 매주 한 번씩 모여, 이번 주는 무엇을 했고 다음 주는 무엇을 할 것이며 지금 가장 고민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나눕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자라납니다.

어쩌면 작은 변화는

저는 이것을 거창한 사업 혁명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신문에 날 만한 '스타트업 성공담'도 아닙니다. 다만 아홉 명이 한 발을 내딛는 그 순간이, 어쩌면 여러분의 삶을 조용히 바꾸는 출발점이 될 거라고는 진심으로 믿습니다.

아무 담보도 없이, 나이 제한도 없이, 이미 가진 부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고, 그 정직함이 존중받는다는 것. 작은 시작이 큰 숲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그것이 제가 여러분께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오늘의 점검

아홉 명이 한 팀이 되려면, 먼저 여러분 안에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이 자라야 합니다.

〔오늘의 점검〕 지금 여러분 곁에서 함께할 여덟 분을 그려 볼 수 있으신가요. 가족일 수도, 이웃일 수도, 이미 알고 지내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완벽한 전문가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자라날 수 있는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그중 한 분의 얼굴을 떠올렸다면, 오늘 그분께 안부 한마디를 건네 보세요. 모든 큰 숲도 첫 한 그루에서 시작되니까요.

자, 이제 우리는 아홉 명이 모여 회사가 서고, 부가 자금으로 바뀐다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금에는 왜 이자의 무게가 얹히지 않을까요—다음 장 '무이자 크라우니원'에서, 갚을 걱정 없이 굴러가는 그 돈의 비밀을 함께 열어 보겠습니다.


옴 · CHAPTER 08

무이자 크라우니원

앞 장에서 우리는 아홉 명의 회사를 함께 그려보았습니다. 혼자 짊어졌으면 무너졌을 짐을, 아홉이 어깨를 나누니 거뜬해지더라는 이야기였지요. 오늘은 그 어깨동무 위에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그 아홉이 모은 신뢰를 밑천 삼아, 세상과 통하는 진짜 돈을 손에 쥐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살면서 "이자" 두 글자만큼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말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에 가면 이자, 대출을 받으면 이자, 심지어 남에게 돈을 빌려줘도 이자. 돈이라는 녀석의 뒤에는 늘 수수료라는 그림자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것만 같지요. 평생 살림을 꾸려오신 분일수록 이 그림자가 얼마나 무거운지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크라우니월드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묻습니다. "정말, 돈을 빌려줄 때마다 반드시 이자를 떼야만 할까?" 이 어린아이 같은 물음에서 시작된 것이 오늘 들려드릴 시즌1의 무이자 크라우니원입니다.

담보는 있고, 이자는 없다

앞에서 우리는 크라우니원의 기본을 익혔습니다. 1 크라우니원 = 1 미국 달러, 담장 밖 세상 어디서나 통하는 든든한 돈이라고요. 그런데 이 돈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지까지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그 비밀의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크라우니원는 크라우니뱅크에서 나옵니다. 다만 허공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가진 크라우니라는 부를 담보로 맡기면, 그 담보 위에서 비로소 크라우니원가 발행됩니다. "담보가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의 첫 번째 못입니다.

금을 금고에 넣고 그만큼 금화를 찍어내던 옛 은행의 방식을 떠올려 보세요. 곳간에 실물이 든든히 들어 있으니 그 금화는 진짜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크라우니뱅크도 꼭 그렇습니다. 담보가 충분하고 그 비율이 건전하면, 거기서 나온 크라우니원는 실제로 가치를 지닙니다.

여기서 바로 "무이자"라는 약속이 들어옵니다.

보통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빌린 돈 + 이자"를 갚아야 합니다. 100만 원을 1년에 5% 이자로 빌렸다면 105만 원을 돌려줘야 하지요. 하지만 시즌1 크라우니뱅크의 무이자 달러는 다릅니다. 여러분이 맡긴 크라우니가 담보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동안, 거기서 발행된 크라우니원에는 이자가 한 푼도 붙지 않습니다. 빌린 돈 그 자체만 맞추면 된다는 뜻이지요. 담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으니, 시간값을 따로 받지 않아도 신용이 무너지지 않는 겁니다.

〔오늘의 점검〕 담보와 이자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담보가 든든해야 이자 없이도 안심할 수 있다." 이 한 줄을 마음 한구석에 적어두세요.

왜 하필 1/729일까

"보유한 크라우니 가치의 1/729만큼 발행한다." 이 729라는 숫자를 처음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갸웃하십니다. 왜 하필 729일까요?

숫자만 따지면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6억 2천만 크라우니를 담보로 맡기면, 크라우니뱅크는 거기에 1/729를 곱한 약 85만 크라우니원를 무이자로 발행해 드립니다. 작아 보이는 비율이지만, 큰 부를 가진 분에게는 제법 묵직한 금액으로 불어나지요.

729라는 숫자 자체는 크라우니월드의 셈법, 그러니까 3을 거듭 곱해 나가는 '3진 기수'와 맞물려 있습니다. 깊이 파고들 일은 없어요. 다만 그 숫자 뒤에 숨은 마음만은 꼭 새겨두시면 좋겠습니다. "담보는 넉넉하게, 발행은 신중하게."

흔한 은행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금고에 금이 1억 원어치 있으면, 은행은 그 금의 열 배 백 배에 달하는 신용 대출을 시장에 풀어냅니다. 실물보다 훨씬 많은 돈이 떠돌게 되고, 거기에 이자까지 얹지요. 살림하는 사람 눈에는 어쩐지 위태로워 보이는 셈법입니다.

크라우니월드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담보의 1/729만 발행한다는 것은 "담보에 비해 한껏 보수적으로, 곳간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만 화폐를 낸다"는 약속입니다. 그렇게 비율을 철저히 지키기에, 이자 없이도 신용을 잃지 않는 것이지요. 게다가 시스템은 영리하게 빗장도 하나 더 걸어두었습니다. 담보로 맡긴 전체 금액과 재단 대출의 세 배, 이 둘 중 더 작은 쪽까지만 발행하도록 못 박은 거예요. 저수조에 넘침 구멍을 뚫어 물이 함부로 차오르지 않게 하듯, 곳간이 바닥날 일이 없게 지켜주는 안전장치입니다.

담보가 줄어들면 어떻게 되나

여러분이 맡긴 크라우니는 어디에 있을까요? 크라우니뱅크의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됩니다. 은행에 맡긴 돈이 지하 금고에 잠들어 있듯이 말이지요.

이제 살림에 꼭 필요한 규칙 하나를 배울 차례입니다. 만약 담보로 맡긴 크라우니의 가치가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크라우니 6억을 담보로 맡기고 약 82만 달러를 발행받았다고 합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이런저런 사정으로 담보 가치가 4억으로 줄어들었어요. 그러면 크라우니뱅크는 한도를 다시 셈합니다. 4억에 1/729를 곱하면 한도가 약 55만 달러로 내려앉지요. 이미 받은 82만 달러 가운데 55만 달러까지는 그대로 두되, 나머지 27만 달러어치는 더 이상 새로 발행할 수 없는 자리가 됩니다. 여기서 여러분 앞에 두 갈래 길이 놓입니다.

첫째, 담보를 더 보탠다. 크라우니를 더 마련해 담보에 얹으면 한도가 다시 올라갑니다.

둘째, 발행받은 달러를 일부 돌려준다. 27만 달러어치를 크라우니뱅크에 반납하면 비율이 다시 가지런히 맞아떨어집니다.

어느 쪽을 고르시든 온전히 여러분의 결정이고, 누구도 등을 떠밀지 않습니다. 다만 비율이 깨진 채로 두면 새 크라우니원를 더는 발행받을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담보"라는 두 글자의 무게입니다.

〔오늘의 점검〕 담보를 관리한다는 것은 곧 내 신용을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담보가 든든할수록 무이자의 신뢰도 함께 자랍니다.

일찍 심은 씨앗이 누리는 축복

여기서 참 흥미로운 설계 하나를 귀띔해 드리겠습니다.

시즌1에서는 이 비율이 "1/729"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에요. 시즌2가 오고 시즌3가 열리면서, 이 발행 비율은 차차 더 넉넉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더 부지런히 일하고 크라우니 생태계가 더 자라날수록, 화폐를 떠받치는 신뢰도 저절로 두터워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지금 시즌1에 들어오신 분들은 담보 기준이 조금 더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일찍 들어온 사람만 누리는 축복도 함께 손에 쥡니다.

저는 이것을 늘 "씨앗과 열매"에 빗댑니다. 맨 처음 씨앗을 심는 사람은 걱정도 크고 기다림도 깁니다. 흙을 고르고 물을 주며 싹이 트기를 마음 졸이지요. 그러나 그 나무가 자라 가지를 뻗으면, 나중에 맺히는 열매는 더 크고 더 많습니다. 시즌1에 6억 크라우니로 들어오신 여러분은, 훗날 시즌2가 열릴 무렵 같은 담보로 훨씬 더 많은 달러를 발행받을 기회를 품게 됩니다. 오늘의 신중함이 내일의 넉넉함으로 돌아오는 셈이지요.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지금 까다롭게 느껴지는 그 기준이, 실은 일찍 자리 잡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너른 자리랍니다.

무이자라는 약속이 지켜지는 까닭

그렇다면 크라우니월드는 어째서 이자를 안 붙이기로 했을까요? 이건 셈법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입니다.

세상의 금융은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원칙 위에 서 있습니다. 1년 뒤에 받을 100만 원과 지금 손에 쥔 100만 원은 값이 다르다는 논리지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시간에는 분명 값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크라우니월드는 그 곁에 다른 기둥을 하나 세웠습니다. "믿음이 곧 신용이다." 담보가 충분하면, 시간값을 따로 떼지 않아도 신용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치 금가게가 금을 맡아 보관하면서, 그 금 자체에 이자를 매기는 대신 보관의 정성만 들이는 것처럼요.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담보 비율(1/729)이 보수적일수록, 무이자도 안전해진다. 은행이 금을 금고에 가득 채워두고 금화를 조금만 찍으면, 그 금화는 흔들림 없이 가치가 있습니다. 반대로 빌려준 돈이 담보보다 많아지면 은행도 위태로워지고, 그 위태로움을 메우려 이자가 붙는 거예요. 그러니 무이자는 무모한 약속이 아닙니다. 신중한 담보 위에서만 피어나는, 잘 계산된 너그러움입니다.

그만두고 싶을 때

담보로 맡긴 크라우니원가 이제 필요 없어졌다면 어떻게 할까요? 걱정 마세요. 여러분은 언제든 그 달러를 크라우니뱅크에 반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맡겨두었던 크라우니가 고스란히 여러분 손으로 돌아옵니다. 금가게에 맡겨둔 패물을 찾아가듯, 그 과정은 깔끔하고 정직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도 이자는 붙지 않습니다. "무이자"라는 약속은 담보를 맡기는 첫걸음부터 달러를 돌려받는 마지막 걸음까지, 처음과 끝이 한결같습니다.

여기에 살림하는 분이 반길 만한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달러를 반납하고 담보를 되찾을 무렵, 여러분의 크라우니 담보 자체는 값이 올라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앞 장에서 배웠듯, 크라우니뱅크는 해마다 9월 30일을 기준으로 1 크라우니를 약 7% 오른 값에 거래하도록 권하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은 "처음 맡긴 담보 + 세월이 얹어준 상승분"을 함께 돌려받게 됩니다. 가만히 쥐고만 있어도 불어나는 부, 그것이 크라우니라는 부의 성질이지요. 이 또한 여러분의 신중한 준비가 빚어낸 과실입니다.

〔오늘의 점검〕 담보는 그저 돈이 아니라 신용의 담장입니다. 그 담장을 더 높일지, 거두어들일지는 오롯이 여러분의 결정입니다.

현실과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기서 한 가지 솔직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현실의 금융 세계는 이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진짜 은행에 가서 "담보가 100%면 이자도 0%냐"고 물으면, 그렇다는 시원한 답을 듣기 어렵지요. 담보 비율에 신용 점수, 경기 상황,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까지 — 수십 개의 변수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크라우니월드의 무이자 시스템은 "맑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규칙이 또렷하고 변수가 단출합니다. 오직 담보와 비율, 그리고 신뢰. 이 셋뿐이에요.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맑음이 늘 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크라우니월드는 현실보다 먼저 발을 뗄 수 있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여기서 맑은 규칙을 직접 살아보신다면, 훗날 더 크고 복잡한 세상과 마주했을 때 여러분은 금융을 있는 그대로, 두려움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실 겁니다. 이것이 작은 공동체가 먼저 길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오늘의 실천 하나

오늘은 아주 작은 것 하나만 직접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종이 한 장을 펴고 가운데에 선을 그어 두 칸을 만드세요. 왼쪽 칸 위에는 "담보 — 내가 든든히 쌓아두는 것", 오른쪽 칸 위에는 "발행 — 내가 빌려 쓰는 것"이라고 적습니다. 그리고 내 살림에서 '담보'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지, '빌려 쓰는 것'은 무엇인지 떠오르는 대로 한 줄씩 적어보세요. 꼭 크라우니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집, 적금, 신용, 사람과의 신뢰 — 무엇이든요.

이 한 장을 적어보시면, 무이자의 비밀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내려앉을 겁니다. 든든한 담보가 먼저 있어야, 이자 없는 너그러움도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요.

다음 장으로

무이자 크라우니원는 결국 "담보로 신뢰를 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크라우니원 자체는 세상과 통하는 화폐지만, 그 달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뿌리는 여러분의 크라우니라는 진짜 부였지요. 신뢰가 든든하면 이자라는 그림자도 사라진다는 것 — 오늘 이 한 가지만 손에 쥐고 가셔도 충분합니다.

자, 이제 우리는 돈을 어떻게 얻느냐를 넘어, 어떻게 쓰느냐라는 더 깊은 물음 앞에 섭니다. 다음 장 "달란트, 잘 쓰면 갚지 않아도"에서는 빌린 돈이 쓰임에 따라 어떻게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되기도 하고, 갚지 않아도 좋은 선물이 되기도 하는지를 — 그리고 그 갈림길에서 여러분의 청지기 정신이 어떤 열쇠가 되는지를 —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옴 · CHAPTER 09

달란트, 잘 쓰면 갚지 않아도

앞 장에서 우리는 무이자 크라우니원를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담보를 맡기면 이자 없이 쓸 수 있는 돈, "빌린 돈 그 자체만 갚으면 되는" 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 작은 의문이 남습니다. 저도 처음 이 설계를 세상에 내놓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홉 명이 모여 회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31억 CRY라는 부(웰스)를 나눠 받습니다. 그 부를 담보 삼아 회사 살림에 쓸 크라우니원를 운용하지요. 이제 여러분은 그 자금으로 가게를 내고, 사람을 들이고, 작은 꿈을 현실로 옮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분이 조심스레 손을 듭니다.

"선생님, 그럼 이 부는 빌려 받은 건가요? 언젠가 다 갚아야 하나요?"

여러분, 저는 이 질문이 참 솔직하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받으면 갚는 것이 상식이니까요. 평생을 그 상식 속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물음입니다. 하지만 크라우니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다른 생각이, 실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선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청지기, 맡겨지고 나누는 것

혹시 '달란트' 이야기를 들어 보셨는지요. 오래된 성서 속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먼 길을 떠나기 전, 종들에게 자기 재산을 맡깁니다.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 또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지요. 시간이 흘러 주인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내가 맡긴 것으로 너는 무엇을 했느냐." 잘 불린 종은 칭찬을 받고, 겁이 나 땅에 묻어 둔 종은 책망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31억 CRY가 바로 그 달란트입니다. 빌려 간 돈이 아니라 맡겨진 것입니다. 이 둘의 차이가 느껴지시는지요.

빌린 돈에는 '갚아야 한다'는 의무가 먼저 따라붙습니다. 기한이 있고, 이자가 있으며, 갚지 못하면 탈이 납니다. 등에 짐을 진 채 출발하는 셈이지요. 하지만 맡겨진 것은 다릅니다. 주인은 "갚아라" 하고 닦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이걸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 네가 세상에 무엇을 더했느냐." 잘 썼으면 칭찬하고, 묻어 두었으면 안타까워할 뿐, 결코 원금을 토해 내라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크라우니가 부를 건네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빚쟁이로 보지 않습니다. 맡은 것을 정성껏 굴리는 사람, 옛말로 하면 청지기로 봅니다. 주인의 곳간을 제 것처럼 아끼되, 제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 말입니다.

가게, 가족, 나눔 — 잘 쓰는 방법

그렇다면 '잘 쓴다'는 게 대체 무엇일까요. 거창할 것 같지만, 크라우니에서 말하는 잘 씀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첫째, 여러분의 가게를 제대로 끌어가는 것입니다. 식당이라면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정성껏 짓고, 손기술을 다루는 분이라면 그 솜씨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피아노를 가르치는 분이라면 아이들이 그 계절의 곡을 또박또박 칠 수 있게 돕는 일. 자기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영원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한결같은 성실, 그것이 첫 번째 잘 씀입니다.

둘째, 이웃과 동네를 챙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는 혼자 만들어 낸 게 아닙니다. 아홉 명이 함께 모인 결과이고, 그 아홉 명을 품어 준 동네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니 거둔 이익의 한 자락을 다시 동네로 흘려보내는 일은 빚을 갚는 일이 아니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살피고, 좋은 배움이 더 많은 아이에게 닿도록 돕고, 작은 정성을 건네는 일. 이 작은 흐름이 동네를 적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 두고 싶습니다. 이 나눔은 꼭 큰돈이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크라우니에는 마음을 담아 건네는 작은 자산, 맘(MOM)이 있지요. "좋아요" 한 번, "고맙습니다" 한마디만큼의 작은 표현 말입니다. 이웃에게 건네는 그 작은 맘 하나하나가 모여, 어느새 동네의 온기가 됩니다. 나눔은 액수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이 둘 — 자기 일을 잘하고, 이웃을 챙기는 일 — 을 해 나가면, 크라우니는 "다 갚았니?" 하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잘 쓰고 계시군요. 계속하세요."

〔오늘의 점검〕 당신이 받을 부가 '빌린 것'이 아니라 '맡겨진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으로 무엇을 길러 내고 싶으신가요. 가게인가요, 솜씨인가요, 사람과의 관계인가요.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자락을 어떤 이웃에게 흘려보내고 싶으신가요. 종이 한 귀퉁이에 가만히 적어 보세요.

무이자, 그리고 다음 세대로

그래도 궁금하실 겁니다. "그럼 이 부는 영원히 제 것인가요?"

아, 그건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지요.

여러분이 받은 31억 CRY의 만기는 2038년 9월 30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뒤이지요. 그 시점이 되면 이 부는 회수되어, 새로 들어오는 아홉 명 — 시즌2의 밑거름이 됩니다. 영원한 소유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곱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12년 동안 여러분은 무이자입니다. 앞 장에서 보셨듯, 담보를 맡기고 운용하는 크라우니원에 매달 이자가 붙지 않습니다. 가게를 꾸리며 번 돈을 고스란히 사업에 쓸 수 있다는 뜻이지요. 비용이 들지 않는 자본이다 보니, 여러분의 회사는 처음부터 작은 이윤도 꺼뜨리지 않습니다. "이달엔 이자만 갚고 나면 살림이 빠듯하겠네" 하는 한숨이 없는 출발입니다.

게다가 맡겨 둔 크라우니 자체는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크라우니뱅크는 해마다 9월 30일을 기준으로 크라우니의 값을 약 7%씩 높여 거래하길 권합니다. 그러니 12년이 지나 만기에 이르렀을 때, 여러분이 넘겨주는 것은 처음 받은 그대로가 아니라 차곡차곡 자라난 부입니다. 다음 아홉 명에게 더 든든한 씨앗을 물려주게 되는 것이지요.

그 12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좋은 가게 하나는 그 시간이면 동네의 '당연한 풍경'이 됩니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이 "저 집은 늘 거기 있지" 하고 여기게 될 즈음, 여러분은 이미 그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갚느라 졸이는 12년이 아니라, 키우며 사랑하게 되는 12년 말입니다.

셈이 아니라 신뢰

여기까지 들으시고 이런 의문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크라우니가 정말 12년 뒤에 약속대로 다음 세대에 넘길까요? 슬그머니 말이 바뀌지는 않을까요?"

여러분, 이것은 셈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입니다. 한번 한 약속을 지키는 것 — 그것이 크라우니가 세상에 내놓은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2038년에 만기가 오면, 새로운 아홉 명이 들어옵니다. 지금 여러분이 받은 그대로, 그들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또 12년 뒤 다음 아홉 명에게 넘기겠지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기회의 사다리 — 이것이 제가 그리는 세상입니다.

그 신뢰가 허공의 약속에 그치지 않도록, 모든 것은 블록체인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장부에 남습니다. 누가 언제 얼마를 받았는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넘겼는지. 모두 투명하게 기록되어, 슬그머니 바꿀 수도 없고 시치미를 뗄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속을 염려도 없고, 크라우니가 거짓말할 이유도 없는 셈이지요. 디지털이 아직 낯선 분께도, 이 투명함은 의외로 큰 안심이 됩니다.

참,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 이 12년과 7%의 셈, 그리고 시즌의 흐름은 아직 활짝 펼쳐지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시즌2가 오고 그 너머가 열릴 때, 부의 사다리는 지금 그린 그림보다 한 칸씩 더 높이 놓일 것입니다. 다만 그날의 자세한 셈은 그날 정직하게 펼쳐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붙들 것은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떠받치는 약속입니다.

한 걸음

오늘은 한 가지만 마음에 담아 가시길 바랍니다.

돈은 두 가지 말을 합니다. 하나는 "갚아라"이고, 다른 하나는 "잘 써라"입니다. 우리는 평생 앞엣것만 들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가장 자유롭고 또 가장 책임 있게 살아간 사람들은, 늘 뒤엣것을 듣고 자란 청지기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실천은 이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맡겨진 것'이 무엇인지 하나만 떠올려 보세요. 꼭 큰 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가진 솜씨 하나, 시간 한 자락,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그것을 "갚아야 할 빚"이 아니라 "잘 써야 할 달란트"로 바꿔 불러 보세요. 그 한 번의 바꿔 부름에서, 삶을 다시 세우는 마음이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그 오래된 청지기의 전통을 잇는 한 사람이 되시기를, 저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제 우리 앞에 한층 깊은 질문이 놓입니다. 돈과 가게, 결정과 나눔의 셈법은 어느 정도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켜지는 더 깊은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면 좋은 것일까요. 다음 장에서는 그 물음을, 문화와 신앙 그리고 '셋'의 신비라는 언어로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옴 · CHAPTER 10

문화와 신앙, 3의 신비

달란트를 잘 맡아 썼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잘 쓴 다음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지요. "나는 어쩌다 그렇게 쓰게 되었을까." 돈을 어떻게 다루는지,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 비치고, 그 신앙을 따라가 보면 그가 몸담은 공동체의 문화가 보입니다. 저는 이 장에서 여러분과, 그 신앙과 문화가 어떻게 한 뿌리에서 자라나 우리 일상에 조용히 열매를 맺는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셋, 시작이며 완성

오늘 아침, 저는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 그리고 김치 한 보시기를 앞에 두고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셋 중 하나만 빠져도 어쩐지 한 끼 같지가 않더군요. 가만히 보니 우리 삶에는 이렇게 '셋'이 참 많습니다. 밥과 국과 반찬이 모여야 비로소 한 끼 밥상이 되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이어져야 한 사람의 인생이 됩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문명에서 셋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움직일 때 일이 이루어지고, 동서와 고금을 가리지 않고 셋은 완전함과 균형, 신비의 부호로 여겨졌지요. 제가 만든 크라우니의 핵심인 4상 균형 3진도 바로 이 오래된 직관 위에 세웠습니다. 텃밭에 씨앗 하나를 묻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하늘의 볕과 땅의 양분, 그리고 사람의 정성이 함께 들어가야 싹이 틉니다. 하늘 것만으로도, 땅 것만으로도, 사람의 손길만으로도 안 됩니다. 그 셋이 손을 맞잡는 순간, 비로소 새 생명이 흙을 밀고 올라옵니다.

우리 전통의 빛깔에도 셋이 숨어 있습니다. 청색과 홍색과 황색, 이 세 색이 어우러져 한국만의 고운 멋을 빚어냅니다. 홍어와 돼지고기와 묵은지가 한자리에 모여야 비로소 제맛을 내는 '삼합'처럼, 셋은 우리 곳곳에서 조용히 균형과 완성을 일러 줍니다. 그것처럼 신앙과 문화도 따로 노는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밥상을 이루는 셋의 한 자리입니다. 개인의 안쪽 깊이와 공동체의 너비, 그리고 그 둘을 잇는 작은 선택들. 이 셋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빚어냅니다.

신앙의 뿌리, 문화의 가지

크라우니의 세계관은 네 상(相)이 균형을 이루며 한 사회를 살아 숨 쉬게 합니다. 티는 기업과 기술과 과학으로 드러나는 자리(+1), 타는 정부와 국방과 정책으로 맞서며 잇는 자리(−1)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옴이 있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보통의 자리, 곧 기다림과 중심을 지킵니다. 마지막으로 음은 그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것들, 예외와 여백과 빈자리를 품습니다. 이 네 상을 저는 티·옴·타·음이라 부릅니다.

그 가운데 신앙과 문화는 음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나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필 음의 자리일까요. 신앙과 문화란 본디 셋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것들, 숫자로 다 셀 수 없는 마음과 정성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개인의 안쪽 깊이를 다룬다면, 문화는 공동체의 너비를 품습니다. 깊이와 너비, 결국 둘은 한 그루 나무의 뿌리와 가지입니다.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려야 가지에서 열매가 맺히지요. 한 사람이 신앙 속에서 얻은 양분은, 그가 문화 속에서 나누는 말과 행동으로 익어 갑니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웃음이 되고,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그 동네의 분위기가 되는 식입니다. 이렇게 신앙과 문화는 한 뿌리에서 자라난 두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이 뿌리에 물을 줄 수 있을까요.

책을 읽듯 신앙을 살아가기

신앙의 시작은 종종 작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됩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하는 질문들 말입니다. 앞 장에서 함께 나눈 달란트도 결국 "이 선물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마음의 문제였지요. 내가 가진 것이 본디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이라는 깨달음, 이것이 신앙의 밑바탕이 됩니다.

그 깨달음을 키워 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소박합니다. 한국 교회의 오랜 전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경 필사'였습니다. 글 한 자 한 자를 손으로 옮겨 적을 때, 그 말씀이 손가락 끝에서 가슴까지 천천히 닿는 경험이 있습니다. 그저 눈으로 읽는 것과 손으로 옮기는 것은 사뭇 다릅니다. 마치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길을 걷듯, 우리도 손으로 말씀을 더듬으며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이런 깊이 있는 신앙 경험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 마침내 한 공동체의 문화를 빚어냅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그 얼굴에 평온을 가져오면, 그것을 곁에서 본 이웃은 자연스레 그 얼굴을 따라갑니다. 정책과 제도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마음이 마음을 부르는 일이 거기서 일어납니다.

셋의 합의, 우리의 선택

신앙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는 어떤 곳일까요. 무언가를 정할 때 세 갈래의 목소리가 고르게 들리는 곳입니다. 한국 교회의 장로회 문화도 그렇지 않습니까. 목사님의 영적 리더십, 장로님의 현실적 판단, 권사님의 섬기는 마음. 이 셋이 함께 모여 한 교회의 앞날을 헤아립니다. 어느 한 분의 의견이 절대적이지 않을 때, 결정은 훨씬 너그럽고 지혜로워집니다.

이것은 교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할머니의 삶의 지혜와 부모의 현실적 판단, 그리고 자녀의 새로운 시각이 서로를 존중하며 집안일을 함께 헤아릴 때, 그 가정 또한 신앙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이 됩니다. 우리 전통에서는 이를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일을 정한다"고 했지요. 한 사람의 확신보다 두 사람의 합의가 든든하고, 둘의 합의보다 셋이 마음을 모은 합의가 훨씬 단단하다는 뜻입니다.

신앙과 문화가 살아 있는 공동체의 비결은, 실은 뜻밖에도 단순하더군요. '지도자가 화내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따뜻함이 곧 청년들의 발걸음을 불러들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권위와 관계와 돌봄, 이 세 축이 균형을 이룰 때 공동체는 한결 건강하게 자랍니다. 엄한 말씀도 필요하고 질서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따뜻한 마음의 관계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그곳에서 생명이 자라고 사랑이 흐릅니다.

〔오늘의 점검〕

작은 선택들이 문화를 짓는다

신앙과 문화를 무슨 거창한 것으로 여기는 건 우리의 작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사실, 우리가 매일 내리는 자그마한 선택들이 모인 것입니다.

친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당신이 가만히 건네는 한 통의 메시지. 그것이 문화입니다. 회사에서 누군가 실수했을 때, 책망 대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손을 내미는 일. 그것이 신앙의 실천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이웃에게 인사를 먼저 건네는 것, 지난 모임에서 다친 데는 없는지 물어주는 것.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한 마을의 분위기를 만듭니다.

돈을 잘 쓰는 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크라우니에는 마음을 나누는 작은 수단이 있습니다. '맘(MOM)'은 마치 "좋아요"나 작은 하트처럼, 고마운 마음을 가볍게 전하는 정서의 단위입니다. 그보다 조금 더 든든하게 누군가를 거들고 싶을 때는 '포네(FONE)'로 마음을 자산처럼 단단히 실어 보낼 수 있지요. 내가 벌어들인 것의 한 자락을 나누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남을 위해 먼저 쓰는 일. 맘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포네로 누군가의 짐을 거들고, 내 시간을 다른 이의 기쁨을 위해 쓸 때.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금씩 더 따뜻하게 데웁니다.

이 권을 걸어오며 우리가 함께 본 부의 사다리를 떠올려 보십시오. 날마다 주고받는 크라우니원는 교환을 위한 화폐였고, 맘과 포네는 마음과 가치를 담아 두는 자산이었으며, 그 위에 크라우니라는 부가 천천히 영글어 갔습니다. 언젠가 그 너머로 한선과 선호라는 더 너른 부의 들판이 열릴 날도 올 것입니다. 다만 그 들판은 앞으로 차차 펼쳐질 내일의 이야기이니, 오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입니다. 그 모든 사다리의 맨 위 칸조차도, 끝내는 돈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돌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셋으로 거두며

이 권을 함께 걸어오면서, 우리는 인생을 다시 세우는 방법들을 하나씩 나누어 왔습니다. 8과 8과 8의 균형으로 하루를 정직하게 살고, 아홉 명의 동료와 더불어 일을 일구고, 맡겨진 달란트를 잘 써서 그렇게 얻은 것을 다시 나누는 일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의 한복판에는 언제나 '셋'이 있었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깊이요, 문화는 공동체의 너비입니다. 그 둘을 잇는 것은 바로 당신의 선택입니다. 당신이 오늘 누군가에게 건네는 한마디, 나누는 한 웃음, 내미는 한 번의 손길. 그것이 신앙이고, 그것이 문화를 짓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밥상을 차릴 때 잠깐만 미소 지어 주십시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반찬 한 가지. 이 셋이 제자리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밥을 먹는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과 문화와 당신의 선택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이 옆 사람의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이 또 다른 선택을 낳는 세상. 그 세상을 함께 차려 가시기를, 김프린이 따뜻한 마음으로 청합니다.

〔오늘의 한 가지 실천〕 오늘 하루, 마음에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짧은 안부 한마디를 먼저 건네 보십시오. "잘 지내시지요? 문득 생각났습니다." 이 한 문장이 당신에게서 시작되는 가장 작은 문화의 씨앗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그 마음을 나누는 두 가지 수단, 맘과 포네로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지 더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신앙과 문화가 일상의 작은 거래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함께 보시지요.


옴 · CHAPTER 11

맘과 포네로 마음을 나누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흙은 가라앉고 물은 맑아지듯이, 저도 한 가지 생각을 며칠씩 가만히 두고 기다릴 때가 많습니다. 앞 장에서는 신앙과 문화가 한 뿌리에서 자란 두 열매라는 큰 틀을 말씀드렸지요. 셋이 모여야 한 끼 밥상이 된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이제 그 틀을 안고, 조금 더 우리의 일상으로 내려와 보려 합니다.

당신의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돈이 흘러가면서 어떻게 마음까지 함께 전해지는지. 저는 거기에 우리의 진짜 삶이 있다고 믿습니다.

혹시 계모임을 해 보신 적 있으세요? 열 명이 모여 한 달에 한 번씩 십만 원씩 붓고, 돌아가며 곗돈을 타는 그 모임 말입니다. 계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누군가는 밀린 가게 세를 내고 웃음이 터지고, 누군가는 짊어진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고, 누군가는 새로 시작할 용기를 냅니다. 거기서는 돈이 그저 돈이 아닙니다. 신뢰로 흘러가는 물길이고, 사랑을 실어 나르는 그릇입니다.

제가 설계한 크라우니의 경제도 그와 닮았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더 깊습니다.

화폐는 겹겹이 있어요

여러분의 지갑을 한번 열어 보세요. 안에는 현금이 있고, 체크카드가 있고, 어쩌면 어느 가게 상품권도 한 장 끼어 있을 겁니다. 저마다 역할이 다르지요. 라면을 사 들고 나올 땐 현금이 편하지만, 아이 학용품을 사러 갈 땐 그 문구점 상품권이 더 쓸모 있습니다.

제가 크라우니 경제를 세 칸으로 나눈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화폐는 겹겹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머니, 에셋, 웰스 세 층으로 쌓았습니다.

맨 아래층이 머니(Money)입니다. 이것은 일상의 화폐예요. 저는 이걸 크라우니원라고 부릅니다. 약 일 달러쯤 되는, 그냥 거래의 언어지요. 물건을 사고, 밥을 먹고, 버스를 탈 때 쓰는 그것.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누구나 믿고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손에 쥔 현금처럼요.

그 위층이 에셋(Asset)입니다. 에셋은 '자산'이라는 뜻인데, 머니보다 조금 더 무게가 있습니다. 매달 쓰고 비우는 현금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 두는 저축통장에 가깝지요. 이 에셋 칸에 제가 두 가지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하나는 포네(FONE), 또 하나는 맘(MOM)입니다.

이 두 가지가 오늘 제가 가장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포네는 약 일 달러 수준의 가치를 지닌, 자산처럼 행동하는 화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시간이 지나도 슬금슬금 깎여나가지 않아요. 물가가 오르면 포네도 함께 따라 오릅니다. 집 한 채를 사 두면 세월이 흘러도 그 집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듯이요. 포네는 여러분 인생의 바닥에 깔아 두는 '안정적인 자산'입니다. 든든한 은행통장 같은 거지요.

맘은 그보다 훨씬 작습니다. 약 일 센트 수준이에요. 정말 작은 단위입니다. 카페에서 한 잔 마실 때마다 찍어 주는 도장 한 개처럼요. 하지만 맘이 하는 일은 포네와 전혀 다릅니다. 맘은 '좋아요' 버튼처럼 일합니다. 누군가의 글에 마음이 움직일 때, 이웃에게 고마울 때, 아주 작은 마음 한 조각을 건네고 싶을 때 맘을 주고받습니다. 식당에서 슬쩍 놓고 나오는 팁처럼요.

〔오늘의 점검〕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맘'을 나누어 오셨나요? 누군가에게 분명 고마웠고 입으로는 인사도 건넸는데, 그 마음이 어디에도 남지 않고 그냥 흩어져 버린 적은 없으셨나요?

안정에서 감정으로

포네와 맘은 같은 에셋 칸에 나란히 들어 있어도, 하는 일이 전혀 다릅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형제 같지만 성격은 정반대지요.

포네는 '내 미래'를 위해 모으는 것입니다. 아이 대학 등록금, 노후에 기댈 저축, 부모님을 모셔야 할 날을 위한 준비금 같은 것들이 포네입니다. 포네는 개인의 자산이에요. 내가 쌓은 것은 내 것이고, 내가 거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웃을 도우려 꺼내 쓸 수도 있지만, 포네를 쌓는 가장 큰 뜻은 '나와 내 가족의 안정'에 있습니다.

맘은 다릅니다. 맘은 '지금 여기, 이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게요. 할머니가 손주의 손을 가만히 잡을 때, 아직 어린 손주는 돈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은 또렷이 느낍니다. 세월이 흘러 손주가 자라 다른 누군가를 돌보게 될 때, 그 온기가 문득 떠오릅니다. 맘이 바로 그렇습니다. 돈 같으면서도 감정이고, 감정 같으면서도 기록입니다.

맘을 건네는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옆집 할머니가 심장 수술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나요. 예전 같으면 밥 한 끼를 지어 들고 가거나 과일 한 봉지를 사 들고 갔습니다. 그 마음을 이제 맘으로도 건넬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주니까요. "이 사람이 그때 나를 응원해 주었구나.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남습니다.

맘의 아름다운 점은, 팁처럼 작다는 데 있습니다. 일 센트짜리 동전을 여럿 모으듯, 우리가 매일 흘려보내던 '작은 감정의 표현'을 그러모아 담아낼 수 있어요. 이름난 사람의 큰 기부도 귀하지만, 평범한 이웃 열 명이 건네는 맘은 그보다 더 따뜻합니다. 거기엔 "너도 이 마음 알지?" 하는 말없는 끄덕임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건 아주 작은 데서부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쟁도, 평화도, 한 문명의 큰 전환도, 결국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결정 위에 차곡차곡 쌓인 것이라고요. 역사책에 큰 글씨로 적힌 사건도, 그 뿌리를 더듬어 보면 수백만의 사람이 '그날 아침 이웃에게 건넨 말 한마디'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맘의 경제는 바로 그 작은 마음을 눈에 보이게 만든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채 그냥 흩어진다고 여겼던 '그 작은 따뜻함'을 신뢰로 바꾸어, 누군가의 내일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지요.

제가 크라우니를 처음 설계하던 날, 가장 먼저 마음에 품은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큰돈을 벌게 해 주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일상에서 느끼는 그 '고립감'을 덜어 내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당신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요. 그 차이는 작아 보여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포네로 당신의 안정을 지키고, 맘으로 곁에 선 사람들과 감정의 끈을 묶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에셋 칸에 두 가지를 나란히 놓은 까닭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미리 귀띔해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머니와 에셋의 더 깊은 안쪽에는 '웰스(Wealth)', 즉 진짜 부의 층이 있습니다. 크라우니라는 부가 가장 깊은 자리에 있고, 그 너머로 한선과 선호라는 이름의 더 큰 부가 차례로 열리도록 설계해 두었지요. 다만 그 이야기는 아직 다 풀어 놓을 때가 아닙니다. 앞으로 세상이 한 걸음씩 자라며 천천히 열릴 미래의 문이니까요. 오늘은 우리 손에 가장 가까이 있는 맘과 포네까지만, 마음에 꼭 담아 두시면 됩니다.

〔오늘의 실천〕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고마움 한 마디를 건넬 때,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또렷한 기록으로 남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당신의 감정이 시스템에 눈금처럼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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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로 오늘을 살고, 에셋으로 마음과 안정을 쌓았으니, 이제 그 아래 가장 깊은 자리에 놓인 부의 칸으로 내려가 볼 차례입니다. 다음 장에서 화폐의 세 칸 — 머니·에셋·웰스가 어떻게 한 몸으로 이어지는지, 그 마지막 칸의 문을 함께 열어 보겠습니다.


옴 · CHAPTER 12

화폐의 세 칸 — 머니·에셋·웰스

앞 장에서 우리는 맘과 포네로 마음을 나누는 법을 함께 익혔습니다. 작은 맘 한 닢에 고마움을 실어 보내고, 포네 한 장에 "앞으로도 함께하자"는 약속을 담는 일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한 어르신이 제게 가만히 물으셨어요.

"선경 씨, 그러면 맘하고 포네하고 크라우니는 다 어디쯤에 있는 돈이오? 같은 지갑에 들어 있는 건 맞소?"

참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질문 하나만 시원하게 풀리면, 크라우니월드의 살림살이는 거의 다 손에 잡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그 지갑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돈을 세 칸으로 나눠 보는 일, 딱 그것만 하면 됩니다.

같은 돈이 아니라, 층을 이룬 돈

평생 살림을 꾸려오신 분이라면 이미 다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매일 장바구니에 들고 나가는 생활비와, 통장에 묶어 둔 목돈과, 세월이 흐를수록 값이 오르는 땅이나 패물을 절대 헷갈리지 않으니까요. 같은 '돈'이라도 쓰임이 다르고, 무게가 다르고, 머무는 자리가 다릅니다.

여러분이 처음 달란트를 받던 날을 떠올려 보세요. 손에 쥔 그 숫자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셨던지요. 그런데 그 숫자를 한 칸 한 칸 설명받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돈이란 사실 하나의 길이 아니라, 층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크라우니월드가 그려 온 경제는 알고 보면 무척 단순합니다. 세 개의 칸만 있으면 됩니다.

쓰는 돈(머니) → 모으는 돈(에셋) → 불어나는 부(웰스).

이 사다리 한 켜만 머릿속에 그려 두시면, 나머지는 술술 풀립니다. 우리가 그동안 본 것들이 모두 이 세 칸의 이야기였어요. 자, 맨 아래 칸부터 한 계단씩 올라가 보겠습니다.

맨 아래 칸 — 쓰는 돈, 머니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머니는 세상과 통하는 돈입니다. 장을 봐도 되고, 밥을 사 먹어도 되고, 택시를 타도 되는, 손에서 손으로 오가는 생활의 돈이지요. 크라우니월드에서는 이것을 크라우니원라고 부릅니다. 1 크라우니원는 1 미국 달러(USD)와 똑같은 값어치를 지닙니다. 지갑 속 우리 돈이 담장 밖 세상에서도 그대로 통한다는 뜻이에요. 환전 걱정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는 든든한 돈입니다.

그런데 이 화폐는 공중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배웠듯이, 여러분이 가진 부를 담보로 맡겨 둘 때 비로소 발행됩니다. 금을 금고에 넣고 금화를 찍어 내던 옛 은행의 방식과 꼭 같지요. 그리고 여기에 크라우니월드만의 따뜻한 규칙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담보가 든든하면, 이자가 없습니다.

매달 부담스러운 이자를 떼이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살림을 해 보신 분은 단번에 아실 거예요. 보통의 은행에서 500만 원을 빌리면 매달 이자를 물어 가며 사업을 키워야 합니다. 그 이자라는 무게가 사람을 늘 쫓기게 만들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아홉 명 회사가 함께 쥔 자금을 이자 부담 없이 쓸 수 있습니다. 그 돈 전부가 가게를 짓고, 손님을 맞고, 꿈을 현실로 빚는 데 고스란히 쓰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화폐의 첫 번째 칸입니다. 쓸 수 있는 돈.

중간 칸 — 모으는 돈, 에셋

하지만 쓰는 돈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습니다.

사업이 자라면서 임차료를 내고, 함께 일할 사람을 들이고, 새 물건을 들여놓게 됩니다. 그런데 날마다 달러로만 주고받기에는 어쩐지 마음이 다 담기지 않는 순간이 있어요. 이런 경우입니다.

"우리 팀원이 정말 애를 많이 썼는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그런데 달러로 주자니 어쩐지 빌려준 돈처럼, 거래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이 돼요."

바로 이때 나타나는 것이 에셋, 곧 모으는 돈입니다. 함부로 헐어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두는, 화폐와 부 사이에 자리한 자산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에셋에는 두 식구가 있습니다.

첫째는 포네(FONE) 입니다. 포네는 2,550원어치 값이 잘 떨어지지 않는, 통장 속 목돈 같은 든든한 자산화 화폐예요. 달러처럼 그냥 오가는 돈이 아니라 자산처럼 무게 있게 행동하지요. 좋은 일을 한 팀원에게 건네거나, 이웃과 신뢰를 나눌 때 포네를 씁니다. "앞으로도 함께 가자"는 약속이 담긴 돈이니까요.

둘째는 맘(MOM) 입니다. 맘은 약 25원 남짓한 아주 작은 단위예요. 마치 '좋아요'를 한 번 누르듯, 누군가의 행동에 마음 한 자락을 실어 보내는 돈입니다. 식당에서 밥을 맛있게 먹었을 때, 어려운 시간에 이웃이 곁을 지켜 줬을 때, 그 고마움을 맘이라는 작은 표현으로 건넵니다.

화폐와 자산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머니가 "거래"라면, 에셋은 "신뢰와 마음의 표현"입니다. 둘 다 값이 있고 둘 다 주고받을 수 있지만, 손에 쥐여 줄 때의 느낌이 다르지요. 같은 액수라도 포네 한 장을 건네는 것과 달러 한 장을 건네는 것의 의미가 다른 것처럼요.

이것이 화폐의 두 번째 칸입니다. 신뢰를 담은 돈.

맨 위 칸 — 불어나는 부, 웰스

이제 가장 높은 칸입니다.

웰스, 곧 부는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는 자리입니다. 당장 내일을 달러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면, 사람은 비로소 더 먼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내 가게를 잘 꾸리는 것도 소중하지만, 그다음은 무엇일까. 내가 거둔 것을 누구와 나눌까. 10년 뒤, 20년 뒤 우리 동네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물음이 마음에 자리 잡지요.

부의 한가운데에는 크라우니(CRY) 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맨 처음 받은 바로 그것입니다. 크라우니는 세 칸 중 가장 위, 세월이 흐를수록 값이 오르는 재산이에요. 좋은 땅을 오래 쥐고 있으면 값이 자라듯, 크라우니뱅크는 해마다 9월 30일을 기준으로 1 크라우니를 약 7% 오른 값으로 거래하도록 권합니다. 가만히 쥐고만 있어도 부가 자라는 셈이지요.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세상이 조금씩 더 부유해지고 크라우니 생태계가 자라나는 만큼, 그 가치도 함께 올라간다는 뜻이거든요.

여기에 영리한 설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크라우니의 값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시즌이 거듭될수록 거래되는 한도도 점점 넉넉해진다는 것입니다. 시즌1에는 담보 대비 보수적인 비율을 지키지만, 시즌2가 되고 시즌3가 되면서 그 빗장이 조금씩 느슨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이 더 안정되고 더 믿을 만한 곳이 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일찍 들어온 분일수록, 그리고 오래 함께한 분일수록 더 많은 기회를 손에 쥐는 구조랍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마음 한구석에 살짝 담아 두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크라우니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그 위로도 더 큰 부의 단계가 차례차례 마련되어 있어요. 한선(Hanseon) 과 선호(Sunho) 라는 이름의 층입니다. 이것들은 아직 활짝 열리지 않은, 미래를 향한 약속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게를 정성껏 꾸리고 동네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다면, 세상이 더 부지런해지고 더 풍요로워질 그날, 한선과 선호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한선과 선호는 "여러분의 좋은 일이 만들어 낼 미래"를 미리 숫자로 그려 둔 자리예요. 그 이야기는 때가 무르익으면 다시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부에는 더 높은 층이 앞으로 열린다'는 것만 가슴에 품어 두세요.

이것이 화폐의 세 번째 칸입니다. 세상을 함께 더 좋게 만드는 것.

세 칸이 서로 오가는 법

이 세 칸은 따로 떨어진 서랍이 아닙니다. 아주 또렷한 비율로 서로 오가지요. 만 원짜리 상품권 한 장이 천 원짜리 열 장과 같은 것처럼 말입니다.

1 크라우니(CRY) = 10 포네(FONE) = 1,000 맘(MOM).

10배, 100배씩 딱딱 떨어지니 조금도 어렵지 않으시죠? 야채시장에서 어머니들이 셈하시던 그 방식 그대로입니다. 단위가 10, 100으로 깔끔하게 떨어진다는 것, 살림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백화점에 빗대도 좋겠습니다. 거스름돈으로 쥐여 드리는 잔돈이 맘, 단골손님께 드리는 적립금이 포네, 그리고 귀한 분께만 드리는 상품권이 크라우니. 이름은 조금 낯설어도 저마다 맡은 일이 또렷해서 금세 손에 익으실 거예요.

세 칸이 만나는 곳

비율을 알았으니,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세 칸이 실은 한 줄기로 이어져 돈다는 사실 말입니다.

여러분의 아홉 명 회사가 첫발을 떼는 순간을 그려 보세요. 여러분은 부(크라우니)를 받습니다. 맨 위 칸이 채워진 것이지요. 그 부를 담보로 맡기는 순간, 그 아래에서 쓰는 돈인 크라우니원가 발행되고, 동시에 포네와 맘이라는 에셋으로 팀원과 이웃과 신뢰를 나눌 길이 열립니다. 가운데 칸과 아래 칸이 함께 살아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돈들을 잘 써서 동네를 정성껏 돌보면, 세상은 여러분의 수고를 알아봅니다. 그렇게 신뢰와 결실이 차곡차곡 쌓여 다시 더 큰 부가 됩니다. 맨 위 칸이 한층 두툼해지는 셈이에요.

거꾸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부가 있으려면 신뢰가 있어야 하고, 신뢰가 있으려면 동네와 세상을 함께 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화폐란, 그 마음이 세상과 만나는 지점인 것이지요.

돈이 건네는 두 마디

여기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돈은 두 가지 말로 사람에게 말을 건넵니다. 하나는 "갚아라" 이고, 다른 하나는 "잘 써라" 입니다.

보통의 금융 세계는 첫 번째 말로 짜여 있습니다. 빌려줄 때 이자를 붙이고, 기한이 지나면 독촉하고, 갚지 못하면 재산을 거둬 가지요. 그 말은 명확하고 냉정합니다.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다만 그 말 속에서 사람은 자꾸만 매달리게 됩니다. 끝없이 따라붙는 이자의 무게 때문에요.

크라우니월드는 두 번째 말을 골랐습니다. "이 부를 가지고 무엇을 했나요? 잘 썼나요? 동네를 도왔나요? 그렇다면 계속 가세요. 우리는 잘했다고 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 가르치는 데 들인 돈을 두고 갚으라 하지 않듯, 공동체를 위해 베푸는 장학금 같은 마음이지요. 잘 쓰인 부는 갚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아시나요. 화폐가 "갚아라"고 말하면 사람은 자꾸 움츠러듭니다. 하지만 화폐가 "잘 써라"고 말하면 사람은 활짝 펼쳐집니다.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옆 사람을 챙길 여유가 생기니까요.

그것이 어쩌면 이 경제 체계가 가장 깊은 자리에 품은 마음일 것입니다.

오늘의 점검

〔여러분이 앞으로 받게 될 달란트를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그 부를 가지고 어떤 자산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포네와 맘으로는 누구와 신뢰를 나누고 싶으신가요. 그렇게 나눈 것들이 5년, 10년 뒤에 어떤 더 큰 부로 자라나 있으면 좋겠나요. 세 칸 가운데 지금 내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무는 칸은 어디인지, 조용히 짚어 보세요.〕

한 걸음

오늘은 이 한 가지만 해 보시길 권합니다. 머니·에셋·웰스, 세 칸을 종이 한 장에 그려 보세요. 맨 아래에 쓰는 돈, 가운데에 모으는 돈, 맨 위에 불어나는 부. 그리고 각 칸 옆에 내가 그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한 줄씩 적어 보는 거예요. 손으로 한번 그려 보면, 머릿속에만 있던 것이 비로소 내 살림이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본 길을 가만히 더듬어 봅니다. 아홉 명이 모여 한 팀을 이루고, 그 팀이 받은 부로 가게를 세우고, 무이자 자금으로 일을 시작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정하고, 그렇게 거둔 이윤을 다시 동네로 흘려보냈습니다. 그 모든 일이 같은 구조, 같은 규칙 안에서 이루어졌어요. 복잡하지 않습니다. 부와 자산과 화폐, 세 칸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한 가지 더 깊은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이 모든 구조를 켜는 근본의 힘은 무엇일까요. 왜 굳이 이렇게 설계했을까요. 그 설계 뒤에 자리한 믿음과 가치, 그리고 우리가 함께 바라보는 미래—이제 그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되었습니다. 다음 장은 이 책의 마지막 장입니다. 무언가를 남기고, 또 새로 시작하는 약속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옴 · CHAPTER 13

남기는 이야기

앞 장에서 우리는 화폐의 세 칸을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매일 쓰는 머니, 차곡차곡 쌓는 에셋, 그리고 천천히 자라는 웰스. 그 세 칸이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는지 이야기했지요. 이제 마지막 장에서는, 그 모든 것을 손에 쥐었던 한 사람이 언젠가 그것을 내려놓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처음 아홉 명으로 모여 앉던 그날부터 꼭 12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 그날,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요.

가게의 간판은 낡았을 겁니다. 처음 문을 열던 때의 밝은 칠이 바래고, 손잡이가 손때로 윤이 나고, 문턱이 닳아 한쪽이 기울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낡음이 사람들에게는 가장 편안한 풍경이 되어 있을 겁니다. 딱 그 가게, 그 자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렇게 12년이 한 켜 한 켜 쌓입니다.

저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바로 그 쌓인 시간을 어떻게 내려놓고 어떻게 이어가는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선택의 무게

하지만 그 가을날, 여러분은 중대한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이 12년간 손에 쥐고 키워온 그 부(富)—웰스 말입니다. 크라우니, 그리고 그 너머에 놓인 한선과 선호. 그것이 이제 다음 아홉 명에게 넘어가야 할 시간이 온 것입니다. 우리가 시즌1이라 부르는 한 사이클이 만기를 맞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처음 그 부를 받았을 때 얼마나 신기하고 또 얼마나 무거웠는지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 부로 가게를 짓고, 사람을 고용하고, 동네 아이들을 봐주었던 12년. 그 시간들이 모두 영원히 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크라우니월드의 약속이라는 것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약속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약속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도요.

내려놓는다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처럼

강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강은 산에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손가락만 한 계곡물이지만, 흘러내려 가다 보면 점점 굵어집니다. 어느 지점에서는 마을을 지나고, 어떤 구간에서는 논밭을 적시고, 언젠가는 호수에 잠시 머물렀다가, 마침내 너른 바다로 흘러갑니다.

강물이 제자리에 고이면 어떻게 됩니까. 썩습니다. 고인 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살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흐르는 물은 생명을 냅니다. 바다로 가는 그 긴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살리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12년간 받아 안았던 그 부도 똑같습니다. 부는 머물 수 없습니다. 머물면 죽습니다. 부는 흘러야 합니다. 다음 아홉 명에게, 그리고 그다음, 또 그다음으로 계속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 부로 만든 것들—가게, 일자리, 신뢰, 기쁨—그것들은 여러분이 떠난 뒤에도 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람의 마음에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12년간 그 자리에서 보여준 정성과 섬김이, 다음 아홉 명이 같은 자리에서 하는 일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세 가지를 남기고 갑니다

이제 정리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이 12년 동안 무엇을 남겼는지 함께 헤아려 보겠습니다. 크라우니월드는 사람이 떠나며 남기는 세 가지를 특별히 소중하게 봅니다.

첫째, 일의 숨결을 남깁니다.

여러분이 차린 가게, 혹은 여러분이 가르친 기술, 혹은 여러분이 끌고 온 프로젝트. 그것이 여전히 세상에서 쓸모 있게 돌아가고 있다면, 여러분은 일의 숨결을 남긴 것입니다. 다음 사람은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져 놓은 토대 위에서, 여러분의 방식을 조금 손보거나 한 걸음 더 발전시켜서,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의 변화를 남깁니다.

여러분과 함께 12년을 보낸 여덟 명의 동료들. 처음에는 서툴렀던 그들이, 여러분과 함께하며 얼마나 자랐는지요. 여러분의 기술만 배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 씀씀이도, 책임감도, 함께 일하는 기쁨도 함께 배웠습니다. 그 변화는 한 번 새겨지면 지워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떠난 뒤에도 그들은 여러분이 보여준 그 방식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대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영향력이 곱해지고 번져 갑니다.

셋째, 신뢰의 흔적을 남깁니다.

여러분이 이 동네에서 얼마나 투명하게, 얼마나 정직하게, 얼마나 겸손하게 살았는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졌는지. 그렇게 모인 신뢰는 여러분이 떠난 뒤에도 그 공간에 그대로 머뭅니다. 다음 아홉 명이 들어올 때, 손님들은 그 신뢰를 미리 기대하고 기다릴 것입니다. "이 가게는 정직한 곳이다. 이 사람들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그런 평판이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축복입니다.

시즌2의 아홉 명에게

여러분이 떠나면, 새로운 아홉 명이 들어옵니다. 그들도 여러분처럼 가슴이 떨릴 겁니다. 여러분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속으로 묻겠지요.

여러분은 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여러분이 저질렀던 실수들, 여러분이 깨달았던 것들, 가장 아팠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들—그것들을 그들과 나누고 싶지 않으십니까.

크라우니월드에는 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록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이 12년간 배운 모든 것을 다음 세대를 위해 적어 두는 것입니다. 교과서처럼 반듯하고 딱딱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여러분이 느낀 것, 겪은 것, 후회하는 것, 자랑스러운 것—그 모든 것을 솔직하게 적어 두면 됩니다.

그 기록을 읽으며 시즌2의 아홉 명은 여러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그것이 바로 지혜를 물려주는 일입니다.

8/8/8의 균형은 계속됩니다

혹시 이런 생각이 스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보낸 12년이 물거품이 되는 건가?"

아닙니다. 크라우니월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12년간 이뤄낸 모든 것—그 성과, 그 성장, 그 신뢰—그것들은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상으로 돌아옵니다. 여러분의 노력이 키운 일의 가치, 여러분의 봉사가 일군 동네의 발전, 여러분의 정직이 쌓은 평판. 그것들이 모두 여러분의 웰스의 상승으로 나타납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여러분이 받았던 그 크라우니의 가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랍니다. 마치 농부가 여름 내내 땀 흘려 일하고 가을에 거두는 것처럼요. 여러분이 12년간 잘 지켜낸 것이, 동네를 위해 흘려보낸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 둔 것이—그 모든 것이 평가되어 여러분의 자산이라는 형태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떠난 뒤에도, 여러분이 심어 놓은 것들은 계속 자랍니다. 여러분이 보여준 본보기가, 여러분이 쌓아 둔 신뢰가, 다음 시즌의 사람들이 더 나은 일을 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면 그것도 다시 여러분의 몫에 더해집니다. 세상이 조금씩 더 좋아질 때마다, 여러분의 부도 작게나마 함께 자라는 셈입니다.

여기서 잠깐, 미래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손에 쥔 것이 크라우니라면, 그 너머에는 아직 열리지 않은 단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한선, 그리고 그 위의 선호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더 큰 군집의 부이자, 앞으로 세상의 생산성이 얼마나 자랄지를 미리 헤아려 마련해 둔 자리입니다. 지금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즌2가 열릴 무렵에야 그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이 오늘 흘려보낸 정성이, 그 미래의 곳간을 채우는 첫 한 줌이 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분 자신은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시즌1을 마치고 나면 여러분은 이제 어떤 새 일을 하게 될까요. 그동안 익힌 기술로 더 큰 일에 도전할 수도 있고, 처음에는 엄두도 못 냈던 무언가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한동안 쉼을 가지거나, 배움에만 몰두하거나, 가족과의 시간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일과 배움과 쉼, 그 8/8/8의 균형 감각이 이제 여러분의 다음 인생에도 자연스레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기는 것은

결국 크라우니월드가 그리는 세상은 이런 모습입니다.

한 사람이 12년을 살고 떠나면, 그 12년이 물거품이 되지 않는 세상. 대신 그것이 흐르는 물처럼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이어지는 세상. 그러면서도 앞서간 사람은 거기 멈추지 않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세상. 그렇게 여러분이 지나온 모든 자리가 점점 더 좋아지고,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세상.

우리는 이것을 세대의 사다리라고 부릅니다.

각 세대가 앞선 세대의 발판 위에 올라서고, 다시 다음 세대를 위해 한 계단을 더 높이 놓아 준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같은 높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무도 뒤에 남겨지지 않습니다. 계단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있어서, 그다음 아홉 명도, 또 그다음 아홉 명도 그 계단을 밟고 올라설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점검

〔당신이 이제 12년을 마치고 떠난다고 상상해 보세요. 무엇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이 자리에서 했던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당신이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 보세요. 그들 중 누군가가 당신 때문에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면—바로 그것이 당신이 남긴 것입니다. 오늘은 그중 한 사람에게, 짧게라도 고마움을 전해 보십시오.〕

다시 시작하는 약속

친구들, 이 책을 처음부터 여기까지 함께 걸어오면서 여러분은 무언가를 보셨을 겁니다.

일과 배움과 쉼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하루. 혼자가 아니라 아홉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길. 담보가 든든할 때 신뢰도 함께 커진다는 것. 머니로 살고, 에셋으로 쌓고, 웰스로 자란다는 화폐의 세 칸. 그리고 12년이라는 한 사이클 안에서 결국 모두가 함께 올라간다는 것.

이것들은 단순한 경제 이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약속입니다.

크라우니월드는 약속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헛되지 않을 것을. 여러분의 땀이 헛되지 않을 것을. 여러분이 심은 것이 반드시 자라날 것을. 그리고 여러분이 떠난 뒤에도, 여러분이 걸어온 그 길이 누군가의 빛이 되어 줄 것을.

이 약속이 지켜질 수 있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일을 믿어 주고, 여러분의 신뢰를 귀하게 여기고, 여러분이 만든 것들을 계속해서 지켜 갈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러니 다시 시작하십시오.

시즌1을 마치면 시즌2가 옵니다. 아홉 명이 떠나면 새로운 아홉 명이 들어옵니다.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쌓이고, 모든 것이 이어지고, 모든 것이 끝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제가, 그리고 크라우니월드가 여러분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입니다.

당신의 인생이, 당신이 걷는 그 길이, 당신이 남기는 한 걸음 한 걸음의 발자국이—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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