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 CHAPTER 02

생각보다 많은, 가장 평범한 얼굴들

박카스는 누구나 안다. 노란 병에 든 피로회복제, 시험 전날의 그 맛, 동네 가게 냉장고에 늘 있던 음료다. 그런데 바카라는 어떤가. 이름이 비슷해 처음엔 헷갈린다. "바카라? 그 무슨 음료 아니야?" 아니다. 바카라는 카지노에서 가장 많이 도는 카드 게임이고, 전 세계 카지노 매출에서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한다. 이름 그대로 이탈리아어로 '0'을 뜻한다.

박카스는 피로를 풀어 준다고 광고한다. 바카라는 정반대다. 한 판이 끝나면 더 목이 마르다. 이상한 건, 분명히 이겼는데도 그렇다는 점이다. 분명히 땄는데도 한 판 더 하고 싶다. 그 갈증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책은 그 정체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 전에 이 장에서 한 가지 사실부터 손에 쥐어 두자.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만 약 237만 명. 광역시 두 개를 채우고도 남는 숫자다. 당신은 그 안에서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다.

나만 이런가

밤늦게 화면을 끄고 나서, 통장 잔액을 한참 들여다본 뒤에,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채로 사람은 종종 자기를 좁은 방에 가둔다. 세상에 나 혼자만 이상한 것 같고, 나만 의지가 약한 것 같다. 그 방의 문을 먼저 열어 보자. 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숫자를 보면 된다.

대한민국 성인 스무 명을 떠올려 보라. 지하철 한 칸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 그중 한 명이 지금 도박 문제를 겪고 있다. 비율로는 5.1퍼센트,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유병률 조사 수치다. 사람 수로 환산하면 약 237만 명. 잘 안 잡히는 숫자라면 지도를 펴 보자. 대전 인구가 약 145만이니, 그 도시 하나를 통째로 채우고 광주 한 도시를 더 합쳐야 비슷해진다. 도시 두 개다. 도박 문제를 겪는 사람들만으로 광역시 두 개를 채운다. "나만 이상한가"라던 그 방의 문은, 사실 처음부터 잠겨 있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9할

그런데 이상하다. 237만 명이라면 길에서 자주 마주쳐야 하지 않나. 그런데 잘 안 보인다. 빙산을 떠올려 보자. 바다 위로 솟은 부분은 전체의 10분의 1뿐, 나머지 9할은 물 밑에 잠겨 있다. 타이타닉을 가라앉힌 것도 수면 위가 아니라 물 밑이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림 — 전당포, 빚더미, 며칠씩 안 씻은 모습 — 그게 수면 위 10분의 1이다. 나머지 9할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첫째, 온라인으로 숨었다. 예전엔 어딘가로 가야 했지만 이젠 휴대폰만 있으면 된다. 이불 속에서, 회의 중 책상 밑에서. 카지노에 가는 사람은 보여도 화면을 켜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둘째, 청소년 속으로 숨었다. 청소년의 온라인 카지노 경험률이 몇 년 사이 14배로 뛰었다. 14퍼센트가 아니라 14배다. 청소년 도박 경험 중 온라인 비중은 59퍼센트, 절반을 넘는다. 아이들의 도박은 길거리가 아니라 손안의 화면에서 일어난다.

셋째, 여성 속으로 숨었다. "도박은 남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온라인은 익명이라 성별의 벽을 허물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정리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꼭대기 밑에는 학생이 있고 직장인이 있고 주부가 있다. 당신 옆자리 사람이 있고, 어쩌면 당신이 있다. 이게 빙산이 건네는 첫 위로다. 당신이 안 보였던 이유는 혼자라서가 아니라, 다들 물 밑에 있어 서로를 못 봤을 뿐이다.

세 컷의 거울

가까이 가 보자. 지금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나는 평범한 세 장면이다.

점심시간의 화장실 칸. 빨리 밥을 먹고 들어온 회사원이 변기 뚜껑에 앉아 30분 동안 여덟 판을 돌린다. 뱅커, 플레이어, 뱅커. 따면 다음 판으로, 잃으면 만회하려고 다음 판으로. 자리로 돌아간 얼굴은 평온하다. 아무도 모른다.

중학교 교실 뒤편. 남학생 셋이 한 휴대폰을 둘러싸고 "이번엔 진짜 온다"를 외친다. 코인이 쏟아지는 애니메이션, 경쾌한 효과음. 겉보기엔 모바일 게임이지만 진짜 돈이 오간다. 누구도 자기를 '도박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가장 무서운 지점이다.

정오의 주방. 아이는 학교에, 남편은 출근한 빈집에서 된장찌개가 약불로 끓는다. 식탁에 앉은 사람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처음엔 심심풀이였고 외로움을 잠깐 잊게 해 주는 무언가였다. 매달 조금씩, 티 안 날 만큼 돈이 빠져나간다. 멈추기는 어려울 만큼. 빙산의 가장 깊고 외로운 자리다.

회사원, 중학생, 주부. 겉으로는 공통점이 없지만 같은 게 하나 있다. 셋 다 평범하고, 셋 다 우리 옆에 있으며, 셋 다 그 단어를 들어도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세 컷 중 어느 하나가 어딘가 익숙했다면, 그건 당신이 특별히 약해서가 아니다. 그 회로가 그렇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한 마디는 이것이다. 당신이 멈추기 어려웠던 것은 의지가 박약해서가 아니다. 위로가 아니라 사실이다. 도박은 인간의 보상 회로를 정확히 겨냥한다. 언제 딸지 모르는 불규칙한 보상, 심리학에서 가변비율 강화라 부르는 그 구조가 뇌에 가장 강한 자극을 준다. 단 음식을 보면 침이 고이는 것을 두고 의지가 약하다고 하지 않듯, 이것도 설계된 자극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다. 다만 훨씬 정교하게 설계됐을 뿐이다. 그러니 자기를 미워하던 일은 이쯤에서 잠깐 내려놓아도 된다.

도박 문제는 특별한 사람에게 생기는 특별한 병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에게 생기는 아주 흔한 일이다. 여기서 흔하다는 말은 '괜찮다'가 아니라 '혼자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혼자가 아니면 길도 혼자 찾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 책의 끝에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가진 능력 — 숫자를 읽는 눈, 확률을 가늠하는 감각, 끝까지 버티는 끈기 — 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당신에게 불리한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다. 카드를 읽던 눈으로 사람을 읽는 자리, 운에 걸던 끈기를 실력에 거는 자리, 그리고 마지막엔 그 모든 경험으로 다른 누군가를 끌어올리는 자리가 있다. 그곳에서는 손실에 천장이 있고 이익에는 천장이 없다.

지금은 멀게 들려도 괜찮다. 사다리는 한 칸씩만 오르면 된다. 오늘의 첫 칸은 이것이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 한 문장을 인정하는 것. 그거면 충분히 잘 시작한 것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한 가지 비밀을 풀 것이다. 왜 이겼는데도 멈추지 못할까. 왜 게임이 아닌 것에도 똑같이 끌릴까. 답은 매일 손에 쥐는 그 휴대폰 안에 있다. 알고 보면 그것도 작은 슬롯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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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가슴이 답답했다면, 그건 당신이 정직하다는 증거다.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헬프라인 1336 — 24시간, 무료, 비밀 보장. 끊으라고 다그치는 곳이 아니라 그냥 들어 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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