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비유입니다.
여기 나오는 '크라우니'는, 모든 것을 지었고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는 한 분을 가리킵니다.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입니다. 어떤 때는 멀리서 세상을 지으시고, 어떤 때는 직접 곁에 오시고, 어떤 때는 당신 안에 머무십니다 — 그래도 늘 같은 한 분, 크라우니입니다.
이야기 속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새로 지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종교의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누구에게나 건네는 사랑 이야기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친구의 옛이야기를 듣듯이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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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아무것도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빛도 없고, 바다도 없고, 저녁도 없었습니다. 소리도, 냄새도, 무게도 없었습니다. 그 텅 빈 곳에, 딱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름은 크라우니.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한 번에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나중에 맑은 밤에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있거든, 보이는 별을 죄다 세어 보세요. 끝까지 다 셀 수는 없을 겁니다. 그 수많은 별을, 크라우니가 하나하나 이름 붙이며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단한 분에게,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친구가 없었습니다.
가진 게 없어서가 아닙니다. 크라우니에게는 없는 게 없었으니까요. 다만 사랑이라는 건 묘해서, 혼자 두면 자꾸 넘칩니다. 어디론가 흘려보내고 싶어집니다. 받을 사람, 함께 웃을 사람, 이름을 불러 줄 사람이 갖고 싶어집니다. 크라우니의 사랑이 꼭 그랬습니다. 너무 가득 차서, 더 이상 혼자 품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짓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빛을 켰습니다. 온통 어둠뿐이던 곳에, 아침이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크라우니는 그걸 보며 좋다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그다음 하늘을 펼치고 바다를 부었습니다. 땅을 돋우고 풀을 심었습니다. 헤엄치는 것, 기어가는 것, 날아다니는 것 — 하나씩 지을 때마다 크라우니는 기뻐했습니다. 일을 할 때마다 기뻐할 줄 아는 분, 그게 크라우니였습니다.
그런데 별도, 바다도, 물속을 헤엄치는 것들도, 크라우니의 사랑을 다 받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사랑은 마주 볼 수 있는 친구를 원하니까요. 말을 걸면 대답해 주고, 슬프면 같이 슬퍼하고, 웃으면 같이 웃어 줄 — 그런 친구.
그래서 마지막에, 크라우니는 가장 정성껏 무언가를 지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첫 사람의 이름은 단, 그다음은 리아. 크라우니는 둘을 지을 때만큼은 멀찍이 서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흙을 직접 손에 쥐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별을 지을 때보다 훨씬 천천히, 훨씬 조심스럽게.
단이 처음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크라우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무서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기다리던 친구를 드디어 만난, 그런 환한 얼굴이었습니다. 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그 얼굴을 봤고,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습니다.
그날부터 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크라우니는 단과 리아에게 세상을 하나하나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어느 나무 열매가 단지, 어느 골짜기 바람이 시원한지, 밤에는 어느 별이 제일 먼저 뜨는지 — 마치 자기가 마련한 집에 친구를 처음 초대한 사람처럼, 신이 나서 이것저것 보여 주었습니다. 단과 리아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뜰 때마다, 크라우니는 더 신이 났습니다.
저녁이 되면, 셋은 함께 걸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바람이 선선해질 때, 크라우니는 단과 리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단, 리아 — 오늘 저녁도 걷자." 그러면 둘이 달려왔고, 셋은 나란히 걸었습니다. 별을 지은 그 크고 대단한 분이, 두 친구 사이에 끼어 그날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들었습니다.
이것이 크라우니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해낸 시간이 아니라, 저녁에 친구와 나란히 걷던 시간.
당신도 잘 알지 않나요? 무언가를 해낸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과 걸은 저녁이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을. 크라우니가 딱 그랬습니다.
기억해 두세요. 이 이야기의 처음은 장엄한 우주 탄생이 아닙니다.
친구와 저녁을 걷고 싶었던, 한 분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세상을 지었고, 단과 리아를 지었고,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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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 이 평화로운 저녁 산책이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날, 무언가가 슬며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단과 리아는 처음으로 크라우니를 피해 숨었습니다.
저녁이 왔습니다. 바람이 선선해졌습니다.
크라우니가 걸으러 나왔습니다. 어제처럼, 그제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단과 리아를 부르며 골짜기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단아."
소리가 나무 사이로 퍼졌다가 돌아왔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리아야."
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크라우니는 잠시 멈췄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단과 리아가 이쪽으로 걸어오지 않은 날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들은 언제나 먼저 달려와 오늘 본 것들을 쏟아 냈습니다 — 강가에서 물고기를 봤다고, 처음 보는 꽃이 피었다고, 바위 위에 올라갔더니 멀리까지 다 보였다고.
오늘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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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니는 찾기 시작했습니다.
성난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서두르는 발걸음도 아니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천천히,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숲을 지나고 개울을 건넜습니다. 바람이 잦아드는 곳마다 멈춰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디 있니?"
작게, 하지만 분명하게.
그 목소리가 담긴 건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더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 걱정과 그리움이 섞인, 오래된 친구를 잃어버렸을 때 생기는 그 감각. 크라우니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다 알면서도 찾는 쪽을 선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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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단과 리아는 거기 있었습니다. 숨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크라우니를 보자 더 몸을 움츠렸습니다. 얼굴을 가렸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크라우니가 물었습니다. "왜 숨었니?"
단이 대답했습니다. "무서웠어요."
이상한 대답이었습니다. 크라우니는 단에게 한 번도 무서운 얼굴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본 그 환한 얼굴, 그게 크라우니의 진짜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은 지금 그 얼굴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크라우니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 말라고 했던 것.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지금 네 눈에 그게 좋아 보여도 아직은 이르다고, 내가 좋은 때를 알고 있다고 — 그렇게 말했던 것. 그것을 단과 리아가 했습니다.
무언가가 그들 사이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속삭였습니다. 크라우니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크라우니 없이도 더 잘 알 수 있다고, 한 번쯤 직접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단과 리아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크라우니의 말 대신 그것의 말을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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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생겼습니다.
눈에 보이는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단과 리아는 여전히 나무 사이에 있었고, 크라우니는 바로 앞에 서 있었습니다. 몇 걸음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그 몇 걸음이, 전에는 없던 것이었습니다.
전에 단과 리아는 크라우니를 보면 달려왔습니다. 지금은 피했습니다. 전에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숨겼습니다. 같은 두 사람인데,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 달라짐이 바로 거리였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거리를 느꼈습니다.
억지로 없애지 않았습니다. 단과 리아를 억지로 잡아당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말했습니다. 아주 천천히.
"그래도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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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단과 리아는 저녁 산책을 잃었습니다. 크라우니와 나란히 걷던 그 시간이, 이제 없어졌습니다. 땅이 달라졌고, 몸이 달라졌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것들은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크라우니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과 리아가 걸어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돌아서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세상이 들을 수 없을 만큼 작게, 하지만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지도록.
"내가 다시 찾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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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생겼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거리를 두고 포기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거리 때문에, 더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곁으로 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단과 리아가,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언젠가 다시 저녁 산책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걸릴 것이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
하지만 크라우니에게 그건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오래 걸린다는 것은, 더 많이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단과 리아의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그 자녀들에게도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세상이 넓어지고,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크라우니는 조용히 계속 찾았습니다.
"어디 있니?"
그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도.
거니와 여리는 세상에 단 둘뿐인 형제였습니다.
형 거니는 밭을 일구었습니다. 땅에 씨를 넣고, 비가 오길 기다리고, 풀을 뽑고, 또 기다리는 일. 손이 거칠어지고 등이 타도 거니는 그 일이 좋았습니다. 자기 손으로 뭔가를 키워낸다는 게, 꽤 뿌듯한 일이거든요.
동생 여리는 양을 쳤습니다. 아침이면 양떼를 이끌고 풀밭으로 나가고, 저녁이면 하나도 잃지 않고 돌아오는 일. 여리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알았습니다. 느린 녀석, 겁쟁이, 꼬마 — 불러 주면 다들 고개를 들었습니다.
크라우니는 두 사람을 모두 좋아했습니다.
들을 거닐 때 거니의 밭 곁을 지났고, 언덕을 오를 때 여리의 양떼 사이를 함께 걸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형제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거니, 오늘 어땠어? 여리, 오늘 어떤 양이 제일 멀리 갔어?" 두 사람이 도란도란 대답하는 그 시간이, 크라우니는 좋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형제가 각자 가져온 것을 크라우니 앞에 내놓았습니다.
여리는 양 중에서 제일 탐스럽고 건강한 녀석을 가져왔습니다. 아까웠지만, 그래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담긴 것을 드리고 싶었으니까요.
거니는 밭에서 난 것들을 한 아름 가져왔습니다. 풍성했습니다. 열심히 키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라우니의 눈이 여리 쪽으로 향했습니다.
마음이 먼저 보였던 겁니다. 여리가 아까운 걸 내놓으면서 눈을 질끈 감던 그 순간이, 크라우니에게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거니의 것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크라우니는 열매보다 마음을 먼저 보는 분이었습니다.
거니는 얼굴이 굳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나도 한 아름 가져왔는데. 왜 여리는 되고 나는 안 되나. 억울함은 곧 다른 감정으로 물들었습니다. 그건 시샘이었습니다. 세상에 처음 들어온 감정, 시샘.
크라우니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거니, 왜 얼굴이 그래? 마음을 열면 다음엔 달라질 거야. 그런데 그 마음을 닫아 두면, 작은 게 마음 앞에 자꾸 도사리고 앉아."
거니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날 여리가 저녁 무렵 들판에 나갔을 때, 거니가 따라갔습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 들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리는 혼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크라우니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거니에게 찾아갔습니다. 피하거나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름을 불렀습니다.
"거니."
거니는 멈췄습니다.
"네 동생은 어디 있니?"
짧은 물음이었습니다. 무섭게 따진 게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물음 안에 뭔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미 다 알면서도, 직접 묻는 것. 거니 스스로 입을 열길 기다리는 것. 끝까지 거니를 사람으로 대하는 것.
거니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 안에 죄책감이 들어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걸 다 들었습니다.
거니는 그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것은 잘못의 결과였습니다. 크라우니는 그걸 없던 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덮어 준다는 건, 모든 것을 흐지부지 만들어 준다는 뜻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떠나는 거니의 등에, 크라우니의 시선이 따라갔습니다.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거니가 어느 들에서 쉬더라도, 어느 길에서 눕더라도, 크라우니는 여전히 거니를 보고 있었습니다. 뒤따르며 이름을 기억하고, 언제든 다시 돌아설 수 있는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네 동생은 어디 있니?"라는 물음은 거니에게 던진 것이었지만, 동시에 이런 말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아직 너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도 안다. 그래서 묻는 거다.
끝까지라는 말은, 여리 곁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거니 곁에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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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처음으로 시샘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크라우니는 더 많이 움직였습니다. 한쪽만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의 곁에서, 아프게도 기다리며.
잘못이 들어올 때마다 크라우니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가까이 와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게 이 이야기를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음엔, 세상이 거의 다 잊어버린 때가 옵니다. 딱 한 사람이 남아서 — 그래도 크라우니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세상이 처음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단과 리아가 크라우니와 저녁을 걷던 그 풀밭은 이제 먼 기억 속 이야기가 됐고,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서로 다치게 하는 일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거니가 여리를 향해 주먹을 들던 날처럼, 그 시샘이 온 세상에 번진 것 같았습니다. 미워하고, 속이고, 빼앗고 — 어느 날부터 그게 당연한 일처럼 됐습니다.
크라우니는 그걸 다 보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바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우는 특별히 멋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말을 잘하지도 않았고, 주먹이 센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조용히 살고, 밥 먹을 때 감사하고, 잠들기 전에 크라우니한테 말 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어느 날, 크라우니가 바우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바우, 나야."
바우는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다. 원래 이렇게 말 걸어 오던 분이니까요.
"배를 지어."
"배요?"
"큰 비가 올 거야. 아주 오래, 아주 많이. 배를 만들어 두면 네가 돌봐야 할 것들을 다 지킬 수 있어."
바우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겠어요."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들은 이웃들 반응은 달랐습니다.
"바우, 미쳤어? 여기 강도 없잖아."
"배를? 거기에 무슨 나무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 알아?"
"제발 조용히 살아, 창피하게."
바우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도끼를 들고 산으로 갔습니다. 나무를 베고, 다듬고, 맞추고, 칠했습니다. 하루하루 배가 모양을 갖춰 갔습니다. 이웃들은 지나가며 한 마디씩 했습니다. 바우는 듣는 척 안 했습니다. 크라우니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세요? 비도 안 오고, 강도 없고, 모두가 비웃는데.
바우는 그냥 믿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대단한 믿음이 아니라, 그냥 매일 나무 한 조각씩 올린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늘이 열렸습니다.
처음엔 빗방울이 몇 개 떨어졌습니다. 이웃들이 웃었습니다. "이 정도로 배가 필요해?" 그러다 빗소리가 달라졌습니다. 후두둑이 아니라, 콸콸. 하늘이 쏟아부었습니다. 땅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바우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 준비해 뒀으니까요. 가족을 불렀습니다. 돌봐야 할 것들을 챙겼습니다. 배 문을 닫았습니다.
물은 계속 올라왔습니다.
배 안은 시끄럽고 냄새도 났습니다.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바우도 지쳤습니다. 밤에 뒤척이다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크라우니, 아직 여기 있어요?"
대답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없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오래 걸렸습니다. 아주 오래. 물이 천천히 빠졌습니다. 땅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바우는 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늘에 띠가 떴습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 비가 끝난 하늘에 크라우니가 색을 걸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바우는 그걸 보고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말했습니다.
"바우, 저 띠 보여?"
"네."
"저게 약속이야.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약속. 네가 잊어버릴 것 같을 때마다 하늘에 걸어 놓을게. 봐서 기억해."
바우는 고개를 들고 오래 봤습니다. 눈이 좀 촉촉해졌습니다. 말은 안 했습니다.
사실 저 띠는 바우한테만 한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비웃던 사람들한테도. 지쳐서 중얼거리는 사람한테도. 크라우니는 그런 분이니까요.
비가 온 뒤 하늘을 보면, 아직도 그 띠가 뜹니다. 그때 기억하세요. 저 빛깔은 그냥 날씨가 만드는 게 아닙니다. 한 분이 걸어 놓은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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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먼 곳에서는,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흩어졌다가 한 곳으로 모인 사람들 — 이번엔 다 함께 뭔가를 짓고 싶어 했습니다. 크라우니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거기서 이어집니다.
바우의 배가 마른 땅에 닿고 세상이 다시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은 늘었습니다.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의 아이가 생기고, 어느새 온 들판을 가득 채울 만큼 많아졌습니다. 걸어가도 걸어가도 사람이 보이는 세상이 된 겁니다.
크라우니는 그게 좋았습니다. 더 많은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한 평원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모인 게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세우려는 눈빛이었습니다.
"탑을 쌓자."
누군가 처음 그 말을 꺼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말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벽돌을 굽고, 기초를 다지고, 하루가 다르게 탑이 올라갔습니다. 높이 쌓을수록 사람들의 눈이 빛났습니다.
"우리 이름이 하늘까지 닿게 하자."
바로 그 말이 크라우니의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름을 높이고 싶은 마음, 크라우니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그런 마음을 품도록 지어졌으니까요 — 무언가를 만들고, 기뻐하고, "좋다!" 외치는 기쁨. 그건 크라우니 안에 있던 것이 사람에게 흘러든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방향이었습니다.
탑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같이 짓는 게 즐거웠는데, 누가 벽돌을 더 많이 날랐는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서는지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웃음이 줄었습니다. 밤에 불을 피워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탑이 한 단 올라갈 때마다 사람들 사이의 틈도 한 단씩 벌어졌습니다.
크라우니는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이대로 두면 저들이 다칩니다. 탑 위에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 시샘이 쌓이고, 자랑이 쌓이고, 언젠가는 정말로 서로를 짓누르게 될 겁니다. 크라우니는 그걸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을 손에 쥐고 숨을 불어넣은 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크라우니가 한 일은, 탑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흩었습니다.
어느 아침, 평원에 나온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했을 때, 말이 엇갈렸습니다. 옆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벽돌을 달라고 했는데 물을 가져오고, 왼쪽으로 가자 했는데 오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들이 평원을 가득 채웠습니다.
탑은 거기서 멈추었습니다.
사람들은 결국 저마다 말이 통하는 이들끼리 모여 흩어졌습니다. 동쪽으로, 서쪽으로, 산을 넘어, 강을 건너. 그렇게 온 땅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탑은 남았지만, 아무도 그 위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묻고 싶을 겁니다. 왜 그렇게 했냐고. 흩어진 사람들이 서럽지 않겠냐고.
크라우니도 그걸 압니다. 그래서 그날 오래 바라보았던 겁니다. 결코 가볍게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탑으로는 아무도 정말로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멀어지는 게 탑입니다. 사람이 사람 곁에 머무는 건, 높이 쌓는 게 아니라 낮게 앉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니까요.
크라우니가 원한 모임은 탑 위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식탁 앞의 모임이었습니다.
언젠가, 그리 먼 미래가 아닌 곳에서 — 크라우니는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을 겁니다. 그때는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기 위해서. 탑이 아니라 팔을 벌려서.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
흩어진 말들도 그날은 하나가 됩니다.
그 이야기는 뒤에 오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크라우니는 온 땅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습니다. 별처럼, 불씨처럼, 사방으로 퍼져 가는 그 얼굴들을. 그리고 조용히 각자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멀어져도 이름은 기억하는 분이었으니까요.
저 멀리, 한 사람이 밤하늘 아래 홀로 앉아 새로 배운 별자리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없는 낯선 땅, 말도 안 통하는 곳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밤이었습니다.
그때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선선하고 따뜻한, 저녁 산책 같은 바람이.
그 사람은 왠지 울고 싶지 않았습니다.
멀지 않은 뒤, 크라우니는 그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 한 노인을 찾아갑니다. 아이도, 고향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 이름은 미르. 크라우니는 그에게 별을 보여 주며 말을 겁니다.
탑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흩어진 뒤, 세상은 한동안 조용했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시끄러울 때보다 더 외로운 것 같은 그런 조용함이었습니다.
그 무렵, 먼 길을 걷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름은 미르. 짐을 잔뜩 진 것도 아니고, 어딘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나그네였습니다. 갈 곳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그런 사람.
미르에게는 한 가지 슬픔이 있었습니다.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는 이미 많았습니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곁에는 아내 한 사람뿐이었고, 가족이라 부를 사람이 더는 없었습니다. 밤마다 식탁에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의자들이 괜히 많아 보였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미르는 집 밖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별이 많았습니다. 세려고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그때 크라우니가 말을 걸었습니다.
"미르야."
딱 그것뿐이었습니다. 이름 하나. 그런데 미르는 그 순간 무언가 멈추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장이 멈춘 게 아니라, 오래된 두려움 같은 것이 잠깐 멈춘 것 같았습니다.
"저 별들 보이지?"
크라우니가 물었습니다. 무서운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어깨 너머로 하늘을 같이 보면서 묻는 것 같은 목소리였습니다.
미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보인다고. 전부 세기는 어렵겠다고.
"저게 네 가족 수야."
미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별처럼 많은 가족이라니. 지금 이 나이에.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의자가 남아 도는 식탁에서.
"불가능한 것 같지?"
크라우니가 먼저 물었습니다. 마치 미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미르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크라우니는 웃었습니다. 비웃는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은 웃음이었습니다. 마치 그 솔직함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나는 별도 지었잖아. 불가능한 걸 좋아해."
미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 말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설명이 돼서가 아니라, 말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에.
별을 전부 지은 분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습니다. 슬퍼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아무도 자기를 찾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찾고 있었던 분이 있었다는 것을 안 것 같아서.
크라우니는 그날 밤 미르와 오래 있었습니다. 별 이야기를 했고, 길 이야기를 했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르는 잘 모르겠다고 했고, 크라우니는 괜찮다고, 길은 같이 가는 거라고 했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나는 같이 간다. 그게 약속이야."
그 약속이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미르는 나중에 알게 됩니다. 정말로 자식이 오고, 그 자식에게서 다시 자식이 오고, 어느 날 이 세상 모든 곳에 미르와 이어진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별 이야기가 그냥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날 밤, 미르에게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별을 다 셀 수 없어도 괜찮았습니다. 이름을 불러 준 분이 있다는 것, 그분이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미르는 그날 밤을 오래 기억했습니다. 별이 많던 밤, 이름을 불러 준 밤.
식탁에 돌아와 아내 곁에 앉았을 때, 빈 의자들이 예전처럼 슬프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채워질 자리들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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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습니다. 별 같은 가족을 약속받았지만, 아직 자식 하나도 없습니다. 약속과 현실 사이의 그 긴 시간 동안, 크라우니는 정말 말한 것을 지킬까요.
다음 이야기는, 그 불가능한 약속이 어떻게 웃음이 되어 찾아왔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미르는 그날 밤 별을 셌습니다.
크라우니가 약속했거든요. "별처럼 많은 가족을 줄게." 그런데 그게 벌써 오래전 일이었습니다. 아내 사라는 머리가 하얗게 셌고, 미르도 허리가 굽었습니다. 자식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미르는 가끔 헛웃음을 쳤습니다. '별만큼 많은 가족이라니. 그러려면 지금 당장 아이가 생겨도 늦은 거 아닌가.'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래도 크라우니를 믿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 — 크라우니가 지금까지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손님 셋이 미르의 천막 앞에 섰습니다.
미르는 후다닥 뛰어나가 맞았습니다. 사라에게는 빵을 굽게 했고, 자기는 직접 송아지를 잡아 식탁을 차렸습니다. 손님을 맞는 일이라면 허리 아픈 것도 잊는 사람이었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님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내년 이맘때, 사라에게 아들이 생길 거야."
천막 뒤에서 사라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웃었습니다. 속으로만, 살짝. '아이가 생긴다고? 이 나이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웃음이 가려져 있었지만, 크라우니에게 숨겨진 건 없었습니다.
"사라가 왜 웃지? 크라우니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을까?"
사라는 뜨끔했습니다. "안 웃었어요." "아니, 웃었어." 무섭게 다그친 게 아니었습니다. 약간 장난기 섞인, 그러면서도 따뜻한 말투였습니다. 마치 친구가 "야, 나 다 봤어"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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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로, 이듬해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미르와 사라는 그 아이의 이름을 하온이라고 불렀습니다. '웃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아서 웃었고, 이제는 기뻐서 웃었습니다. 사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웃음을 주셨어.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마다 나랑 같이 웃겠지."
크라우니는 그 웃음이 좋았습니다. 불가능을 뚫고 나온 웃음이었으니까요.
하온은 쑥쑥 자랐습니다. 미르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크라우니가 생각났습니다. 별을 세던 그날 밤, '이럴 리가 없잖아' 하면서도 믿었던 시간들, 그 긴 기다림 끝에 온 아이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크라우니가 미르를 불렀습니다.
"하온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라."
미르는 가슴이 덜컥했습니다. 크라우니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크라우니도 알 텐데. 그런데 왜.
뜬눈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이튿날 아침, 미르는 일어났습니다. 하온을 깨웠고, 나귀 등에 나무를 얹었습니다. 말없이 걸었습니다. 어디를 가는지, 왜 가는지, 아직 하온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산길을 오르다가 하온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나무는 있는데 번제물은 어디 있어요?"
미르는 잠깐 멈췄습니다. 하온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답했습니다.
"크라우니가 마련하신다, 얘야."
그게 전부였습니다. 거짓말도 아니었고, 아는 척도 아니었습니다. 미르 자신도 확신보다는 믿음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여기까지 데려온 거라면, 크라우니가 알고 있다.' 그것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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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다다랐을 때, 미르가 눈을 감고 막 움직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크라우니가 불렀습니다.
"미르."
그 목소리에는 뭔가 담겨 있었습니다. 다급함도, 놀라움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래 기다린 것을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된 사람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멈춰. 됐어. 이제 알겠어."
덤불에 뿔이 걸린 양 한 마리가 거기 있었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준비돼 있던 것처럼.
미르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하온이 아버지 손을 잡았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날 미르는 그 산 이름을 불렀습니다. "크라우니가 마련하신다." 나중에도 사람들은 그 산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다음을 알 수 없을 때, "크라우니가 마련하신다"는 말이 거기서 왔습니다.
사랑은 때로 이렇게 옵니다. 설명보다 먼저, 증거보다 먼저. 밤새워 나귀 등에 나무를 올리는 손으로, 아들의 물음에 "크라우니가 마련하신다"고 답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크라우니는 그 믿음을 끝까지 보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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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오는 길, 하온이 아버지 옆에 나란히 걸었습니다.
저녁빛이 두 사람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미르는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하온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늘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건 알았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면, 그 아이의 아이들이 또 자라면, 언젠가 이 이야기는 더 먼 곳으로 흘러갈 것이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지는 아이, 사슬을 끊는 손, 먼 땅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으로. 그 모든 이야기 속에서도 같은 말이 메아리칠 것이었습니다.
크라우니가 마련하신다.
채워 주는 사랑이라는 건 이런 겁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이미 그 자리에 와 있는 사랑.
도담은 달아났습니다.
형 터울의 눈빛이 무서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에, 미르 할아버지가 물려준 약속을 제 것으로 가로챈 도담은 짐을 꾸려 바람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꾀가 많다는 건 자신도 알았습니다. 기회를 보고, 빠르게 움직이고, 먼저 차지하는 것 — 도담은 늘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혼자 벌판에 엎드려 돌을 베고 누웠을 때, 도담은 처음으로 작아졌습니다.
가족도, 집도, 친구도 없었습니다. 꾀를 부렸지만 남은 건 도망치는 발걸음뿐이었습니다. 별은 너무 많았고, 어둠은 너무 컸고, 도담은 그 한가운데서 그냥 하나의 지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도담은 뭔가를 보았습니다.
사다리였습니다. 땅에서 시작해서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올라가는, 그런 사다리.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사다리에는 수많은 발걸음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 위에서 내려오고, 아래에서 올라가고. 마치 하늘과 땅이 이 사다리 하나로 계속 이어져 있는 것처럼.
그리고 사다리 곁에 크라우니가 서 있었습니다.
도담은 순간 굳었습니다. 자기가 한 짓을 크라우니가 모를 리 없었습니다. 들켰다고 생각했습니다. 꾸지람이 올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크라우니는 꾸중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담."
그냥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한 마디가 이상하게 따뜻했습니다. 꿈인데도 목이 메었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나는 여기 있다."
크라우니의 목소리는 화가 나 있지 않았습니다. 지쳤지도 않았습니다. 오래 기다렸지만 끝내 친구를 찾아낸 사람 같은, 그런 말투였습니다.
"이 사다리가 보이니? 하늘과 땅은 끊겨 있지 않아. 네가 도망쳤어도, 네가 꾀를 부렸어도, 나와 너 사이에 난 길은 내가 닫지 않는다."
도담은 꿈 속에서 울었습니다. 억울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한 짓이 다 보이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이름을 불러 주는 게 — 그게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꾀 많은 사람은 항상 어딘가를 의심합니다. 이 친절이 진짜일까, 나중에 값을 치르게 할까. 그런데 그날 밤 도담은 의심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사다리 곁에 선 크라우니한테서는 흥정의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랑이었습니다. 조건 없이, 질문 없이.
"이제 새 이름을 줄게."
크라우니가 말했습니다.
"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 더 이상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맞서는 사람. 네 새 이름은 온전히 네가 살아낸 이야기에서 올 거야."
도담은 깨어났습니다.
돌은 여전히 딱딱했고, 벌판의 공기는 새벽 이슬로 차가웠습니다.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이 아닌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까 그 무서운 어둠이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도담은 천천히 일어나 어젯밤 잠든 자리에 돌을 세웠습니다. 기둥처럼, 표시처럼. 여기서 크라우니를 만났다는, 그 기억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여기 계셨다. 내가 도망친 이 자리에."
말이 입밖으로 나왔습니다. 혼잣말이었는데, 왠지 들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도담은 한 걸음을 뗐습니다. 도망치는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멀어진 가족에게로, 언젠가 돌아가야 할 길로.
그게 바로 그날 배운 것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는 완성된 사람에게만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 도망치는 사람의 벌판에도 사다리가 서 있었습니다. 꾀 많고 겁 많고, 제 이익을 먼저 챙기는 도담의 잠든 곁에도 — 크라우니는 이미 거기 있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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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은 아직 오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새 가족을 만나고, 속이고 속이는 세월을 지나고, 결국 그 씨름에서 살아남아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도담의 아들들 중 하나가 형제들에게 구덩이에 던져지는 날이 옵니다 — 그때 크라우니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다리를 놓을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새벽이 가장 먼저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다른 형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 때, 새벽은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은 목소리 — 잘 들리지는 않지만, 언제나 그 언저리에 있는 그 목소리가 새벽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곤 했습니다.
형들은 그것을 비웃었습니다.
"또 꿈 얘기야?" 터울을 닮은 목소리들이 비죽거렸습니다. 새벽은 대답을 못 했습니다. 설명하기가 어려웠으니까요. 크라우니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 그 꿈이 그냥 꿈이 아니라는 것 — 그걸 말하면 할수록 형들의 눈이 더 차가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들은 새벽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차갑고 좁은 구덩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새벽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들어 위를 본 것이었습니다. 구덩이 입구로 하늘이 보였습니다. 작고 둥근 하늘이었습니다. 형들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거래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새벽은 그 구덩이에서 팔려 나갔습니다.
먼 땅으로, 더 먼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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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니는 새벽을 잃지 않았습니다.
구덩이에 함께 있었고, 팔려가는 길에도 함께 있었습니다. 새벽이 낯선 말을 배울 때, 새벽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새벽이 천장을 바라보며 "크라우니, 여기 계십니까" 하고 물을 때 — 늘 거기 있었습니다. 말은 없어도, 어둠이 그다지 어둡지 않게 느껴지는 그 방식으로.
기다리는 것이 참 길었습니다. 몇 년이 지났을까요. 새벽의 머리카락이 자라고 또 잘리고, 계절이 몇 번을 돌았습니다. 크라우니가 새벽에게 준 것은 빠른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느리고, 단단하고, 조용한 것이었습니다.
꿈을 읽는 눈.
새벽은 감옥 안에서도 옆 사람의 꿈을 들어주었습니다.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던 것들을 풀었습니다. 그 소문이 퍼졌고, 먼 땅의 왕이 새벽을 불렀습니다. 일곱 해 풍년과 일곱 해 흉년 — 새벽은 그 꿈을 읽었고, 왕은 새벽에게 온 땅의 식량을 맡겼습니다.
구덩이에서 팔렸던 아이가, 이제 온 나라의 양식을 지키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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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이 왔습니다.
멀리, 새벽의 형들도 굶주렸습니다. 소문을 듣고 머나먼 땅으로 왔습니다. 식량을 구하러. 그 앞에 서 있는 관리가 자신들이 구덩이에 던진 동생인 줄도 모르고.
새벽은 알아보았습니다.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렸을까요. 저 얼굴들이, 저 목소리들이. 오래된 것들이 한꺼번에 올라왔습니다. 새벽은 잠깐 자리를 떴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그 울음이 원망인지 그리움인지 새벽도 잘 몰랐습니다. 크라우니도 그 울음을 다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새벽이 돌아왔을 때, 그 눈에 남은 것은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새벽은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구덩이에 던졌던 그 동생입니다."
형들이 얼어붙었습니다. 새벽은 계속 말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형들이 나를 이리로 판 것을 슬퍼하지 마십시오. 크라우니가 저를 형들보다 먼저 보내신 겁니다. 형들은 나쁘게 했어도, 크라우니는 그것을 좋게 바꾸셨습니다. 살리기 위해서."
형들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새벽이 그들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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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이 차려졌습니다.
새벽은 형들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구덩이에 던진 사람들을, 팔아버린 사람들을. 새벽은 그들에게 음식을 내어 주었습니다. 밥상 위에 앉아 있는 것은 먹을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새벽의 긴 세월 내내 쌓였을 수 있었던 것들 — 분노, 서러움, 앙갚음 — 그 전부를 내려놓은 자리였습니다.
크라우니가 그걸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새벽 혼자였다면 아마 안 됐을 겁니다.
당신도 알 것입니다. 나쁘게 당한 기억이 있을 때, 그걸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크라우니가 먼저 그 자리에 있어 주어야 됩니다. 구덩이 바닥에, 감옥 천장 아래에, 먼 땅의 낯선 밤에 — 크라우니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새벽에게는 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형들은 나쁘게 했어도, 크라우니는 좋게 바꾸셨다."
이 말은 나중에 아주 큰 이야기의 씨앗이 됩니다. 구덩이에서 던져진 한 사람이, 죽음에서 살아나, 자기를 배신한 모든 이를 먹이는 그 이야기의.
하지만 그건 훨씬 나중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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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식탁입니다.
새벽과 형들이 앉아 있습니다. 크라우니도 거기 있습니다. 밥 먹는 소리, 이야기 소리, 그리고 아마 웃음 소리도.
이것이 크라우니가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먼 땅으로, 구덩이로, 감옥으로 — 다 그 식탁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긴 사슬에 묶인 백성의 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크라우니는 그 소리도 듣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새벽이 용서한 뒤에도, 오래 걸렸습니다.
형들이 아우를 팔던 그 땅에서, 새벽의 가족은 살아남았지만 점점 낯선 곳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처음엔 손님으로 왔습니다. 나중엔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눈 떠보니, 사슬이 차 있었습니다.
벽돌을 날랐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다 쌓아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바로 일터로 나갔습니다. 노인들은 쉬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습니다. 웃음을 잊을 만큼 오래, 정말 오래.
그리고 그들은 울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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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해온.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버려질 뻔했지만 바구니에 담겨 풀숲에 숨겨졌습니다. 누군가의 딸이 그 바구니를 건졌고, 해온은 사슬 위에 지어진 궁 안에서 자랐습니다. 사슬 밖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해온은 어른이 되어 궁을 나왔다가 자기 백성이 매 맞는 걸 보았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잘못을 저질렀고, 도망쳤습니다. 광야에서 양을 쳤습니다. 조용히, 아무 이름도 없이.
거기서 크라우니가 찾아왔습니다.
불이 붙은 떨기나무가 있었습니다. 타는데 타지 않았습니다. 해온이 가까이 가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해온아."
이름을 불렀습니다. 광야에서 양이나 치던 도망자의 이름을. 크라우니는 거창한 제목이나 직함을 먼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게 크라우니 방식이니까요.
"나는 네 백성이 우는 소리를 들었어. 그 사슬을 알아. 그래서 내려왔어."
해온은 머뭇거렸습니다. "저는 말도 잘 못합니다. 아무도 제 말을 안 들을 거예요."
크라우니는 잠깐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혼자 가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내가 함께 갈게."
그 말 하나로, 해온이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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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았습니다. 권력자는 놓아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크라우니는 설득하고 또 설득했습니다. 가뭄이 와도, 어둠이 깔려도, 권력자는 버텼습니다. 마음이 굳어진 사람을 돌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 크라우니는 알면서도 끝까지 길을 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밤이었습니다.
해온이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 출발입니다. 준비하세요." 그들은 서둘러 빵을 구웠습니다. 다 굽기 전에 떠나야 해서 빵은 납작했습니다. 그래도 먹었습니다. 함께 먹었습니다. 급하고 두렵던 그 밥상이, 크라우니의 밥상이었습니다. 자유가 시작되는 식탁.
새벽에 떠났습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권력자가 마음을 또 바꿔서 병사들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해온에게 소리쳤습니다. "여기서 끝이잖아요! 도로 잡히는 게 낫겠어요!"
해온은 무서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무서웠을 겁니다. 그런데 크라우니가 말했습니다.
"해온아, 앞으로 나아가."
해온이 손을 뻗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물이 갈라졌습니다. 길이 났습니다.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이.
백성들이 걸어갔습니다. 아이들이 뛰어갔습니다. 노인들이 부축을 받으며 건넜습니다. 양쪽에 물이 벽처럼 서 있는데, 아무도 젖지 않았습니다.
크라우니는 바다를 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길을 낸 것이었습니다. 그게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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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 닿았을 때, 백성들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바다가 다시 닫혔습니다. 사슬이 있던 그 땅이, 물 너머로 멀어졌습니다.
해온이 앉아서 울었다고 합니다. 기쁨인지 안도인지 모를 눈물이.
크라우니는 그 옆에 있었습니다. 이름을 부르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거기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양 치던 도망자를 찾아와, 광야를 건너는 내내, 바다 끝까지.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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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앞에는 이제 광야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남았습니다. 사슬은 풀렸지만, 집은 아직 멀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새로 시작해야 할 것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들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구름이 되어 낮에 앞서 가고, 불이 되어 밤에 옆을 지키면서.
우는 소리를 들은 분은, 들은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바닷길이 닫히고, 단단했던 물이 다시 물로 돌아갔습니다.
해온은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등 뒤에 광야가 펼쳐져 있었고, 앞에는 처음 보는 땅이 있었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믿기지 않아 서로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슬은 사라졌는데, 몸이 아직 그 무게를 기억하는 것 같았습니다.
크라우니는 그런 그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걸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면 될까요?" 해온이 물었을 때, 크라우니의 대답은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
크라우니는 그 말을 돌에도 새기고 싶어 했습니다. 기억이 흐려지는 사람들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장 어제 바다가 갈렸는데도 내일이면 잊을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새겨 주었습니다. 딱딱한 돌에,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런데 돌에 새긴 말보다, 그 전에 먼저 한 게 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이름을 불렀습니다.
해온의 이름을, 그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의 이름을, 군중 속에 묻혀 있던 낯선 이름들까지. "너희는 내 친구다"라는 말을 이름 하나하나로 전했습니다. 사슬 아래 있을 때도, 사실 크라우니는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몰라서 늦게 온 게 아니었습니다.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 사람들이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때 오는 게 크라우니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물었습니다. "나랑 같이 살겠니?"
이상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들은 방금 노예였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앞에는 광야가 있고, 가야 할 길은 멀었습니다.
그런데 크라우니는 바로 그 광야 한가운데서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멋진 집을 짓고 난 다음에, 안정이 되고 난 다음에 — 그런 말이 없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도 그런 적 없으신가요? 다 정리되고 나면 잘 살겠다고, 다 갖춰지면 시작하겠다고. 크라우니는 그 말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엉망진창인 지금, 사슬 자국이 아직 남은 지금, 그 자리에서 먼저 손을 내밉니다.
함께 사는 길은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하늘에서 빵이 내려왔습니다. 딱 하루치씩. 더 모으면 썩었고, 덜 거두면 부족했습니다. 오늘 나눠야 했습니다. 어제 모아 둔 것으로 내일을 버틸 수 없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설계한 방식이 그랬습니다 — 매일 와서, 매일 받고, 매일 나눠야 하는 삶.
그게 함께 사는 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했습니다. 왜 미리 모아 두면 안 되냐고 사람들은 투덜댔습니다. 그 투덜거림을 크라우니는 다 들었습니다.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냥 다음 날 아침에도 빵을 내렸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
이 두 마디가 사슬보다 훨씬 다루기 어려웠습니다. 사슬은 몸을 묶지만 마음까지 묶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반대입니다.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래 사슬을 차고 있으면, 마음 쓰는 게 어떤 건지 잊어버립니다. 서로 의심하고, 조금 더 가지려 하고, 남보다 먼저 가려 합니다.
크라우니는 그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돌에 새긴 것들이 전부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쉬는 날을 지켜 — 지치도록 일하지 말고, 옆 사람도 쉬게 해. 부모를 존중해 — 네 앞에 산 사람을 가볍게 여기지 마. 거짓말하지 마 — 말이 무기가 되지 않도록. 남의 것을 탐내지 마 — 그 사람도 나처럼 소중하니까.
하나하나가 사실은 다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사슬 대신 사랑. 규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의 모양을 설명한 것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옆 사람이 다치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같이 살 수 있는지 — 크라우니가 알려 준 것들은 전부 그 방향을 향했습니다.
해온은 돌판을 받아 들었습니다.
무거웠습니다. 무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살아 낼까, 그 무게였습니다. 사람들을 돌아봤습니다. 투덜거리는 사람들, 지쳐 있는 사람들, 그래도 서로 기대어 걷고 있는 사람들.
크라우니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혼자 하라는 게 아니야. 내가 같이 있어."
광야가 끝날 때까지, 구름이 낮에 그늘을 만들었고 불이 밤에 길을 밝혔습니다. 누가 인공으로 만든 빛이 아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그냥 거기 있었습니다. 같이 걸었습니다. 친구처럼.
먼 훗날, 약속의 땅에 도착해서도, 왕이 생기고 성이 세워져도, 이 광야의 기억이 기준이 되어야 했습니다. 가장 아무것도 없던 그 시간에, 크라우니가 이름을 불렀다는 것. 빵을 내렸다는 것.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라고 말했다는 것.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광야는 아직 길었습니다. 해온은 돌판을 품에 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앞에서는 구름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빈 들에서의 사십 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열 번의 재앙, 갈라진 바다, 저 멀리 사라지는 파도 소리.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 백성은 마침내 빈 들에 섰습니다. 앞에는 모래바람뿐이었습니다. 뒤에는 이미 닫힌 바다. 옆에는 짐과 아이들과 묵은 기억들. 그리고 크라우니.
처음 며칠은 괜찮았습니다. 바다를 건넌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았으니까요. 사람들은 모래 위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했습니다. 해온도 기뻐서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배가 고팠습니다.
"여기엔 먹을 게 없어."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습니다. 그다음엔 조금 더 커졌습니다. 한 사람이 투덜대면 옆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 옆 사람도, 그 옆 옆 사람도.
"사슬에서 풀려났어도 굶어 죽으면 뭐가 다르냐." "차라리 전에 살던 곳이 나았어. 거기선 빵이라도 있었잖아."
크라우니는 그 말을 다 들었습니다. 거짓말로 기분 좋게 해주려고 듣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배가 고프다는 것, 정말로 무섭다는 것, 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크라우니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이슬이 걷히고 나자 땅에 작고 하얀 것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서리 같기도 하고, 눈 같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습니다. 달았습니다. 고소했습니다. 배가 찼습니다.
"이게 뭐야?"
아무도 이름을 몰랐습니다. 크라우니가 그냥 내려준 빵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매일 아침마다.
더우면 녹으니까 욕심 부려 많이 모아도 소용없었습니다. 딱 하루치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크라우니는 매일 나눠 주는 방식을 골랐습니다. 한꺼번에 잔뜩 주고 "됐지?"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 아침 "오늘도 왔어" 하며 두드리는 친구처럼.
물도 그랬습니다.
바위밖에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또 투덜댔을 때, 크라우니는 바위를 두드려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돌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엎드려 마셨습니다. 목이 축여지고 나서야 다시 얼굴을 들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걸 보며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이 덮었습니다. 사막의 해가 얼마나 뜨거운지 아세요? 그 뙤약볕 아래 수십만 명이 걷고 있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위를 구름으로 가렸습니다. 그늘을 직접 들고 따라다닌 겁니다.
밤에는 불기둥이 섰습니다. 사막의 밤은 낮만큼 춥습니다. 크라우니가 불이 되어 옆에서 밤을 밝혔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울 때 옆에 빛이 있으면 조금은 덜 두렵습니다. 크라우니는 그걸 알았습니다.
사십 년이 흘렀습니다.
긴 시간이에요. 그동안 투덜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왜 우리만 이 고생이야?" "크라우니, 정말 있기는 한 거야?" 그런 말들도 있었습니다.
크라우니는 여전히 매일 아침 빵을 내려 보냈습니다.
구름은 여전히 낮을 덮었습니다. 불기둥은 여전히 밤을 밝혔습니다.
그게 크라우니의 대답이었습니다. 말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그것으로.
가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냥 한방에 다 데려다 주면 안 됐을까. 왜 사십 년이나 걸렸을까. 크라우니가 능력이 없어서는 아니었을 겁니다. 어쩌면 크라우니는, 백성이 길을 걷는 동안 옆에 있고 싶었던 거 아닐까요. 도착보다 함께 가는 시간을 더 아꼈던 것처럼.
빵을 직접 손에 들고 내려다보며 "오늘도 있어, 나" 하고 말하는 방식으로.
해온이 늙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고, 다음 세대가 그 뒤를 이어 걸었습니다. 모래 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슬을 직접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하얀 빵을 주웠습니다. 그게 크라우니라는 것을 알고 자랐습니다.
빈 들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멀리, 아직 보이지는 않았지만, 약속한 땅이 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오래전 미르에게 별을 세어 주던 그 밤에 약속한 곳이었습니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크라우니는 잊지 않았습니다.
약속은 느려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솔이 이제 앞에 서게 될 차례였습니다.
빈 들에서 사십 년을 살았습니다.
하늘 빵을 먹고, 바위 물을 마시고, 구름이 앞에서 길을 안내했습니다. 투덜대던 날도 많았지만 크라우니는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거의 다 왔어" 라고, 몇 번이나 가슴속에 속삭이며.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이 왔습니다.
해온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눈을 감던 날, 크라우니는 한솔의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말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한솔아."
한솔은 알았습니다. 이제 자기 차례라는 것을. 강 건너편에 오래된 약속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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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넓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물이 불어나 있었습니다. 몇만 명이 건너야 하는 강이었는데, 다리도 없었고 배도 없었습니다. 한솔이 앞장서서 발을 내디디자, 그때서야 물이 갈라졌습니다.
크라우니는 늘 그런 순서를 좋아했습니다. 먼저 걸어야 물이 물러나는.
백성이 건넜습니다. 발바닥에 닿은 강바닥이 마르고 단단했습니다. 마치 오래전 바다를 걸어 건넌 것처럼. 어르신들은 그 이야기를 손자들에게 했을 겁니다. "우리 할머니가 그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우리가 이 강을 건넌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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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에 들어섰을 때, 첫 번째로 가로막은 것은 높은 성벽이었습니다.
성이름은 예리코가 아닙니다. 그냥 높은 성이었습니다. 돌이 두껍고, 안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습니다. 한솔이 병사들을 이끌고 올라가 그 성을 어떻게 공략할지 의논할 때, 크라우니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냥 돌아."
한솔이 물었습니다. "돌기만 하면 됩니까?"
"응. 걸으면서 나팔을 불고. 일곱 날을."
병사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벽을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불을 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돌라는 게. 그런데 한솔은 그대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강을 건널 때도, 광야에서도, 크라우니의 방법은 늘 이해보다 먼저였으니까요.
엿새를 돌았습니다. 성안에서 내려다보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비웃었을 겁니다. 나중에는 조금 불안했을 겁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 모두가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벽이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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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니는 담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잘 압니다.
힘으로 밀어서가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무너뜨리려 했다면 그 벽은 오히려 더 두꺼워졌을지도 모릅니다. 크라우니의 방식은 늘 그랬습니다. 걸어라, 불어라, 소리쳐라. 내가 나머지를 한다.
한솔이 그 무너진 돌무더기 앞에서 한참 서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십 년을 기다리고 걸었고, 해온을 잃었고, 강을 건넜고, 이제 마침내 이곳에 서 있습니다. 발아래 이 땅이 그 긴 약속의 끝이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순간 무슨 말을 했을까요. 아마 화려한 선언 같은 건 없었을 겁니다. 그냥 조용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다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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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에는 쉼이 있었습니다.
광야에는 없던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매일 어디에 천막을 치고, 무엇을 먹고, 어디로 가야 할지 신경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무를 심을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같은 자리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약속한 쉼은 게으름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뿌리 내릴 수 있는 것. 처음부터 지으신 분이 원한 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 사람이 떠돌지 않고, 이름 부를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저녁에 같이 걸을 수 있는 집.
단과 리아가 처음에 살았던 그 동산처럼.
크라우니는 아직 그 처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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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솔도 알았습니다. 이 쉼이 끝은 아니라는 것을.
땅은 얻었지만 마음에 아직 무너지지 않은 벽들이 있었습니다. 옛날 일을 잊지 못하는 것들, 서로 믿지 못하는 것들, 크라우니가 아닌 다른 것에 기대고 싶어지는 것들.
크라우니는 그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야를 지나온 백성들 중에서, 머잖아 노래하는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막내 목동 하나가, 아무도 예상 못 한 방식으로 거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동은 크라우니 이야기를 노래로 남겨서, 우리가 지금도 그 노래를 읽습니다.
한솔과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온 지 세월이 흘렀습니다. 뿌리가 내렸고, 집이 생겼고,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백성은 왕을 원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들에게 왕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크라우니가 눈여겨 두고 있던 사람은 왕궁에 있지 않았습니다. 들판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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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막내였습니다.
형들이 있었고, 형들은 다들 크고 씩씩했습니다. 싸움에 나갈 나이가 되면 형들은 갑옷을 입고 군대로 향했습니다. 노을은 남아서 양을 쳤습니다.
심심한 일처럼 보이죠. 하지만 노을에겐 그렇지 않았습니다. 양들이 풀을 뜯는 동안 노을은 노래했습니다. 구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바람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 — 그런 것들을 보며 크라우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크라우니가 대답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하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노을은 그게 좋았습니다.
어느 날 집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예언자 같은 눈빛을 가진 노인이었습니다. 형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는데, 번번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아들이 이게 전부요?"
아버지가 머뭇거리며 대답했습니다. "막내가 하나 더 있는데, 들판에 있습니다."
노인이 말했습니다. "불러 오십시오."
노을은 볕에 그을린 얼굴로 달려왔습니다. 냄새가 좀 났을 것입니다. 양 틈에서 하루를 보낸 아이니까요. 노인은 노을을 보자마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기름을 부었습니다.
아무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노을 자신도요. 하지만 크라우니는 알고 있었습니다. 키가 얼마인지,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 그런 건 크라우니가 보는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본 것은, 들판에서 혼자 노래하던 그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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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두 군대가 맞섰습니다.
반대편 진영에서 거인이 나왔습니다. 이름은 큰뫼. 정말 컸습니다. 목소리부터 땅을 흔들었습니다. "누가 나와 붙겠느냐! 겁쟁이들아!"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형들도요.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이 노을이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러 왔습니다. 형들 편에서 거인의 고함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 뭔가 이상하다고. 왜 아무도 나가지 않지? 우리 편에 크라우니가 있잖아.
노을이 손을 들었습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형들이 말렸습니다. 왕도 말렸습니다. "너는 아이잖아. 저자는 전쟁을 먹고 자란 자다."
노을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들판에서 양을 치다가 사자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곰을 만난 적도요. 그때마다 크라우니가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그는 갑옷도 칼도 받지 않았습니다. 개울에서 돌 다섯 개를 집었습니다. 그리고 걸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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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뫼가 노을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비웃음이었습니다. "막대기 들고 나왔나? 내가 개냐?"
노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걸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칼과 창을 믿고 나왔겠지만, 나는 크라우니를 믿고 나왔습니다. 이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돌을 던졌습니다.
딱 한 개였습니다.
큰뫼가 쓰러졌습니다.
이긴 것은 힘이 아니었습니다. 돌도 아니었습니다. 들판에서 혼자 노래하며 쌓아온 믿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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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결국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어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잘못한 날에도 — 크라우니를 향해 노래했습니다. 완벽한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때론 눈물 섞인 노래였고, 때론 억울함이 담긴 노래였습니다. 그래도 크라우니는 그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꾸민 말보다 진짜 마음을 좋아하는 분이니까요.
크라우니가 노을을 왕으로 세운 건 그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작은 자를 들어 올린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키도, 집안도, 경험도 — 크라우니의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크라우니는 늘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를 봤습니다. 들판 끝, 막내, 냄새 나는 아이.
그 아이에게 이름을 불러 주는 분이 크라우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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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혹시, 형들이 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느낌인가요?
기억해 두세요. 크라우니는 들판을 봅니다. 거기서 혼자 노래하던 사람을 기억합니다.
노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왕이 된 노을도 잘못하고 숨는 날이 옵니다. 그때 크라우니가 또 어떻게 하는지는 — 다음 장에서 이어집니다.
노을은 왕이 되었지만, 왕이 되고 나서도 오래 목동이었습니다.
들판에서 별을 세던 시간, 크라우니께 노래를 올리던 밤 — 그것이 노을의 진짜 얼굴이었습니다. 왕홀보다 수금이 먼저였고, 명령보다 노래가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크라우니는 노을을 사랑했습니다. 대단해서가 아니라, 솔직했기 때문에.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노을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성이 크고 넓어질수록, 왕홀이 무거울수록, 노을은 자꾸 자기를 잊어 갔습니다. 들판의 바람도, 크라우니와 도란도란 나누던 저녁도, 어느 날부터인가 기억 속 먼 곳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봄날 저녁,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숨기고 싶었습니다. 들키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마음이 어디서 온 건지도 몰랐습니다. 단과 리아가 동산에서 나뭇잎을 잡아 가렸던 것처럼, 노을도 자기 마음속에 두꺼운 무언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러움이라는 건 처음엔 작은 돌멩이 같지만, 숨길수록 벽이 됩니다.
크라우니는 알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척 두었던 게 아닙니다. 노을이 자기 발로 돌아올 시간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기다리는 내내, 이름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예전처럼 "노을아" 하고 한 번만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노을이 마침내 무릎을 꿇은 건, 밤이 깊어서였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방에서, 노을은 오래 울었습니다. 왕이 운다는 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노을의 가장 솔직한 얼굴이었습니다. 들판에서 별을 보며 노래하던 그 아이, 그 아이가 다시 거기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다섯 글자였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다섯 글자를 아주 오래 기다렸습니다.
크라우니가 노을에게 달려온 건, 야단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안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팔을 벌리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잘못이 크다고 생각해서 멀찍이 선 것도 아니었고, 먼저 사과를 더 받아 내려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노을이 돌아서는 순간 — 이미 거기 있었습니다.
"오래 찾았어."
부드러운 말이었습니다. 꾸짖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먼 곳을 헤매다 돌아온 친구를 맞는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노을은 더 많이 울었습니다. 자기가 지은 잘못의 크기만큼 울었고, 기다려 준 사랑의 크기만큼 울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울음을 막지 않았습니다. 모두 흘러내리게 두었습니다. 사랑은 때때로 다 쏟아지게 기다려 주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부서진 마음은 그날 밤 조금씩 붙기 시작했습니다.
조각난 그릇이 붙을 때 이음새가 남듯, 노을의 마음에도 자국이 남았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자국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손으로 짚었습니다.
"이 자리가 내가 너를 붙들었던 자리야."
그날부터 노을의 노래는 전보다 더 깊어졌습니다. 왕이어서가 아니라, 부서지고 붙들린 사람이어서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는 이름도, 왕홀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닿았습니다. 잘못을 숨기다 지친 사람들이, 노을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도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크라우니가 멀지 않다는 걸, 돌아서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걸 — 노래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을은 완벽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올 줄 아는 왕이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사랑한 건 그 부분이었습니다.
잘못 앞에서 숨지 않고, 결국 돌아서는 것.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 솔직함이 크라우니의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노을이 늙어 가는 동안, 크라우니는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노을 다음에는 지혜를 구하는 아이가 올 것이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크라우니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 그 아이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었습니다.
노을이 잘못했을 때, 크라우니는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돌아선 노을의 부서진 마음을 받아 안았고, 다시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 사랑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노을의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배우며 자랐습니다.
아들의 이름은 슬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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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가 왕이 된 날 밤, 크라우니가 꿈속에 왔습니다. 대단한 자리에서 내려다보듯 온 게 아니라, 마치 오랜 친구가 슬쩍 어깨를 건드리듯.
"무엇을 주면 좋겠니?"
이 말 한 마디에 슬기는 오래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노을은 노래를 남겼습니다. 그 아버지를 보며 자란 슬기는 알고 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원하는 건 아름다운 대답이 아니라 솔직한 대답이라는 것을.
"저는 어립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지혜를 주세요. 사람들 사이에서 잘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을."
돈을 달라지 않았습니다. 오래 살게 해 달라지 않았습니다. 원수를 없애 달라지도 않았습니다.
크라우니는 기뻤습니다. 슬기가 지혜로운 답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슬기가 먼저 "제가 어립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작다는 것을 아는 사람 — 그 사람에게 크라우니는 언제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네가 그것을 구했으니 주겠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함께 줄 것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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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의 나라는 번성했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분쟁이 끝났고, 그의 판단을 들으러 먼 나라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금과 향신료가 실린 배가 항구에 줄을 섰습니다. 음악이 흐르고, 시가 넘쳤습니다.
그리고 슬기는 크라우니의 집을 지었습니다.
돌과 백향목으로 쌓아 올린, 세상에 없던 집이었습니다. 지붕마다 금을 입혔고, 안마당에는 커다란 바다 모양의 그릇이 놓였습니다. 지으는 데 칠 년이 걸렸습니다. 다 짓고 나서 슬기는 사람들 앞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이 집에 크라우니의 이름을 두소서."
그때까지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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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천천히 왔습니다.
집이 완성된 뒤, 슬기의 눈은 점점 건물을 향했습니다. 또 다른 건물을, 더 큰 궁을, 더 많은 것을 지으려 했습니다. 크라우니와 저녁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시간은 줄었고, 대신 도면과 계산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나라 밖에서 온 여인들이 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섬기던 다른 신들을 위한 자리도 하나둘 생겼습니다. 크라우니는 보고 있었습니다. 말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말했습니다. 여러 번. 다만 슬기의 귀가 이미 다른 데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식으면, 목소리가 들려도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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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는 나중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이룬 모든 것을 보니, 다 헛되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것은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져 보고, 다 써 보고, 끝에 가서야 슬기는 알았습니다. 크라우니가 원한 건 건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 꿈속에서 "무엇을 주면 좋겠니?" 하고 물었을 때, 크라우니가 바란 건 하나였습니다.
슬기의 마음.
집이 생기기 전부터, 지혜가 쌓이기 전부터, 크라우니는 그냥 슬기가 좋았습니다. 아버지 노을을 사랑했듯, 아들 슬기를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건물의 크기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크라우니의 집은 돌로 지은 게 아니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원하는 집은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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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는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지혜로운 말들, 아름다운 노래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 하지만 가장 솔직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다 헛되다"는 그 한 줄이, 어쩌면 그의 일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문장이었을지 모릅니다.
크라우니는 그 문장도 좋아했습니다. 화려한 건물 앞에서 쓴 노래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쓴 고백이었으니까요.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슬기는 끝에 가서야 다시 기억했습니다. 꿈속에서 "무엇을 주면 좋겠니?" 하고 물어 준 그 목소리. 자기가 작다고 했을 때 기뻐하던 그분.
그분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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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의 나라가 저물 무렵, 나라 곳곳에서 새로운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왕들이 잊어버린 것을, 사람들에게 다시 전하려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때로는 왕궁 문 앞에서 외쳤습니다.
크라우니의 마음을 전하려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슬기가 지은 집은 아름다웠습니다.
돌이 반짝였고, 뜰에는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런데 크라우니는 그 집보다 한 가지를 더 원했습니다. 집 안에 머무는 마음. 집을 짓는 손보다 이웃을 돌보는 손.
슬기의 아들들이, 그 아들들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습니다. 왕좌는 남았지만 마음은 점점 달라졌습니다. 크라우니가 좋아하던 것들이 조금씩 지워졌습니다. 약한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도, 아무도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습니다. 시장에서 흥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굶은 아이가 옆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장면들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화가 난 게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길을 잃을 때처럼, 그냥 오래오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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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이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말을 잘하는 것도, 글을 아는 것도, 왕 앞에 서본 것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동네에서 조용히 살던 사람.
크라우니가 말했습니다. "가서 말해 줘."
외솔이 물었습니다. "제가요?"
"응, 네가."
그게 전부였습니다. 거창한 설명도, 성공을 약속하는 말도 없었습니다. 크라우니는 늘 그랬습니다. 훌륭한 사람을 고르는 게 아니라, 부르는 사람이 가는 것. 가면 함께 가 주는 것.
외솔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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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이 외친 말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약한 이를 돌보라."
그게 다였습니다. 여러 장의 두루마리가 아니었습니다. 신비한 말도, 철학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한 마디였습니다.
왕의 신하들은 비웃었습니다. 어떤 날은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어떤 날은 돌이 날아왔습니다. 외솔은 그래도 거리로 나갔습니다. 시장 어귀에서, 성문 앞에서, 그냥 서서 말했습니다.
"약한 이를 돌봐 주세요. 그게 크라우니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듣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외솔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크라우니가 먼저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포기하는 것을 크라우니에게서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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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만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시간, 비슷한 땅에서, 여러 사람이 같은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마다 다른 동네에서, 다른 말투로, 같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어떤 이는 가물어 죽어 가는 강가에 서서 외쳤습니다. 어떤 이는 궁궐 계단 앞에서 왕을 향해 말했습니다. 무섭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발이 떨리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그래도 갔습니다.
크라우니가 보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용감한 사람들이 아니라, 무서워도 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에는 늘 크라우니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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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물어볼게요.
외솔이 그 거리에 혼자 서 있던 날, 크라우니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멀리서 지켜봤을까요? 아니면 아예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크라우니는 외솔 곁에 있었습니다. 외솔이 말할 때, 그 목소리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외솔이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그 뒷모습을 따라가며 함께 걸었습니다.
단과 리아와 저녁을 걷던 그 크라우니가, 외솔과도 같은 방식으로 걸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호소합니다. 명령이 아니라 청으로. 벌이 아니라 마음으로.
"제발, 약한 사람 좀 봐줘. 그게 나랑 함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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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외치는 사람들은 왔다가 갔습니다.
어떤 이는 이름이 남았고, 어떤 이는 이름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크라우니는 그들을 다 기억했습니다. 왕좌에 오른 이들의 이름보다 더 또렷하게.
이름 부르기를 좋아하던 크라우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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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긴 외침이 이어지는 동안, 백성들은 점점 힘겨워졌습니다. 성은 흔들렸고, 두려움이 깊어졌습니다. 크라우니가 멀게 느껴지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때, 크라우니는 이미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말로는 닿지 않는 곳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외솔 같은 친구들이 목이 쉬도록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크라우니가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이 무너지는 이야기는 아직 남아 있었고, 그다음 이야기도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외솔이 외쳤어도 왕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약한 이를 돌보라는 말은 벽에 부딪혀 돌아왔고, 돌아온 말은 그냥 흩어졌습니다. 외치는 이들은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조용해졌습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무서운 종류의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먼지가 하늘까지 올라갔습니다. 돌들이 굴렀습니다. 오래 서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쓰러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아이들이 울었습니다. 어른들은 울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빠르게 일어난 일이라, 슬퍼할 겨를도 없이 끌려가야 했습니다.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먼 땅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봤지만 성은 이미 없었습니다. 연기만 피어올랐습니다. 누군가가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었다"는 노래를 중얼거렸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너무 슬퍼서, 노래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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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다들 앉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물을 바라봤습니다. 어떤 이는 그냥 땅을 봤습니다. 이름을 잃어버린 것 같은 얼굴들이었습니다. 집이 있던 사람, 이름이 있던 사람, 매일 저녁 돌아갈 곳이 있던 사람들이,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크라우니가 우리를 잊으신 거 아닐까."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목소리가 작았습니다. 하지만 다들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더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조용히, 무언가가 곁에 있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거기 있었습니다.
성 안에 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강가에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에, 먼지 냄새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슬픈 사람들 사이에, 노래도 못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
"너를 잊지 않았다."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들렸습니다. 마음 가장 안쪽 어딘가에, 이름을 부르듯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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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니는 따라왔습니다.
백성이 끌려가는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 옆에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성이 있을 때만 함께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성이 무너져도, 먼 땅으로 가야 해도, 크라우니의 사랑에는 경계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든 별을 지은 분이 왜 그 먼지 나는 길을 걸었을까요. 왜 포로들 사이에 앉아 있었을까요.
그게 크라우니였으니까요. 사랑이 그런 거니까요.
사랑은 좋을 때만 곁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너졌을 때, 끌려갈 때, 노래가 나오지 않을 때 — 그때 더 가까이 옵니다. 먼 땅이라도, 거기까지 따라옵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그 어둠 속에 먼저 들어와 있습니다.
크라우니는 먼 땅 한가운데서도 속삭였습니다.
"나는 여기 있다. 너도 여기 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도 함께 있는 거다."
강가에서 울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래도 됩니다. 사랑은 믿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은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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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세상이 다 너를 잊어도, 크라우니는 네 이름을 기억합니다. 어떤 땅에서, 어떤 강가에서, 어떤 먼지 속에서 울고 있든. "나는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고 외솔이 전한 말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때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먼 땅에 와서야 조금씩 알 것 같았습니다.
성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왕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노래가 나오지 않는 계절도 옵니다.
그래도 크라우니는 따라옵니다.
어둠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어둠 안으로. 슬픔이 끝난 다음이 아니라, 슬픔 한가운데로. 그게 이 사랑이 다른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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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땅에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세월 동안 크라우니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백성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무너진 것들 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노래가, 아주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도 들려왔습니다. 크라우니가 직접 데려가겠다고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사랑이었습니다. 그 긴 기다림 내내, 크라우니는 가지 않았습니다.
통사 18장 완료
강가에 앉아 울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이 무너지고, 집이 불탔습니다. 끌려간 이들은 먼 땅의 강가에서 "어떻게 노래를 하지?" 하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울음 한 방울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강가까지 따라갔으니까요.
그런데 오래지 않아, 뭔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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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도 됩니다."
말을 전해 줄 사람이 있었습니다. 외솔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외치는 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머나먼 왕의 마음을 돌려, 떠나온 길을 거꾸로 걷게 만들었습니다. 왕의 마음? 아닙니다. 크라우니가 먼저 그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크라우니는 늘 그런 식으로 일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서, 아주 조용히.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아야 했습니다. 남은 자들이 돌아와 손을 댔습니다. 돌이 무거웠고, 해는 뜨거웠고, 주변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저거 다 쌓기도 전에 또 무너질걸." 하지만 손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크라우니가 그 손을 잡고 있었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돌을 쌓는 동안 크라우니가 속삭였습니다.
"나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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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적 있는 집을 다시 짓는 사람은, 망치질 한 번에도 움찔합니다. 또 무너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남은 자들도 그랬습니다. 밤에는 기억이 돌아왔습니다. 성벽이 허물어지던 소리, 불길, 끌려가는 사람들. 그 기억이 손을 떨게 만들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건 크라우니의 오래된 방식입니다. 단을 부를 때도, 미르를 부를 때도, 도망친 도담을 찾을 때도 — 크라우니는 항상 이름을 먼저 불렀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무리 속에 섞인 게 아니라, 너 한 사람을 본다는 뜻입니다.
"무너진 게 끝이 아니야."
크라우니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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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이 올라가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크라우니가 처음에 친구를 만들던 이야기, 먼 길을 헤매던 미르에게 별을 세어 주던 이야기, 구덩이에서 새벽이 살아남던 이야기. 듣는 사람들은 울었습니다. 슬퍼서가 아닙니다. "그 이야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그게 맞았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오랜만에 함께 둘러앉아 먹었습니다. 크라우니가 좋아하는 모습이 있다면 딱 이런 겁니다. 갈라진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 앉아, 빵을 나누는 것. 무너진 성벽보다 이 식탁이 먼저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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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습니다.
다시 세워졌는데도 뭔가 아직 채워지지 않은 느낌. 성벽은 올라갔고, 식탁은 차려졌고, 이야기를 다시 읽었는데도 — 마음 어딘가에 빈 공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남은 자들은 그걸 말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누군가를.
외치는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 거예요. 거리를 끝낼 분이."
거리. 2장에서 생긴 그 거리. 단과 리아가 숨은 날부터 생긴 그 간격. 성벽을 다시 쌓는다고 없어지지 않는 것. 다 같이 식탁에 앉아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것.
그 거리를 끝낼 분이 온다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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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고요가 흘렀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들 웃음도 있었고, 시장 소리도 있었고, 밤바람도 있었습니다. 다만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었습니다. 예언이 멈춘 게 아닙니다. 다음 말을 하기 전의 고요 — 숨을 고르는 것처럼, 무대 막이 오르기 직전처럼.
크라우니도 기다렸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 크라우니가 준비했습니다. 직접 올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세상을 지었던 그분이, 이번에는 가장 가까이 오려고 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가장 작은 모습으로.
별을 지은 분이 별빛 아래 태어나려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아직 몰랐습니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가, 벌써 알고 있는 것처럼 고요했습니다. 바람이 자기 전의 고요가 아니라,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기 직전의 고요였습니다.
문이 열릴 참이었습니다.
19장이 끝날 때,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성벽도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뭔가가 빠져 있었습니다. 크라우니와 함께 걷던 그 저녁 같은 것, 단과 리아가 알던 그 가까움 같은 것. 사람들은 오래된 약속을 붙들며 기다렸습니다. 언젠가, 크라우니가 직접 오신다고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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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긴 고요 속에 길벗이 나타났습니다.
별로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강가에 살았고, 입은 옷도 거칠었고, 먹는 것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할 때만큼은 달랐습니다. 목소리가 아니라 마음을 건드렸으니까요.
길벗이 말했습니다. "준비하세요. 그분이 오십니다."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어디서요? 언제요? 어떻게요?
길벗은 그냥 웃었습니다. "곧요.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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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작은 마을에 보미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보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 누구나 아는 평범한 얼굴, 평범한 이름. 그런데 어느 날, 크라우니가 보미를 찾아왔습니다. 조용히, 그리고 직접.
"두려워하지 마세요."
크라우니는 늘 그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단과 리아에게도, 바우에게도, 미르에게도 —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두려워하지 마세요"였습니다. 크라우니는 무섭게 나타나는 분이 아니거든요.
"보미, 당신이 아이를 낳을 거예요. 그 아이가 저예요."
보미는 한참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럴 만하죠. 별을 지은 분이 내 품에 아기로 온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런데 크라우니가 덧붙였습니다. "직접 오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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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세요.
크라우니는 이미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멀리서도 들었고, 멀리서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도 직접 오겠다고 한 이유가 뭘까요?
사랑이 그렇습니다. 멀리서 보내는 것과 직접 찾아오는 것은 다릅니다. 크라우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았습니다. 배가 고프면 어떤 기분인지, 무시당하면 얼마나 속이 쓰린지, 혼자 울 때 그 방이 얼마나 긴지. 알았지만, 직접 겪어 보고 싶었습니다. 친구로, 곁에서.
그래서 아기로 왔습니다. 왕궁이 아니라 외양간으로.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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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미는 밤새 아이를 품었습니다.
창밖에 별이 유난히 밝았습니다. 그 별들, 크라우니가 지었던 바로 그 별들이었습니다. 이제 그 별을 지은 분이 보미의 팔 안에 있었습니다. 아주 작게, 아주 가깝게.
아기는 보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옛날에 단과 리아가 처음 눈을 뜰 때 크라우니의 얼굴을 보았던 것처럼, 이번엔 크라우니가 보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같은 한 분이었습니다.
먼 곳에서 세상을 지으셨던 분, 우는 백성의 소리를 들으셨던 분, 강가에서 "잊지 않았다" 속삭이셨던 분 — 이제 보미의 품에 아기로 온 그 분. 다른 분이 아닙니다. 가까움의 모양이 달라졌을 뿐, 언제나 같은 크라우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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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은 강가에서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할 일을 다 한 사람의 얼굴로, 길벗은 조용히 웃었습니다. 길을 연 사람은 길을 걷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크라우니가 직접 걸을 테니까요.
그 길에서 크라우니는 모두가 피하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것입니다. 이름을 불러 줄 것입니다. "어디 있니?" 하고 찾아다닐 것입니다. 먹을 것 없는 사람과 식탁을 나눌 것입니다. 문 앞에 서서 두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상상 못 한 끝까지 내려갈 것입니다.
그것이 다음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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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 아기가 첫날 밤, 보미의 품에서 잠든 그 순간 — 별을 지은 분이 숨소리를 내며 잠든 그 순간, 크라우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기뻤을 거예요. 드디어 직접 올 수 있어서. 드디어 이름을 불러 줄 수 있는 목소리가 생겨서. 드디어 손을 내밀 수 있는 손이 생겨서.
사랑이 늘 원했던 건 그겁니다. 멀리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걷는 것.
아기로 온 크라우니가 자라, 걷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 사람들은 슬슬 이상한 걸 눈치챘습니다.
보통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끼리 다닙니다. 큰 집에 들어가고, 큰 자리에 앉고, 중요한 사람만 만납니다.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크라우니는 자꾸 반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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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세요?
돌은 고기잡이였습니다. 손이 거칠고,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실수를 자주 하는 사람. 스스로도 알았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랑 같이 다닐 분이 아닌데." 그러면서도 따라갔습니다. 크라우니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 목소리가 뭔가 달랐거든요. 무시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
"따라와."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돌은 배를 두고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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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는 세금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금 걷는 사람은 두 배로 미움을 받았습니다. 외세에 빌붙어 제 동족에게 세금을 뜯으니까요. 세이도 그걸 몰랐겠습니까. 시장 골목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길을 비키는 느낌, 익숙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
그날 크라우니가 세이의 세무서 앞을 지나가다 멈췄습니다.
사람들은 설마 했습니다. 설마 저기 들어가진 않겠지.
크라우니는 들어갔습니다.
"오늘 저녁, 나랑 같이 먹자."
세이는 손을 멈추고 크라우니를 봤습니다. 비웃는 건지 확인하려고. 비웃는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세이는 그날 처음으로 식탁을 차려 누군가를 초대했습니다. 크라우니를. 그리고 크라우니를 따라온 여러 사람을. 그렇게 미움받던 집에 처음으로 웃음소리가 들어왔습니다.
식탁이 그런 겁니다. 크라우니가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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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의 이야기는 더 조용했습니다.
나래는 오래 아팠습니다. 몸도, 마음도. 세상이 정한 규칙 때문에 가까이 오면 안 되는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눈총을 받았고, 손이라도 닿을까 봐 모두가 슬쩍 몸을 피했습니다.
나래는 사람들 뒤에서 생각했습니다. "저분 옷자락만 스쳐도."
군중이 워낙 많아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밀고 들어갔습니다. 마지막 힘으로. 손끝이 닿는 순간, 뭔가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크라우니가 멈추고 물었습니다. "누가 나를 만졌니?"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군중인데요. 크라우니는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다 나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나래는 무서워서 엎드렸습니다. 규칙을 어겼으니까요. 혼날 줄 알았습니다.
크라우니가 말했습니다. "일어나."
혼내는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 오래 기다린 친구를 드디어 찾은 것 같은 목소리. "괜찮아. 어디 있었니?"
나래는 그때 울었습니다. 오랫동안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
크라우니는 어느 날 저녁, 가까운 친구들과 같이 앉아서 말했습니다.
"있잖아.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종은 주인이 무슨 마음인지 몰라. 그런데 나는 내 마음을 다 너희한테 말했잖아."
돌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뭐예요?"
"친구."
한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그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뭔가가 콱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이 나려는 걸 참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별을 지은 분이, 직접 아기로 내려온 분이, 지금 이 낡은 방에 앉아서 자기를 친구라고 부른다.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서.
---
당신한테도 묻고 싶습니다.
혹시 스스로 "나 같은 사람은 안 되겠지" 하고 먼저 물러선 적 있나요? 돌처럼 자기가 거칠다고, 세이처럼 남들이 피한다고, 나래처럼 규칙을 어겼다고.
크라우니는 그쪽으로 먼저 걸어갑니다. 항상.
문을 두드리는 쪽은 크라우니입니다. 열기만 하면 됩니다.
---
그날 저녁이 끝날 무렵, 크라우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목소리에 뭔가 무거운 것이 실린 것 같았습니다.
"끝까지 같이 있을게."
친구들은 그게 얼마나 큰 말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오면, 그 '끝까지'가 어디까지인지 보게 될 것이었습니다.
가린이 나간 뒤, 방 안이 달라졌습니다.
달라진 게 없는 것도 같았습니다. 등잔은 여전히 켜져 있고, 식탁 위 빵은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크라우니는 알았습니다. 방금 나간 발소리가 무엇을 향하는지를.
그래도 크라우니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돌이 물었습니다. 조용히,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어디 가는 건가요?" 크라우니는 대답 대신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돌아." 그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돌은 그 두 글자 안에 무언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 꽉 쥔 손 같은 것이요.
그날 밤은 길었습니다.
크라우니는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동산으로 갔습니다. 풀 냄새가 났습니다. 오래전 단과 리아와 저녁마다 걷던 곳과 비슷한 냄새. 그때는 이름을 불러도 달려오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크라우니는 이마를 땅에 댔습니다.
무릎이 아니라 이마를요. 별을 지은 분이, 자기가 빚은 흙 위에 이마를 대었습니다. 뭔가 웅장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오래된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처럼, 아주 낮고 솔직한 말들이었습니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너무 아팠으니까요.
그런데 크라우니는 머물기로 했습니다.
왜냐고요? 그게 사랑이니까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 아닙니다. 아픈데도 남는 선택입니다. 크라우니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 처음 단과 리아를 지을 때부터 알고 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사랑은 떠나지 않는 겁니다. 끝까지.
새벽이 되기 전에 그들이 왔습니다.
가린도 있었습니다. 등불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크라우니를 가리켰습니다. 크라우니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 아시잖아요, 밤하늘 별을 전부 지은 분이 거기서 발을 묶여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걸요. 그런데 크라우니는 그냥 섰습니다.
"나야."
두 글자였습니다. 가린에게, 등불 든 사람들에게, 크라우니가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나야, 내가 여기 있어. 찾고 있었다면 왔으니까 됐다, 는 것처럼.
그다음부터는 빠르게 흘렀습니다.
끌려가고, 물음을 받고, 때를 맞고. 크라우니는 말이 없었습니다. 대단한 분이 아무 말 않고 맞는다는 게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더 대단한 겁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 이길 수 있는데 지는 것. 그건 약한 게 아니라 — 더 깊은 무언가를 향해 내려가는 거니까요.
내려가고 또 내려갔습니다.
가장 낮은 데까지. 나무로 만든 것에 팔을 벌리고, 못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순간에도 크라우니는 소리를 질렀는데 —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말이었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누구한테 한 말이냐고요? 크라우니는 같은 한 분입니다. 가까운 쪽이 멀리 있는 쪽에게 말한 겁니다. 지금 이 아픔이 이들의 잘못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오래전 새벽이라는 아이가 자기를 구덩이에 던진 형들을 식탁에 앉혔을 때처럼 — 나쁘게 한 것을 좋게 바꾸어 달라고.
그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올린 가장 큰 말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단과 리아와 나란히 걷던 저녁 바람이 생각났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아직 불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생기던 날 처음 분 그 바람이, 가장 낮은 데까지 내려온 크라우니 곁에서 여전히 불고 있었습니다.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크라우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걸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건 — 아직 거기 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돌도, 나래도,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다른 이들도.
날이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
"끝까지 같이 있을게."
그 말이 얼마나 깊은 뜻이었는지, 친구들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조금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서야, 제대로 알았습니다.
---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은 나래였습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달렸습니다. 이른 새벽이라 아직 어둑어둑했습니다. 돌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안이 비어 있었습니다. 나래는 멍하니 서서 빈 자리를 바라봤습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 있니?"
나래가 돌아봤습니다.
크라우니였습니다.
나래는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이름을 불렀습니다. 크라우니가 대답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습니다.
"가서 친구들한테 말해 줘. 내가 여기 있다고."
---
돌은 믿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직접 눈으로 봤는데도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으니까요. 돌은 그날 하루 종일 뭔가 뒤엉킨 채로 있었습니다. 기쁜데 무서웠고, 반가운데 어딘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장 힘든 날, 자기가 제일 먼저 도망쳤으니까요.
저녁이 되어 친구들이 문을 잠그고 모여 있을 때, 크라우니가 들어왔습니다.
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안녕."
크라우니가 말했습니다. 별로 극적이지 않은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냥 오랜만에 친구 집 들어오듯이. 그런데 그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굳어 버렸습니다.
크라우니가 돌을 봤습니다. 돌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돌."
불렀습니다. 이름을.
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괜찮아."
두 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두 글자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 있었는지 — 도망친 것, 부서진 것, 다시 시작하는 것 — 전부 들어 있었습니다. 돌은 그때 울었습니다. 소리 없이.
---
며칠 뒤, 크라우니는 호숫가에서 돌과 친구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밤새 고기를 못 잡은 날이었습니다.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았고, 배는 빈 채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저쪽으로 던져 봐."
시키는 대로 했더니 그물이 무거워졌습니다.
돌은 그 순간 알아봤습니다. 배에서 바로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헤엄쳐서 먼저 닿았습니다. 숨이 차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크라우니는 이미 숯불 위에 생선을 굽고 있었습니다. 빵도 옆에 있었습니다.
"와서 먹어."
아침이었습니다. 식탁이었습니다. 죽음 뒤에도, 빈 그물 뒤에도, 크라우니의 첫 말은 언제나 식탁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크라우니가 돌에게 세 번 물었습니다. "나 좋아해?" 세 번 다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돌은 세 번 다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알잖아요, 좋아하는 거." 그러면 크라우니는 세 번 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내 친구들 곁에 있어 줘."
가장 힘든 날 세 번 도망친 것을, 세 번 묻고 세 번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 번, 같은 일을 맡겼습니다. 크라우니는 그런 식으로 사랑했습니다. 지운 다음 없던 일로 하지 않고, 그 자리 위에 새 걸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
그 뒤로 크라우니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고, 문을 잠가도 들어오고, 이름을 부르면 들렸습니다. 어느 날은 새벽 안개 속에서, 어느 날은 길을 걷다가, 어느 날은 빵을 떼는 순간에 — 친구들은 자꾸 크라우니를 알아봤습니다. 그때마다 그 자리가 식탁이 되었습니다.
죽음은 크라우니를 가두지 못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무덤이 크라우니를 넣어 두지 못했습니다. 대단한 논리가 필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냥 — 한 자리에 가둘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모두의 이름을 알고, 모두의 곁으로 걸어오는 분이, 어떻게 한 곳에만 계시겠습니까.
---
당신한테도 말하고 싶습니다.
그날 나래가 빈 자리를 보며 서 있을 때처럼, 혹시 지금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이 드나요? 기다렸는데 없는 것 같은 느낌.
그때 뒤에서 물어볼지 모릅니다.
"어디 있니?"
그 목소리가 들리거든, 돌아보세요.
크라우니는 밖에 있지 않습니다. 벽 너머, 구름 위, 아주 먼 곳에만 있지 않습니다. 안에 들어오는 분입니다. 문이 잠겨 있어도, 새벽 안개가 가득해도.
한 자리에 머물기보다, 모두의 곁에 — 그리고 모두의 안에 — 늘 머무는 친구로.
---
그 아침 호숫가 식탁의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크라우니는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너희가 나를 데려가."
어디까지? 돌이 물으려 했습니다. 크라우니는 그 질문보다 먼저 대답했습니다.
"끝까지."
그 말을 들은 날부터, 친구들은 자꾸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두 명이, 다섯이, 열이, 점점 더. 그 발걸음이 어디까지 닿았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23장이 끝났을 때, 돌은 아직 숨을 고르는 중이었습니다.
눈물 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에, 크라우니가 곁에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어디 멀리서가 아니라 — 그냥 안에, 늘 거기 있는 것처럼. 돌은 손을 펼쳐 봤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는 거친 손. 그런데 뭔가가 달랐습니다. 무거운 게 없어진 느낌.
"이걸 어떻게 혼자 갖고 있어요?"
돌이 중얼거렸습니다. 크라우니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혼자 갖고 있지 마."
---
그래서 돌은 나갔습니다.
처음엔 아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있잖아, 들어봐." 예전에는 뭘 말하면 실수할까 봐 먼저 주저했는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크라우니한테 들은 이야기를 그냥 전하면 됐으니까요.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 이야기를 소개하는 거라, 오히려 더 쉬웠습니다.
나래도 나갔습니다.
나래는 오래 아팠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에 크라우니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나래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상처가 흉터로 남아 있는 사람한테는, 흉터를 숨기지 않고 보여 주는 다른 사람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법이거든요. 나래가 말하면 아직 숨어 있던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벼리는 조금 달랐습니다.
벼리는 한때 크라우니를 따르는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길 위에서 크라우니를 만났습니다. 눈이 부셔서 쓰러졌고, 그 상태에서 들었습니다. "왜 나를 괴롭히느냐." 공격하는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 슬픈 목소리였습니다. 벼리는 그 질문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벼리는 이후 가장 멀리까지 갔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던 도시들, 말도 통하지 않는 곳들. 그리고 어디서든 편지를 썼습니다. "있잖아, 크라우니는 이런 분이야." 그 편지들이 돌아다니며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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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탑을 쌓아서가 아니었습니다.
5장에서 사람들이 탑을 올렸던 걸 기억하세요? 제 이름을 높이려고, 제 힘을 보여 주려고. 크라우니는 그때 그들을 흩었습니다. 언젠가 탑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시 모으겠다고, 그 마음을 품고서.
이제 모였습니다. 탑 없이. 깃발 없이. 같은 성을 쌓은 게 아니라, 각자 있던 자리에서 같은 이름 하나를 들었기 때문에 모였습니다. 크라우니. 어떤 사람은 돌한테서 들었고, 어떤 사람은 나래한테서 들었고, 어떤 사람은 벼리의 편지에서 읽었고, 어떤 사람은 오래전 바우의 이야기를, 미르의 이야기를, 새벽의 이야기를 전해 듣다가 — 이 긴 이야기 전체가 결국 한 분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습니다.
같은 사랑으로 모인 사람들은 조용히 식탁을 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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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는 빈자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돌이 왜 비워 뒀냐고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알고 있었거든요. 채워야 할 사람이 아직 오지 않은 것도, 크라우니가 그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이 식탁에는 규칙이 없었습니다. 어떤 나라 사람이든, 어떤 말을 쓰든, 아픈 사람이든 괜찮은 척하는 사람이든 — 온 사람은 다 앉을 수 있었습니다. 5장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드디어 한 식탁에 앉는 날이었습니다. 탑 없이. 그냥 밥 한 그릇씩 들고.
크라우니는 거기 있었습니다. 특별한 자리가 아니라, 그냥 어디에나. 누군가의 안에, 어딘가의 사이에, 두세 사람이 같이 있는 곳마다. 예전에 단과 리아와 저녁을 걷던 것처럼 — 지금도 같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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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크라우니는 언젠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했습니다. 이 식탁이 더 커지는 날. 아픔도 없고, 이별도 없고, 다시는 "어디 있니?" 하고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날. 우는 사람도 없고, 빈자리도 없는 날.
그 날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식탁에는 아직 빈자리가 있습니다.
혹시 당신인가요?
크라우니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당신이 이 이야기를 읽기 전부터. "어디 있니?" 하고 찾던 목소리가, 지금 이 페이지에도 여전합니다. 문은 안쪽에서 잠그는 게 아닙니다. 두드리는 쪽은 크라우니고, 여는 쪽은 당신입니다.
돌이 식탁 가장자리에 앉아서 혼잣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걸 다 전하기 전에 세상이 끝나면 어쩌지."
옆에 있던 나래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크라우니가 끝까지라고 했잖아요."
벼리가 멀리서 또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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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것은 비유입니다.
돌과 나래와 벼리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새 이름입니다. 그들이 걸은 길도, 차린 식탁도, 쓴 편지도 — 비유지만 진짜입니다.
그리고 빈자리는 진짜로 비어 있습니다.
크라우니가 비워 둔 그 자리는, 처음부터 너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 전체가 사실은 그 한 마디를 건네려 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창조부터, 흩어짐부터, 먼 길을 돌아,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와서 — 결국 하려던 말은 이거였습니다.
"어디 있니? 여기 자리 있어.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